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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19. 2024

할머니와의 추억을 함께 나눈 사이

이모가 유일한 존재였다

같이 지내도 외로울 수 있는 사이가 가족 아닐까?


나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이모. 나는 그런 이모는 내가 아는 현명한 사람 중에서 손에 꼽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이모는 할머니의 반대편 입장에 섰고, 나는 언제부턴가 할머니의 편에 섰다. 누구보다 할머니의 옆을 오래 지킨 사람은 나였고, 그녀 인생의 삼십 년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내가 여태껏 알고 있던 할머니는 누구보다 당찼고 억지스러워 보이긴 해도 상처를 아주 잘 받는 여리고도 섬세한 여자였다. 


그렇다 해서 내가 처음부터 할머니의 편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이모처럼 할머니의 반대편에서 할머니의 입장보다 상황을 먼저 우선으로 보고 할머니를 대했었다. 본인의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는 할머니의 완강한 결단을 무르게 만들려고 필사적으로 반항했고 내 생각과 의견을 고집스레 표현해 댔다. 결론적으로, 이모와 달리 나는 후폭풍으로 언제나 거센 바람에 쉽게 꺾기는 나뭇가지와 같은 신세였다 어쩜 내가 옳다 신념을 가졌던 게 할머니께는 근본없는 결단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수시로 똥고집은 내세우지만 적당히 할머니의 의견에 타협하는 인간이 됐다. 


지금 와서 보면 내가 왜 혼났고, 왜 그렇게 우겼는지, 우린 왜 그렇게 아웅다웅 서로에게 서운해하며 울고 도닥이는 시간을 가졌는지, 뭐가 그렇게 중요했던 건지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었다. 


머리가 커지고 내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할머니의 생각에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수록 나는 어느 그 누구보다 할머니의 입장에 대해 조금 더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내겐 엄지 손가락같이 중요한 사람이면서도, 나이가 들어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가 된 나의 할머니는 할머니는 통보도 없이 갑자기 쓰려졌고, 우린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게 된다. 할머니가 몇 년 전부터 내게 했던 말이 있었다. 이미 할머니는 본인의 몸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만약에 이 세상에 없어도, 서럽게 울지 말아라 네가 울면 내가 못 간다."

"이렇게 다 컸고 시집도 갔으니 할머니는 여한이 없구나."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바람같이 뿌려지면 좋겠네..."


할머니는 가진 게 별로 없어해준 게 없다며 미안해했다. 더 해주지 못해서 속상해했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애쓰셨다. 지쳐 잠든 나보다 3~4시간을 먼저 일어나 묵묵히 기다려주셨고, 웬만하면 혼자서 해결하다 못해 나를 불렀던 것이었다. 나는 힘들다는 이유로 사는 게 고되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부름을 귓등으로 듣다못해 겨우 일어나 할머니의 손을 거들었었다. 같이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막상 지나고 보니,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학교와 직장생활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모두 할애했었고 같이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에도 숙제와 과제, 업무 하는 모습만 보여드렸다는 걸 뒤늦게 후회한다.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기에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크게 변할 거 없이 티비를 볼 때도 밥 먹을 때도 일과 공부를 하는 모습으로 할머니의 눈에 비치겠지만... 


내가 정녕 할머니를 위했더라면, 세상에 일과 공부가 전부였던 것처럼 살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마음이 아주 많이 드는 건 사실이다. 조금 편하게 같이 눈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밥 먹는 아주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시간. 할머니와 함께했다고 착각했던 그 시간이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짧았음을... 할머니가 아프기 전까지도 나는 인식하지 못했었다.


이모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바라본 할머니는 닮은 듯 조금 달랐지만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비슷했다. 할머니는 언제나 한결같았고 우리의 기억 속에 할머니는 여전히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겐 엄마이자 아빠였고 할머니이자 친구였다. 그런 모든 존재의 총집합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기 같은 어른이 되어 마주하는 날...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대했지만. 이전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정답게 안부를 묻고 지긋이 바라보던 할머니의 다정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세상이 무너지는 듯이 서럽고 가슴 치며 후회되는 것. 그렇다 해서 드라마나 영화처럼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며 기대할 수 없는 기적이란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잡고 있을 수 없는 과거라는 걸 인정해야만 하겠지만 아직도 끝날 줄 모르는 후회스러운 반성문은 느닷없이 계속되는 중이다. 


몇 년 만에 다녀간 이모의 방문이었는데,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여서 그런지 그다지 대접할 여력이 없었다. 가족 같은 손님인데 차린 거 없이 내가 할머니집 방문한 듯 그냥 집에 있는 걸로 대충 음식을 같이 해 먹으며 티비보며 특별한 일 없는 일상을 보냈었다. 할머니도 이모도 내겐 그다지 바라는 거 없이 내가 편하게 대해줬다.


할머니가 이전처럼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역할이 되지 못하는 현재, 이모는 모처럼 생긴 시간의 일부를 내게 할애해주었다. 이틀간 집에 머무는 동안 할머니와 함께 하던 목욕을 가고 백화점 구경을 하며 티비를 보며 집밥을 먹는 걸 하자 할머니의 자리를 이모가 이렇게 메워준 것만 같아 오랜만에 행복하면서도 할머니가 무척 보고 싶어 졌었다. 


'할머니도 일 년 가까이 목욕을 못 가서 참, 때 많이 나올 텐데...'

'진작에 할머니 모시고 한번 와볼걸 그랬다...'

'이렇게 흐린 날에는 할머니는 한숨 푹~주무셨을 텐데...'


우리의 연결고리는 할머니였고, 이모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린 비슷한 패턴의 일상을 보냈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했기에 여전히 아픈 할머니를 마주하는 태도 역시 조금 달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할머니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만큼 아픈 건 사실이지만 이 아픔을 견뎌내는 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시 이겨내야만 했다. 이모는 아픔을 감추는 방식을 선택했지만 나는 아픔을 더 들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오롯이 혼자 견뎌낼 자신이 없었고, 할머니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졌다. 내게 소중했던 할머니를 세상이 기억하고 함께 응원해 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컸다. 


세상의 모든 손주 손자 손녀가 우리만의 할머니를 잊지 말고 함께 추억하며 기억할 수 있도록 하루 앞 날 모를 아주 작지만 특별하고도 소중한 지금 이 시간을 소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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