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만나 처음 나눈 이야기
봄바람 때문인지 갑자기 머리 하기로 마음먹었다. 급하게 서둘러 미용실로 발걸음을 향했었다. 30%나 할인이 된다 해서 오전에 방문했는데 마치 사기당한 것처럼 자꾸만 늘어나는 옵션으로 부담이 돼 전에 이용하던 미용실 사장님이 생각나 전화하고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인자한 인상을 가진 이모님이 먼저 머리손질을 받고 있었다. 내가 와도 쉴 새 없이 물 흐르듯이 나누는 이야기에 속으로 감탄하며 조용히 귀 기울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 이용하던 미용실은 3년 전 문을 닫았었고 사장님의 소식은 들리지 않던 중에 다행히 우리 부부는 그녀의 두 번째 미용실을 우연히 운명처럼 마주치게 됐었다. 이후 나는 그녀의 미용실을 오늘 다시 들리게 됐다. 예약제로 운영 중인 그녀의 미용실은 차분했고 조용해서 좋았다.
나누는 이야기가 아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제야 그녀의 배를 보니 출산을 3개월 정도 앞두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러다 나 역시도 손님 옆으로 자리를 잡고 사장님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옆에 앉은 손님과도 간간히 의견을 같이 건네게 됐다. 우린 통성명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그렇게 말 한마디씩 툭툭 던졌다.
산전검사, 산부인과, 사회환경, 가족, 내 건강 등등 걱정을 안고서 아기를 가질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나를 비롯해, 결혼 10년 차에 마흔 줄에 아기를 가진 바람에 체력이 많이 힘든 사장님, 산부인과 경력 20년 차로 아기가 너무 예뻐 막둥이라도 갖고 싶다던 손님. 우리는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100% 이해하지는 못한 채 이야기를 나눴다.
손님은 아들 둘만 가졌는데, 딸과 함께 친구처럼 같이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워 막둥이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물론 이제는 가지기 힘든 상태여서 생각은 접게 된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녀는 산후조리부터 키우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대단하다고 여기며 들었는데... 그녀가 산부인과 경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사장님과 둘이 남아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내게 아기는 없지만 이미 상상으로는 아기도 가졌고 낳았고 이미 갈려서 출가도 시킨 사람같이 온갖 걱정을 다 했다. 사장님은 나를 보며 아기를 가지기 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을 내줬다.
요즘은 둘이 살기도 좋죠~
건강이 안 좋으면... 힘들어요.
뭐... 할 만해요.
오히려 아기 낳고 건강해진 사람도 있대요.
내가 머리를 하는 동안 많은 질문과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이 와중에도 산부인과에 가서 다시 수술이든 시험관이든 해봐야햐나 싶다가도 아직도 온당지 못한 건강상태 때문인지 피로가 수시로 덮쳐 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엄마 자격이나 제대로 완수해 낼지 걱정스럽고 의문스러웠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약해지신 부모님과 시부모님. 그리고 우리들 역시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중년으로 노년을 바라보고 있는데 무슨 아이를 온전한 어른으로 키워내겠나 싶달까.
생기면 어떻게든 키워야겠지만... 또 하나의 효도겠지만....
모든 게 걱정인 건 대화를 나누고 듣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다. 이쁘고 사랑스럽고 크고 나면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고 고맙고 그럴 거라는 건 예상되는 바지만... 현재 내 앞길도 미래조차 막막한데 어떻게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걸까, 무슨 확신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안고 있는 염증과 통증을 죽이고 잠재우기 위해 병원을 들낙거리며 느끼며 참는 이 고통의 크기가 10달 동안 품고 있는 아기의 무게, 임산부의 출산과 밤낮 바뀌며 외롭게 잠과의 사투를 해야 하는 육아 그리고 임신을 위해 숱한 노력과 실패를 견뎌내는 부부의 무력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나는 이마저도 힘들다고 툴툴거리는 입장에서 감히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까 싶다.
계기가 생길 거예요...!
아기가 꼭 있어야만 하는 이유. 그걸 가진다면 내가 바뀔 수 있을까? 내 생각과 행동이 180도로 바뀌는 날이 올까? 아직도, 여전히, 보통의 엄마가 가진 그 마음과 행복을 헤아릴 수 없어 세상을 바라보는 폭도 이 정도뿐이지만...
그래도... 내가 언제 아기 분유를 사고 유모차를 보고 있겠어요.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기분이 들어요. 한 번쯤은 엄마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요?
음... 이미 듣고 보고 한 게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궁금하단 생각은 들지 않지만... 물론 후회하지 않으려면? 이미 겪었지만 그 힘들고 어려운 걸 다시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엄마가 되니까 하게 된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포기하지는 말라는 것 같아서 또 주춤거리고 있다.
아직도 아기용품을 사지 못하고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내가 준비해 둔 걸 드리는 게 좋을까?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왠지 남 같지 않은 마음에 뭉클하고 부럽고 안쓰러워 다시 한번 미용실 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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