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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12. 2024

할머니처럼 아파봐야 알 수 있지!

조금 알게 되는 아픈 사람의 심정

할머니가 아픈 이후 나는 주변 사람에게 아주 가끔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할머니는 좀 어떠셔?"

"할머니는 좀 괜찮아지셨어"


좋은 소식을 전제로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좋은 소식이 있다면 내가 나서서 연락해서 말했을 텐데... 이렇게 내게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질문을 들을 적에는 내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답을 정해버린 것 같아서 수분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텁텁한 고구마를 맨 입에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 좋은 상태긴 하지만... 더 나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연세가 있다 보니... 많이 힘든 것 같아요."


이렇게 얼버무리듯이 진실을 반 전하면서 희망을 겨우 끄집어 올려 보곤 한다. 이런 마음을 알다 보니... 아무래도 슬픈 소식을 전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난감하고 힘들어졌다. 그들의 마음을 십분 알리는 없다. 다만 주변인으로써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큰 법이다. 이들도 마찬가지의 마음으로 이렇게 서툰 위로와 질문을 내게 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냥 넘겨 버린다.


이런 건 큰일이 아니더라. 


죽고 사는 것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게 아니라면, 뭣이 그리 이해 안 될 일이 있겠으며, 뭐가 그리 원통하고 애통할 상황이라 볼 수 있겠나 싶었다.  시시콜콜한 감정다툼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운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아질 뿐이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었더라도... 현재까지 그 고통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자 '상황'이 될 뿐이다. 외면하면 되고 삭제하면 된다. 하지만,


아프면 그건 끝이 아니더라. 


그때부터 시작인 거. 아프기 시작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죽을 때까지 신경 쓰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 생기는 거랄까. 관심이 줄어들면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몸 어디로 튀여나와 질병을 만들어 버릴지 모르는 무서운 세포들의 복수...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런 거 보면, 나는 참 여러 감정에 휘말려 고통스러워했던 지난날로 인해 할머니와의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버린 것만 같아 현재로서는 후회와 반성을 이어갈 뿐이다... 희망이 보이진 않지만 할머니가 웃고 이야기하는 날을 보는 걸 소원으로 하루하루 할머니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에 2024년 2월에는 건강상에 여러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을 지나 지독한 겨울 감기에 걸린 바람에 설명절은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상으로 보냈다. 


겨울의 찬 바람을 피해 집안에 갇혀 지냈던 시간이 뭔 헛수고였냐는 듯, 독감 주사를 맞아도 이겨내지 못하는 몹쓸 나의 면역력을 비웃으며 내 몸에 들어온 감기 바이러스... 다행히 열은 없었다. 다만 아주 여러 가지 현상을 골고루 겪고 있는 중이다. 


두통부터 시작해서 목안이 건조하고 따갑더니, 재채기가 쉴 새 없이 나오다가, 콧물이 줄줄 흐르더니, 가래가 나와 이제 끝나나 싶었는데..., 목안이 간지러워 기침을 참을 수 없어 내뱉다가, 콧물 때문인지 코가 막혀서 잘 때도 숨을 못 쉬어 힘들어하다, 이젠 온몸의 살이 멍든 것처럼 만지면 아프다. 


아파보니까 할머니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중이다. 벌써 일주일 째인데도 아슬아슬 걱정스러운 상태.

콧구멍 한 곳은 콧줄로 불리는 생명줄 같은 존재의 최소의 영양소 전달을 전담하는 줄로 수술 이후 계속 착용 중이시다. 코가 막혀 숨도 못 쉬고 쉴 새 없이 흐르던 콧물 때문에 휴지를 닦아보니까... 할머니는 얼마나 숨 쉬는 게 힘들고 괴로울까 싶었다...


코가 자꾸 막히는 바람에 말하는 건 물론, 코로 숨 쉬는 게 힘들어서 잘 때도 입을 계속 벌려서 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걸 보면 할머니도 입을 계속 수시로 벌리고 있었다.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마치 입술에 힘이 들어가지 못해서 그냥 벌리고 있는 마치 맹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을 테지만, 나는 할머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병원에서 할머니가 입을 벌리고 있지만 마스크를 계속 착용해서 건조해진 바람에 입술이 갈라지고 찢어지고 피가 나는 모습을 봤었는데... 그런 걸 어찌할 수 없고 대체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만 무거울 뿐이었다. 


사실 이전에 병원에서 간병을 할 때 역시도 할머니의 그런 마음과 입장에 대해 진심으로 내 입장처럼 받아들이지 않고선 보이는 그대로의 사실과 상황을 받아들이게 됐던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현재 우린 할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영양섭취가 부족해 면역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항생제 내성균이 생겼다는 이유로 격리됐고 방치된 할머니의 안쓰러운 상황에서 단지 영양제 수액만 제공해 드릴 수 있을 뿐이었다. 


사고를 당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콧줄을 끼고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 할머니는 일 년간의 병동생활은 콧줄에서 뱃줄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게 현재 우리의 목표가 됐고, 10개월 넘게 말을 잃어버린 인어공주 같은 할머니에게서 어둠에 가둬진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한 것인지? 말을 듣기 위한 것인지? 확신은 없지만 우린 마지막 희망을 걸고서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꼭 2024년은 푸른 용의 힘찬 발돋움처럼 용기 있게, 잘 헤쳐나갈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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