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뻔하디 뻔한 목표를 다시 세우기 마련이다. 금연과 금주, 다이어트나 외국어 공부들이 대충 그런 것들이다. 나 역시도 1월 10일에 헬스장 1년 치를 등록했다. 충동적으로 지른 건 아니었다. 그전 11~12월쯤부터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등록 후 조금 지나면 신년할인을 할 게 뻔해서 그때까지 기다렸었다. 매일 헬스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할인을 확인하며 홈트레이닝을 겸했다. 굳건한 의지로 운동하길 마음먹으니 등록하던 순간부터 열정이 불탔다.
우리 동네엔 헬스장이 두 곳 있다. A는 집에서 2~300미터 되는 가까운 곳이었다. 3층 구조로 아래에는 PT전용룸, 그위로는 러닝머신존, 그 위에 운동기구존이 있었다. 구조가 나뉜 만큼 운동인원이 분산되면서 조금 한가롭게 느껴졌다.
B는 8~900미터 정도 떨어져서 애매하게 멀지만 충분히 갈만한 곳에 있었다. 동네에선 그나마 인기 있어 사람들이 많았다. 생긴 지 2년 정도 돼서 깔끔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운동하기엔 A가 나아 보였지만 고민 끝에 B를 선택했다. A는 막힘없이 운동할 수 있지만 좀 침울한 분위기가 들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장례식장(?) 같은 분위기에서 하긴 싫었다. 빡빡해도 많은 사람들이 으쌰으쌰 하는 곳이 동기부여도 될 것 같았다.
그 선택을 그렇게 빨리 후회할 줄은 몰랐다.
월요일을 기점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헬스장은 보통 월요일에 가장 사람이 많고 금요일로 갈수록 점점 줄어든다. 시간도 7~8시가 피크로 퇴근 후 운동하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월요일+동네 인기헬스장+신년 신규고객+퇴근시간'의 시너지는 대단했다. 빈 운동기구를 찾기 어려워 눈치싸움을 했다. 괜히 뒤에서 어슬렁 거리다가 일어날 낌새가 들면 곧바로 뒤로 다가와 영역표시를 했다.
다행히 수요일 목요일쯤 되니까 체감될 정도로 사람이 줄었다. 여전히 사람이 많았지만 빈 기구가 두어 개씩은 있어서 대체운동으로 루틴을 돌릴만했다.
문제는 다시 한 주가 지나 월요일이 되자 5일장이 열린 것 마냥 사람들이 들끓었다는 것! 그 와중에도 한 번씩 헬스장을 둘러보고 상담받아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헬스장 선택을 조금 후회했다.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월요일은 사람이 많았지만 다른 요일들은 이전보다 인원 감소가 조금 많아졌다고 느꼈다. 타이밍만 잘 맞으면 기다릴 필요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을 주르륵 끝낼 수도 있었다.
꾸준히 운동을 하다 보니 제법 눈에 익는 얼굴들이 생겼다. 그런데 그 얼굴들이 사라졌다. 늘 둘이 같이 오던 두 여대생(아마도). 중학생쯤 돼 보이는 딸과 엄마. 흔히 멸치라 부르는 남학생. ㅇ벨트랑 그림이랑 보호대까지 중무장을 하고서는 나보다도 적은 무게를 들던 남자.
딱 봐도 초보 티가나 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갔다. 뭘 할지 몰라 눈치 보며 쭈뼛대던 여학생들은 한 달도 못 채우고 2~3주 안에 네댓 번 나오고 끝이었다. 남자들은 그나마 주기적으로 보이긴 했으나 한두 달 만에 사라져 버렸다.
의지가 아닌 충동으로 시작한 사람들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나는 '가성비'라는 이름 아래 당연히 1년 수강권을 선택했다. 다른 가격은 애초에 비교도 안 했다.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법이니까 그들은 체험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1달만 등록했을 거다. 하지만 연장하지 않았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입장의 차이라는 거겠지?
3월 21일. 나는 지금까지 51번의 운동을 했다.(헬스장 출첵으로 카운팅 된다.) 오늘 간다면 52번이다.
주말은 쉬고 평일은 꾸준히 한다는 개인 목표로 주 4~5회씩 했다.
보통 운동을 하면 100일은 지나야 슬슬 변화가 보인다고 한다. 단순 기간으로 계산해도 3달 이상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해 있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 운동하는 만큼 근육이 달라지는 게 눈으로 확인된다. 헐크처럼 근육덩어리가 팍팍 붙는 건 아니지만 내가 갖고 있는 근육들이 단단해지고 커진 게 보인다.덕분에 동기부여가 팍팍되고 있다.
그만둔 사람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회원권의 등록기간? 아니, 그건 연장하면 될 일이지.
의지? 집중? 관심?
대충 그런 것들 차이 아닐까?
내가 그들보다 잘났다는 자기 위로는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은 내가 운동에 좀 더 관심이 높을 뿐인 걸 아니까.
그걸 증명하듯 요즘 글에 관심이 미적지근하다. 첨엔 마음에 차는 글이 잘 안 써져서 힘든 시기를 겪는 거라 생각했는데, 운동을 하면서 그냥 관심차이라는 걸 깨달았다.
일도 취미도 사람도 계속해서 관심을 줘야 몸도 마음도 움직인다는 걸 배웠다.
남은 9개월 안에 이 관심이 식지 않을지 걱정이다. 아니. 식지 않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거다.
그리고 다른 것들에도 조금씩 관심을 줘야겠다. 그렇게 하나씩 쌓아 나에게 관심을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