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둥지 안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
학생 때부터 직장인 시절 동안 부담이 되더라도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터넷. 결혼한 지 벌써 3년이 넘어서야 불현듯 떠올랐다. 아버지께서 정년퇴직하신 후 임금이 작은 회사로 옮기시면서도 한결같이 납부해 주시는 건 할머니댁 인터넷 사용요금과 정수기, 그리고 할머니 용돈 10만원이었다.
아버지는 늘 그랬듯 변함이 없는 소나무 같았고, 어릴 적 내겐 무척이나 큰 거인이었다. 손도 발도 큰 고슴도치의 수염을 가진 매우 강철 같고 튼튼한 사람. 워낙 눈물이 많은 나는 아버지가 뭔 말만 해도 눈물부터 앞선 탓에, 아버지와 나는 길게 깊은 대화를 나눠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어린 날의 나는 아버지가 내게 물어보는 말이 다그치는 꾸중같이 느껴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린 그렇게 서로에 대해 오해했고 몰랐고 어려워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아버지는 회사 가까운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시면서 보는 게 어려워졌기에, 나의 사춘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더 적었고, 한 달에 한 번 보는 것도 자주 보는 편에 속했었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생각보다 먼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됐다. 아버지가 희끗희끗 어느 쪽 머리부터 희여가는 것인지, 요즘은 술을 줄이고 계신지, 어떤 취미를 갖고 계신지 옆에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사라졌다... 생일이나 경조사를 제외하고는 꼭 만나 뵈러 가야만 하는 의무랄 게 없어졌다. 한두 시간 정도의 거리였다면 그래도 한 번씩 가끔은 찾아뵐 생각도 했을 법한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잔소리가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결혼 3년 차 물가상승으로 가스비 폭탄까지 보자니, 할머니 댁으로 날아온 인터넷요금이라도 줄여드려야겠다 싶었다. 카톡 보는 게 삶의 낙이 된 할머니만큼이나 아버지의 입장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조금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나이로 접어든 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말을 꺼냈었다. 아버지에게 할머니집 인터넷을 저렴한 결합상품으로 바꿔보자고, 이모에게 할머니 핸드폰 요금제를 데이터를 넉넉하게 쓸 수 있는 걸로 바꿔보자고, 그렇게 나는 잔잔한 강물같이 영원할 것 같은 할머니 중심으로만 돌아가던 상황에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지냈던 시간만큼 내가 할머니를 아버지보다 더 따르고 생각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아버지는 항상 스스로 잘 해결해 내셨고, 혼자서도 씩씩하게 뭐든 처리해 내셨고, 단 한 번도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은 내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없으셨다. 그래서 간과했고 그냥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잘 지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할머니만을 바라봤고 걱정했다.
이젠 혼자계시는 할머니. 나의 빈자리가 얼마나 클까... 그래서 아버지가 채워주시길, 이모가 채워주길, 바랐다. 그러지 못하다고 느낄 때는 속상했고 아주 약간의 원망도 들긴 했지만 살다 보면 꼭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는 걸 나이가 먹을수록 이해하게 됐다. 할머니가 겪은 사고의 순간에도 나는 발만 동동 거렸었고, 나는 아버지를 찾고 이모를 찾았었다. 나를 대신할 사람이라고 여겼다.
근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세상에는 할머니와 나만 있다고, 내가 할머니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지금은 오롯이 이모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계셨던 것인지... 가늠이 됐다. 수 없이 듣고 바라봤을 이별의 세계를 미리 마주하고 있는 어른들의 세계.
아버지는 울면서 아픈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내 눈물은 어릴 때도 다 커서 시집간 딸이 됐어도 적잖이 아버지를 당황스럽게 시키는 건 여전했다. 아버지는 수화기너머로 들리는 내 눈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하시는 게 느껴졌다.
할머니만큼이나 나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사람,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 집에 갈 때도 챙겨다 주려고 주섬주섬 집안 곳곳에 찾아다니며 분주하게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아 무겁게 전해주시는데, 할머니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러워졌다.
생각보다 먼 거리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 뚝, 떨어져 버린 하나뿐인 소심한 딸이 안쓰럽고 걱정되는 아버지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말하시면도 아주 가끔 연락하실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씀은...
한결 부드러운 다정한 말투와 자상스러운 손길의 아버지.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 주름진 눈매, 생각보다 왜소해진 어깨, 살짝 나온 뱃살이 눈에 들어오면서 '아버지도 이제 노인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젠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나이가 되신 아버지. 자녀계획보다는 내 몸 돌보기도 어려워하는 딸내미 건강이 걱정이 아버지라서 손주소리 한번 내게 하려 들지 않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지켜주고 만들어준 울타리 안에서 걱정 없이 지내온 어린 시절의 나는 누군가를 지켜낼 자신이 아직 없다. 다만 내 눈앞에 약해진 부모님과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어린 마음으로 살아갈 거냐고...' 아버지의 둥지 안을 벗어났다 생각했던 결혼식날, 아직도 나는 그 둥지의 품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했던 것인지를 자주독립을 하게 된 날로부터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둥지 밖의 세상이, 울타리 밖의 현실이 얼마나 거칠고 위험하고 쓸쓸한지에 대해 진짜 어른이 되고 있는 중이라 여기며... 아직도 둥지 곁을 맴돌며 찾아가는 나의 마음을 보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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