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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Sep 11. 2020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소비요정'의 소비 단상

퇴근 후 문 앞에서 나를 반기는 택배 상자들. 익숙한 설렘에 미소가 지어진다. 문을 열고 택배 상자를 현관으로 쑥 밀어 넣는다. 옷을 갈아입고 정갈한 마음으로 상자를 뜯어본다. 화면의 사진으로만 보았던 물품을 손에 쥘 때 가벼운 희열이 느껴지고, 주문한 물품이 내 머릿속의 그것과 일치하기라도 하면 마음이 춤을 춘다.


직장인들이 월요병을 퇴치하는 방법으로 회사에 원하는 물품을 주문해놓고 택배를 받을 생각으로 월요일에 출근하는 것을 꼽은걸 보면 소비가 주는 기쁨이란 게 나만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많고 많다지만 소비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어떤 것을 살까 비교하고 고심할 때의 재미, 손에 들어왔을 때의 기쁨, 앞으로 가져다줄 변화에 대한 기대감. 소비라는 일련의 과정이 내게 주는 행복은 상당한 편이다. 물품의 취득 그 이상으로 소비라는 행위를 즐기고, 의미를 부여하는 나를 남편은 '소비요정'이라 부른다.


이런 나와는 반대로 남편에겐 소비 자체가 스트레스다. 정보를 취득하고 직관적인 결단력으로 무엇이든 빠르게 결정하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매사에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전형적인 공대남자이다. 그는 작은 물품 하나를 살 때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최적의 결과물을 얻고자 노력한다. 인풋대비 아웃풋의 효과까지 꼼꼼히 평가하는 그에게 소비가 재밋을리 만무하다. 대부분의 면모에서 상반되는 우리의 성격과 성향이 소비에도 예외 없이 투영된다는 점은 매번봐도 참 흥미로운 부분이다.




비단 나와 남편의 케이스 아니더라도 소비만큼 그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이 잘 나타나는 행위가 있을까. 억만장자가 아니고서야 우리 모두는 돈과 시간이라는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써야 가장 큰 효용을 얻을지 고민하며, 그 과정속에서 추구하는 삶의 가치 등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같은 조건하에 500만 원이 주어졌을 때 그 돈을 소비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이다. 그 돈으로 누군가는 명품백을, 누군가는 냉장고를 살 것이고, 같은 가방을 산다해도 누군가는 비싼 가방 한개를, 누군가는 절반가격의 것으로 두개를 살 것이다. 소비 품목, 습관, 고민요소 등은 각기 다르겠지만, 모든이의 소비의 과정속에는 (인지하지 못할뿐) 그만의 취향, 우선순위,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 등이 녹아져 있다. 그래서 나는 어쭙잖은 심리테스트나 혈액형보단 한 사람의 소비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보여준다고 믿는다.(You are what you buy!)


같은 맥락에서, 어쩌면 내게 소비가 재미난 이유는 소비행위가 단지 손에 쥐어지는 무언가 이상으로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의 일부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구매전에 그것이 무엇에 필요한지, 가격은 적당한지, 왜 이 브랜드여야 하는지 등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을 거치는데 바로 그 부분에서 최적을 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내 자아들이 서로 부딪히며 접점을 찾아간다. 어느 영화에서는 커피 한잔의 소비를 통해 자아까지 발견한다 말했던가.


영화 'You've got mail'  조 폭스 대사 中
스타벅스 같은 곳의 목적은 결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 같아요. 작은 것/큰 것, 연한 것/진한 것, 카페인/디카페인, 저지방/무지방 그러니 2달러 95센트를 가지고 뭘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단순히 커피 한 잔 만이 아니라 자아까지 발견하게 되죠  


그런데 '소비 요정'이라 불리는 내게도 이른바 소테기가 찾아왔다. 택배박스를 열었을 때의 희열이 전만 못하고 기대 못미치는 케이스가 늘었다. 주문하고 물품이 도착하는 몇 일 사이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소비'가 나오는 일도 잦아졌다. 이유는 오래 찾을 것도 없었다. 진실된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라 쏟아지는 마케팅 등에 순간적으로 현혹되어 '가짜 필요'에 의해 구매한 케이스가 점점 늘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꽤나 분별력 있는 소비자 생각했던 믿음, 내 가치관이 투영된 소비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  깨지면서 소비의 재미가 시들해졌다.


거실에 상을 펴고 둘러앉아 밥을 먹던 시절엔 tv 광고의 이미지를 소비했다. 저 차를 타면 내가 정우성이 되고, 그 음료를 마시면 내가 고소영이 되 광고에 속았다. 그러나 주로 광고 모델은 가장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었기에 그들과 나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감이 있었고, 그 덕분에(?) 소비에 대한 내 기대감 역시 한정되어 있었다.


미디어 매체가 범람하는 오늘날엔, 모양새만 다른 광고가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방심하고 무심코 들여다보는 몇 초간 이미지를 넘어서 스토리를 소비하게 만드는 구조로 한껏 더 꾐이 그럴듯해졌다. 옆집 아줌마 같이 푸근한 몸매를 가진 사람이 효소 몇 포를 털어 넣고 어느 날 탄탄한 모델 몸매가 되는가 하면,  영어 울렁증이 있는 회사원이 특정 교재로 학습하고 난 뒤 원어민처럼 영어를 말하는 기적을 보여준다. SNS가 앞장서 주도하는 '소비 장려 운동' 역시 쉴틈이 없다. 4세 아이라면 응당 들여야할 전집과 교구들이라며 부채질 당하기 일쑤고, 00크림 안바르고 언제까지 나이드는 피부를 방치할거냐며 애꿎은 채찍질을 당하기도 한다. 등떠밀린듯 '가짜 필요'에 의한 소비를 하고나면 마치 그 변화가 당장 내게 실현된 것 마냥 마음이 편해지는 나였다.


하지만 마케팅의 반전은 일어날 리 만무했고, 거듭된 실망감은 내 삶의 방향에 맞는 욕구를 채워야할 에너지를 엉뚱한 가지들에 쏟고있는건 아닌지 나를 돌아보게했다. 무엇이 되었든 내 인생을 바꾸는 변화는 소비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 행동의 변화와 의지의 실현을 통해서라는 것, 비는 그저 거들뿐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 방향이 흔들려선 안된다는 것. 마케팅 등에 휩쓸려 주체성을 잃어버린 내 재미없는 소비를 바로잡기 해 지금 내가 기억해야 할 두가지다.




돈을 버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반해 지갑을 여는 일은 자꾸만 쉬워진다. 카드사들은 카드 등록이니, 원터치 결제니 앞다퉈 내 소비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갑 열리는 지름길을 많이도 만들어주었고, 인스타 마켓, 홈쇼핑의 언니들은 자극적인 스토리를 창조하여 끊임없이 소비를 권유하고 있다. 가벼운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마트도, 백화점도 집 앞까지 찾아오는 편리한 시대지만, 현명하고 즐거운 소비를 위해서는 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복잡한 노력을 들여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간결해진 구매절차와 마케팅의 덫에 걸려 의미 없는 소비로 돈도, 시간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하여 소비 본연의 재미까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소비 요정'은 이제 주체적인 소비를 꿈꾼다. 누군가의 이미지나 스토리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가치와 방향에 부합하는, 그리하여 내 삶을 풍요롭게 할, 나만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한 그런 주체적인 소비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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