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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Jun 10. 2024

마술사와 오케스트라 (9)

제2장 | 예술정원 (1)

제 2 장 

예  술  정  원             

            


주원은 병원에서 퇴원한 뒤 집으로 가지 않고 여주 별장으로 내려갔다. 남궁 여사와 함께. 남궁 여사는 주원이 서울에 있을 때 며칠 동안 시내에 나돌아다녔던 것이 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해 시골로 가자고 한 것이다.

    이것에 주원도 반대하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 한국에 올 때 어차피 좀 쉬자고 한 것이기에 이참에 도시를 떠나서 자연에 묻히자고 생각했다. 여주 별장 심주원 주변의 경광이 꽤 수려해서 마음에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편, 남궁 여사는 레스토랑에서 요란을 떨었던 표범 분장의 인간이 주원의 귀국연주회에도 왔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인간한테서 주원을 떨어뜨리려 할 목적도 있었다. 그자가 주원에게 집적거리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레스토랑 사건 때 손님들이야 낭만적인 해프닝으로 여겼을 테지만 남궁 여사는 여간 망신스럽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멀쩡한 딸이 많은 사람 앞에서 놀림감이 되었다고 여긴 것이다. 

    못된 놈. 남들 행사에 따라다니며 광대 노릇하고 푼돈이나 받는 인간이 감히 내 딸에게 희롱을 해? 생각할수록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함부러 나대, 내 딸한테. 한 번만 더 그랬다간 요절을 내줄 테다. 나쁜 놈!”

    이런 생각에 남궁 여사는 남편 정 회장에게 힐난을 퍼부었다. 도대체 어떤 업체한테 그 파티 진행을 맡겼기에 그 따위 인간이 나타나 주원이 그 꼴을 당하게 만들었느냐고. 

    “아니, 당신은 뒤도 알아보지 않고 아무한테나 일을 맡기는 거예요? 그런 놈들 중에서 못된 생각 갖고 있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그러나 사실 그 행사는 모두 남궁 여사가 맡아서 한 것이다. 자기 주변에서 여러 큰 행사를 치른 사람의 소개를 받아 남궁 여사가 직접 결정했기 때문이다. 단, 그 바디페인팅 아이디어만은 정 회장 비서실 직원이 남궁 여사에게 알려준 것이어서 그것이 빌미가 되어 정 회장이 덤터기를 쓰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할 거예요? 하나밖에 없는 딸 저렇게 쓰러뜨려 놓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예요? 당장 가서 요절을 내든지 해야지, 그렇게 눈만 뜨고 있을 거냐고요!”

    어떻든…….

    남궁 여사는 이제부터 자신의 무남독녀 주원은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맡아서 관리하겠다고 나서게 되었다. 애당초 남편 정 회장에게 그 레스토랑으로 정하도록 한 것부터가 자신의 실책이라고 스스로를 타박하면서. 자신이 잠깐 신경줄 놓았던 것이 이 지경이 되었다며 한탄까지 했다. 

    “엄마, 이제 그만해. 엄마 잘못 아니니까.”

    “넌 가만히 있어. 내가 너를 믿은 게 잘못이다. 넌 뭐 하나 혼자서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괜히 나돌아다니면서 못된 놈들한테 치이지 말고.”

    남궁 여사는 자기가 아니면 집안 결딴난다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나저나 여기는 단풍이 아직도 지지 않았네.” 



그 말대로 10월 말인데도 아직 단풍이 그대로 있었다. 빨갛고 노랗고. 물론 땅에는 잎이 많이 떨어져 있었으나 주변 산들은 울긋불긋 글자 그대로 꽃대궐이었다. 

    “정말 단풍이 참 곱다.”

    주원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보스턴을 떠올렸다. 가는 곳마다 숲이고 공원인 보스턴 주변에서 지낸 10년 동안 매년 가을이 되면 단풍여행을 떠났었다. 여행이라고 해봤자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다. 보스턴에서 그 바로 위쪽 찰스 강 건너 케임브리지 지역의 MIT나 하버드 대학 북쪽까지 자전거로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때 경험한 깊고도 진한 단풍 골짜기들. 사실 한국에서는 그리 많이 다녀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이곳도 보스턴 못지않으리라. 어떻든 남한강변 이 시골에 와서 단풍을 바라보니 주원은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었다. 

    “엄마, 나 바이올린 갖다줘.”

    “오늘은 그냥 쉬어라. 이 김에 쉬는 거야.”

    “요즘 몇 번 잡아보지 못했는데…….”

    “아이고, 괜찮아요. 그 실력 어디 안 가니까 염려 말고 푹 쉬어라, 아가야.”

    아가야. 참 좋은 말이다. 엄마나 아빠가 가끔 그렇게 불러주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어떤 때는 눈시울도 붉어지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의 품. 

    너무 좋다.   



주원은 편가가 생각났다. 그날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걱정 많이 했겠지.

    주원은 그날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가서 이틀 동안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편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 남자가 자기 딸에게 집적거린 것으로 여기고 있는 판에 주원이 그 사람과 어울려 돌아다닌 것을 알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당장에라도 쫓아가서 죽이려 들 테지. 

주원은 자신의 인생에 별 역할도 하지 못할 사람이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했다. 편가가 자기 자신 때문에 주원이 쓰러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어떤 사람인들 마음이 편하겠냐마는, 어떻든 그 사람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서 괜스레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 편가, 참 어처구니없는 인간이야. 그런 데서 다시 만나다니.

    그 사람이야 돈 벌기 위해 그런 데 쫓아다닌 것이겠지만 왜 하필 거기까지 온 거야?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주원은 그동안 편가에 대해 거의 잊고 있었다. 편가가 준 자신의 전신사진을 가끔 펼쳐볼 때마다 생각은 났으나, 그것도 며칠 지나니 그저 그랬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남의 모습 몰래 사진 찍은 것은 불쾌했지만 사진이 잘 나와 용서해 주기로 했었다. 덕분에 멋진 전신사진이 생겼으니. 또한 파일까지 받았으니까 나중에 필요하면 더 뽑으면 된다. 얼마든지 포샵도 할 수 있고.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약간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주원이 지금껏 찍은 사진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공짜로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참으로 모순적이었다. 비싼 돈 주고 사진작가 동원해서 찍은 것들보다, 자기 자신은 프로라고 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아마추어가 몰래 찍은 사진에 제일 마음이 갈 줄이야. 행동은 산만하고 허벙댔지만 아무튼 남모를 실력만은 갖춘 사람이다. 편가는. 다방면으로. 

    다재다능.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사는 건가? 재주 많은 사람이 박복하다는 말처럼. 하지만 요즘 세상에선 그 반대인데. 

    어떻든……. 

    아이고야, 그 생각 그만하자. 내 코가 석 자인데.

    석 자?

    뭔 고민 있어? 

    없는데…….         


주원은 한국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심호흡을 하고 전원을 켰다. 주원의 눈이 커졌다. 카톡이 30통이 넘게 와 있었다. 친구들 몇몇한테서도 왔지만 대부분은 편가가 보낸 것이다. 

    친구들 카톡은 그저 소소한 소식 전하는 것이었다. 동해안 가서 가을바다 배경으로 찍은 사진, 여학교 동창 누가 아들을 낳았다는 얘기 등등 뭐 그런 거. 친구들은 주원이 쓰러진 것은 모르는 듯했다. 당연하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니까. 

    귀국연주회 표범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엉뚱한 소문 퍼질라. 아예 언급을 말아야지. 일급비밀.

    주원은 친구들 카톡에 간단히 답했다. 

    전화 온 것들은 무시하고.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 편가의 카톡 계정을 지워버렸다. 그러나 제일 마지막에 온 카톡은 보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것은 읽고 말았다. 

    그 문구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Ars magna.


라틴어를 알아?

    어디서 주워들은 거겠지. 

    위대한 예술. 무엇이 그렇다는 걸까?

    어쩌면 그 앞의 카톡에 그것을 유추할 수 있는 글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혹시 내가?

    피!

    너무 나가지 마세요, 나(me) 씨.

    괜히 다 지웠나? 

    다 끝났네요. 미련 갖지 마세요. 

    그래, 연습이나 하자.

    주원은 바이올린을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 



[다음 이야기]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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