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도저히 늘 불안해하면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일히 불안해하기 심지어 귀찮아졌다. 머리 한 쪽은 아니라고 별 거 없다고 다독이는데 다른 쪽 머리와 몸은 꼬박꼬박 외부의 모든 자극에 주도면밀하게 반응했다. 24시간 귀를 쫑긋 세우고 있지만 성과는 꼴지인 수사반장처럼 내 미간은 그렇게 점점 좁아졌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어떻게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조사하기 시작했고 불안의 시작과 끝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을 안다면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노력들을 했다.
-예측해서 상상하기
요새는 주사 맞을 일이 좀 잦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무래도 코비드 백신 때문에라도 개인의 평균 접종 횟수가 모두에게 늘었을 것이다. 내가 언제부터인가 주사 맞기 전에 꼭 하는 일이 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께 호들갑을 떠는 일이다. 꼭 주사 찌르시기 전에 말씀해주시라고. 이렇게 솔직하게 무섭다고 벌벌 떠는 환자에게 냉정하게 콕 찔러버리는 의사 선생님은 다행히도 아직까지 만나 뵙지 못했다. 선생님들께 가끔씩 죄송할 때도 있지만 이해해주셔서 결론적으로는 접종을 잘 받을 수 있었다. 다들 그러면서 한 마디씩 안 볼 때 살짝 찔러야 덜 아프다고 말씀을 주시지만,
라고 말씀드린다. 불안장애는 소리가 크거나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꽤 충실하게 작동하지만 이와 같이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얼마나 아플지) 상황에서도 발현될 수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주사를 맞으면서 공포 발작을 느낀 적은 없으나 절대적으로 주삿바늘이 팔에 꽂히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직접 볼 수 있어야 나는 훨씬 덜 아프다.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할 때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 이제 선생님께서 뚜껑을 땄구나
주사 놓으실 준비가 되었구나
차가운 알코올 솜으로 쓰윽쓰윽
이제 곧 날카로운 바늘이 살을 찌르겠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손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힌다),
아 이제 들어가겠구나
아 그래 잠깐 따끔.
그래 그리고 지금 용액(?)이 들어오는구나.
묵직한 통증. 오케이 다 끝났어
이제 바늘만 빼면 돼.
바늘 뺄 때 각도 좀 정확히 빼주세요
선생님 네네 오예 바늘 나가네요 안녕히 가세요
이제 화장솜 주세요.
끝
(휴, 진짜 끝이다)
실제로 주사 맞을 때는 이러한 복잡한 내 긴장도와 상관없이 아주 두꺼운 주사도 잘 맞는다고 칭찬을 받는 편이다. 사실 주사 찌르는 분의 경로를 내가 방해할까 봐 온몸에 힘을 주고 최대한 정지상태로 소위 말해 찍소리도 않고 주삿바늘을 뺄 때까지 기다린다. 내가 살면서 가장 두꺼운 주사를 맞은 건 간 조직검사할 때였다. 정말 두껍고 반짝거리기까지 하는 무지막지한 바늘을 갈비뼈 쪽에 찌른다. 그리고 생 조직을 떼간 후 지혈만도 몇 시간을 해야 해서 화장솜을 엄청 두꺼운 걸 대고 한참을 옆으로 누워있어야 한다.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좀 덜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도 바늘 찌를 때 꼭 말씀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드렸던 기억이 난다.
나의 이 이상한 습관이 정점을 찍었던 건 출산이었다. 19시간 동안 분만을 유도했지만 아기가 내려오지 않아서 응급 제왕을 했다. 제왕수술을 하려면 수면마취와 부분마취 중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출산할 때는 거의 대부분의 산모들이 전 과정에서 수면마취를 선택하거나 아기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하반신 마취만 하고 아기 얼굴을 보고 그다음에 재워달라고들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자는 동안에 일어날 모든 상황을 낱낱이 지켜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안해서 못 견디겠어서 그냥 수술 내내 하반신 마취를 부탁드렸다. 19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은 데다가 수술은 대략 2-3시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거의 꼬박 24시간을 자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당연히 잠은 절대 오지 않았고 아기 얼굴을 보고 나서도 배를 계속 눌렀다. 마치 케첩처럼 오로와 분비물이 찌익 찍 나왔고 그것들을 계속 닦고. 썩션도 계속 이루어졌다. 나는 내 태반을 보여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미 다 잘라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나는 보여 달라고 했고 이윽고 음식물 쓰레기의 비주얼을 하고 내 눈앞에 보여주셨다. 파란색 계열의 GS supermarket이라고 쓰인 글씨에 불투명한 흰색 비닐봉지 속의 국물 많은 김치 같기도 하던 그 형체를 아마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태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못 했던게 아직 마음에 걸린다.
이렇게 모든 상황을 일일이 보고 듣고 느끼지 않으면 더 불안해지는 나 자신 때문에 수많은 자극을 소화하는 과정도 점점 버거워졌다.
-최고의 선택하기
편의점이나 마트에 미리 정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주전부리를 사러 가는 일이 생기면 평균 체류시간이 15분은 족히 늘 넘는다. 영양성분표를 보고 단백질이 최대로, 당과 탄수화물은 최소로(사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만) 들어있으면서 맛있는 간식을 고르느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서 점점 알바 혹은 지점장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데 이럴 땐 아르바이트생이 자주 카운터를 지키는 편의점을 자주 찾게 된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계산대에 올리는 건 결국 감동란과 우유 혹은 가끔씩 막 튀긴 온기가 남은 치킨 같은 것들.
편의점뿐인가, 카페에 가서 음료를 고를 때, 그리고 식사 메뉴를 고를 때. 음료에는 청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시럽은 넣는지(만약 넣는다면 꼭 빼 달라고 한다), 식사메뉴도 조리과정이 역시 너무 궁금하다. 어떠한 재료와 어떠한 소스 그리고 어떻게 익히는지가 너무너무 궁금하다. 궁금한 메뉴 두세 가지의 재료와 레시피를 물어보고 아주 오랜 시간 고민하고 늘 힘들게 결정한다. 딱히 알레르기 같은 건 없는데도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상황에 대해 면밀히 알아보고 결정하는 과정에 물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하는 이유는 완벽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지만 지내다 보니 완벽한 선택이란 건 없더라. 무조건 어떤 선택을 하던지 크거나 작거나 후회는 하기 마련이고 그럴 때 결국 내가 내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 더 큰 과제로 남았다.
자폐스펙트럼의 특징 중 하나가 늘 같은 길로, 늘 같은 메뉴만 고집한다는 이야기는 크게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아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그 마음도 이해하게 되었다. 익숙하고 아는 길은 대뇌나 전두엽을 쓰지 않아도 편하게 갈 수 있으니 남은 뇌 영역으로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과속방지턱이나 과속단속카메라를 일시적으로 제거하고 편하게 속도를 내어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는 환경을 내가 인위적으로라도 나 자신에게 조성해 줄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이미지 출처
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384532#home
3. https://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1609197716A&category=AA009&sn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