‘천년의 그림여행’과 ‘단테의 신곡’

by Rudolf

여기 두 가지 책을 소개한다. 하나는 《천년의 그림여행》 그리고 또 하나는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우선 《천년의 그림여행》은 글자 그대로 11세기부터 21세기까지 1천 년 동안 서양미술사를 집대성한 책이다. 흔히 화보집이라 부르는 그런 부류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은 화보하고는 거리가 멀다. 사실 서양의 미술사는 종교화로부터 시작된다. 그러하니 만큼 특히 중세의 서양화는 거의 대부분 종교, 특히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예술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중세는 어떤 시기를 말하는 것일까? 보는 관점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체로 보아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17세기 르네상스 무렵까지를 중세로 보는 견해가 가장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를 근대라고 부른다. 근대는 대략 20세기 초중반까지 이어지며, 그 다음의 시대를 현대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물론 중세와 근대, 또는 근대와 현대 사이의 접점시기에 대한 논란은 늘 있다. 하지만 위에서 구분한 시기는 대략 그렇다는 뜻이기에 절대적인 구분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알려드린다.



한편, 한국사에서 근대라 함은 보통 고종이 즉위한 1897년부터 광복이 되던 1945년까지의 채 5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를 말하는 것 같다. 서양에 비하면 근대의 개념이 한참 뒤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당시 근대의 한국을 살아가는 지식인들에겐 그 시대가 얼마나 격동적이며 또한 혼란스러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야기가 약간 빗나갔다. 이 책의 특성에 대해 말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 책은 11세기 에스파냐의 벽화로 시작하여 1988년 장-미셸 바스키야가 약물 과잉복용으로 죽던 해에 남긴 낙서 같은 작품 ‘에로이카(Eroica) 1’로 끝이 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 제일 먼저 소개하는 작품은 1435~38년경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즉, 이 책은 탄생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다. 내 서재에는 예술에 관한 책이 특히 많다. 거의 절반은 되는 것 같다. 예술에 대한 책은 크고 두껍고, 무겁고, 비싸다. 이들 책만 내다 팔아도 한 재산은 될 듯싶다. (마니마니 과장해서.)

잘 알다시피 예술 분야는 르네상스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해서 현대까지 천년 동안의 예술을 한눈에 몰아볼 수 있는 책은 그저 황홀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술 책 중 가장 큰 것은 크기 32.7×42.5cm, 두께 6.2cm, 무게 8kg, 978쪽에 해당하는 《The Art Museum》이다. 이 책 10권이면 튼실한 장정 한 사람 몸무게인 80kg이 된다. 그리고 그 책 4권을 세워서 올리면 170cm의 어른 키가 되는 것이다.



(10여 년 전, 미국의 전국 체인 대형서점 보더스(Borders)가 파산했을 때 그 서점의 모든 책을 정가의 30~40%로 판 적이 있다. 그때 서점 앞에 많은 사람들이 쇼핑센터 카트까지 끌고 와서 장사진처럼 길게 줄을 선 적이 있었는데,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여 평소에는 너무 비싸 엄두도 못 냈던 책들을 쓸어담은 적이 있다. 그때 산 책들은 주로 도감 종류와 여행 및 예술 분야였는데, 그 당시에 사둔 책들이 지금까지 눈 호강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사실 예술 책들이야말로 눈 호강에는 단연 최고다. 여행이나 역사유물 관련 책 역시 그러하겠지만 이렇듯 대형 책들은 소장용으로도 한 몫 하는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천년의 그림여행》에는 크고 작은 그림 800여 점이 소개되어 있다. 이보다 더 두꺼운 예술 책들이 내 서가에는 즐비(?)하지만 굳이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천년’이라는 의미를 담고 책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난 천 년은 르네상스 시기를 포함해서 얼마나 역동적이고 혁명적이었던가. 물론 이 책은 서양미술만 다루고 있다. 동양의 미술에서도 그 못지않은 성과가 있을 테지만, 여기에서 그 부분은 생략하고 다음 기회를 기대해 본다.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이 책은 사실 좀 실망스럽다. 내용이 아니라 편집이. 단테의 《신곡》에 서양 명화들을 삽입했기에 겉보기에는 참신하면서도 호기심을 느끼게 해준다. 명작도 읽고 명화도 감상하고……. 일석이조. 이 얼마나 꿀맛 같은 책이냐.

그러나 문제는 글이 아니라 그림에 있다. 《신곡》의 내용은 수도 없이 번역되어 출판되었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명화를 삽입했다고 하니, 처음에는 약간 흥분이 되기까지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책을 펼쳐 보기 전까지는.



편집이라는 분야를 한국의 출판에서는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편집자들이 얼마나 버나’라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와서 읽어본 적이 있다. 결론은 모든 직군 중에서 가장 열악한 대우를 받는 계층 중 하나로 나타났다. 보통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분들이, 그야말로 열정을 쏟아부어 책을 만들어낸다. 한국은 세계 10대 출판 국가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책 문화에 진심인 국민인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을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편집자들은 한국 내에서도 최악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직률 또한 아주 높다고 한다. 고학력, 고품격, 고문화, 고열정이 실상은 가장 낮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참으로 처참한 현실이다.

이웃 일본은 이와는 반대로 편집자들이 존중받는 사회란다. 아주 오래되기는 했지만, 도쿄대학을 수석 졸업한 이가 출판계로 진출했다는 사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일본 사회에서는 출판사에 들어가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편집부에서 일한다고 하면 그가 사는 동네에서는 명사 대접을 받기도 하며,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문화를 중시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이야 IT 분야가 큰 주목을 받고 있어서 출판계가 과거처럼 명문직군에 속하지 않을지 몰라도 어떻든 일본에서는 아직도 출판, 특히 편집 분야를 인재들이 선호하는 것에는 큰 변함이 없는 듯하다.



이렇게 편집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바로 편집자들이야말로 문화의 선봉자들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의 편집자들은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좋은 글 《신곡》에 어디에서 그저 복사해 온 듯한 질 떨어지는 그림을 대강대강 책 여기저기에 덜렁덜렁 실어놓고 무성의하게 편집한 그 분들(?). 책 제목이 아까운 느낌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신곡》에 명화들을 접목한 그 아이디어만은 좋았던지 내가 산 그 책은 2018년에 발행되어 2020년에 6쇄를 찍었으니 책 자체로만 보면 성공한 셈이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아무렇게나 굴려도 《신곡》과 ‘명화’이니까.

흔히 편집자라고 하면 글만 다루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편집디자인이라는 분야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것은 비단 책뿐만 아니라 잡지, 나아가서 신문에서까지도 적용이 되며, 영화나 인터넷, TV 화면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아마 앞으로는 편집디자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적 인식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책 편집자들이 열악한 대접을 받는 현실에서는 우수한 편집자들이 배출되기 힘들다. 그분들도 생활인이다. 이상과 자부심만으로는 현실을 살아갈 수 없다. 출판강국, 문화강국이라는 멋진 자부심에 걸맞은 편집자들이 배출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결론은 뻔하다.

편집자들이 열악한 대접을 받고 이직률 또한 높은 현실에서 《신곡》에 명화를 곁들인 책이 나올 수 있게 애써 주신 편집자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여기 소개하는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은 사실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우리 모두 《신곡》은 알고 있지 않은가. 그 명작에 명화를 곁들여 읽고 감상하는 사치는 그 책을 펼치는 분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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