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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Jun 08. 2024

마술사와 오케스트라 (8)

제1장 | 가을정원 (8)

주원의 식구는 자주 다니는 아르누보강남에 들어갔다. 정 회장이 집에서 떠나기 전에 전화해 둔 덕분에 예약한 자리로 곧장 안내받을 수 있었다. 

    레스토랑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원은 한국에 올 때마다 적어도 한 번은 이곳에 왔는데 늘 사람으로 북적이는 것에 놀라곤 했다. 이 넓은 식당이.

    그러나 식사 코스는 그저 그랬다. 부모님이야 이곳에 올 때마다 음식맛에 감탄한다고 옆에서 말했지만, 주원은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을 뿐 아무런 대꾸도 않았다. 

    남궁 여사가 옆눈으로 주원을 살폈다.  

    그냥 놔두라는 듯 남궁 여사를 쳐다보는 정 회장의 무표정한 얼굴이 주원의 눈에 잡힌다.  

    주원은 음식을 남기고 싶었지만 억지로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음식으로 가득한 그릇 언제 다 비우나 걱정하며. 마음으로 걱정하는 부모님 편케 해드리려 끝까지 도전해 보려고.

    “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

    항상 분위기 깨는 남궁 여사의 말.

    “맛있는데요.”

    주원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남궁 여사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정 회장도 흐뭇해하는 얼굴.



레스토랑 안에는 홀 중앙에 놓인 그랜드피아노에서 나오는 맑은 선율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주원은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가 나올 때 화장실에 갔다. 

    주원이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도중에 꼬마들이 풍선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쪽 구석 별실에서 생일모임이 있는 모양이다. 

    주원은 아이들 모습이 귀여워 그 애들이 뛰어가는 방향으로 눈길을 옮겼다. 

    ……?

    아는 사람?

    누군가가 눈에 띈다. 아니, 동물이.

    표범.

    바디페인팅은 아닌 듯 표범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그 위로 올라온 머리와 얼굴 모습은 분명 표범이다. 

    아이들 몇이 그 표범 주위로 돌면서 나 잡아봐라 하는 듯이 뛰어다닌다.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표범만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손에 무엇인가를 잔뜩 쥔 채 어정거리는 모습.



주원은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저 사람이……?

    저도 모르게 주원은 그 방으로 몇 발자국 옮겼다. 그리고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풍선을 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방으로 뛰어갔다.

    표범이 돌아다본다. 아이들에게 손을 흔든다. 그러더니 손을 든 채 동작이 멈춰졌다. 아마도 주원과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주원은 뒤돌아섰다. 몇 걸음 옮겼다.

    뒤에서 갑자기 우와 하는 함성이 들린다.

    주원이 돌아다보았다.

    표범이 뛰어오고 있었다. 

    뒤에서는 아이들이 함께 함성을 지르며 뒤따라 뛰어온다. 놀이의 일종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주변 사람들도 돌아다본다. 웃는다. 표범을 보고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홀의 다른 식탁에 앉아 있는 아이들도 덩달아 소리 지른다. 

    표범이 주원 가까이 달려왔다. 껑충껑충 뛰면서. 표범처럼.

    그 뒤로 조르르 쫓아오는 아이들. 그 광경을 보고 여러 테이블에서도 몇몇 아이가 뛰쳐나오고 있었다. 

    표범이 주원 가까이까지 왔다. 멈춰선다. 아이들을 돌아보더니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을 나눠준다. 표범 인형. 아이들이 서로 달라고 소리 지르며 모여든다.

    그러더니 표범은 주원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기다란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아이들도 표범을 따라 주원의 주위를 돌았다. 소리 질러 가며.

    주원은 자신의 주위를 도는 표범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표범은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몸을 낮추고 이리저리 흔들기도 하며 계속 돌았다. 어흥어흥 하면서. 그 뒤로 아이들이 신이 나서 뒤따른다. 

    빙글빙글.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며 웃는다. 

    갑자기 표범이 몸을 돌렸다. 가까이에 있는 한 테이블로 뛰어간다. 그러더니 동작을 크게 해서 꾸벅하며 테이블 손님에게 절을 하고는 테이블 한가운데 꽂혀 있는 길쭉한 유리병에서 흰색 난초꽃 한 송이를 빼어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크게 절을 한다.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웃었다.

    표범은 꽃을 들고 돌아서더니 곧장 주원에게로 달려왔다. 

    껑충껑충 뛰면서.

    아이들이 펄쩍펄쩍 뛰며 좋아한다. 

    꽃 나 줘요. 나 줘. 내 거야…….

    아이들이 달려든다. 



표범은 꽃을 높이 치켜들고 아이들을 헤치며 주원 쪽으로 곧장 다가갔다. 

    그러더니 주원 앞에 이르러 한쪽 무릎을 꿇고 꽃을 들어 주원에게 내민다.

    우와―!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함성.

    그리고 이어지는 요란한 박수. 

    주원이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자 박수소리가 더 요란해진다. 

    레스토랑 한가운데 있는 피아노의 연주 소리가 박수 소리에 묻혀서 사라졌다. 그러더니 더 이상 피아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주원은 두 손을 반쯤 들어올린 채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해 하며 서 있었다.

    꽃 받아!

    누군가가 두 손을 입에 대고 소리친다.

    뒤이어 이어지는 아이들 합창.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몇몇 사람이 박자에 맞춰 손뼉까지 친다.

    그러자 곧바로 대형 레스토랑 안에 울려퍼지는 구호와 박수.

    주원은 빨개진 얼굴에 두 손을 갖다댔다. 여기저기에서 핸드폰 카메라 들이대는 모습. 

    구호와 박수에 뒤이어 누군가가 발을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레스토랑 안은 쿵 쿵 쿵 쿵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구호와 손뼉 소리로 넘치고 있었다. 

    표범은 여전히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간절한 표정과 눈빛을 담아 두 손을 위로 내밀고 있었다. 난초꽃을 들고서.



주원은 약간 현기증이 일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손을 내밀고 있었다. 

    점점 더 커지는 요란한 소리들.

    주원이 꽃을 받았다.

    우와―――!

    레스토랑 천장이 무너져 내릴 듯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휘파람 소리. 함성 소리. 웃음소리. 식탁 두드리는 소리. 포크와 나이프로 유리잔 두드리는 소리. 

    몇몇 사람은 일어서서 파이팅 하며 소리 지르기도 했다.  

    그러더니 어느 누군가가 두 손을 입에 대고 모아서 소리 지른다. 

    뽀뽀해!

    그 순간 아이들도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뽀뽀해! 뽀뽀해! 뽀뽀해! 뽀뽀해! 뽀뽀해! 뽀뽀해! 뽀뽀해! 뽀뽀해! 뽀뽀해! 

    그러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주원이 쓰러진 것이다. 

    현기증으로.     



[다음 이야기]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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