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믄 Jan 31. 2022

서른이 되기 가장 적절한 때

조급했다. 나는 빨리 서른이 되어야만 했다. 스물아홉인 나의 인생이 너무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서른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지만, 사회적으로 학습된 그 서른이라는 개념이 내가 되어야만 하는 모습을 정형화해두었다. 너무나 완벽하게 서른에 들어맞는 인생을 살고 있는 지금, 더 기다릴 것 없이 지금이야말로 꼭 서른이 되어야만 하는 때였다.


내가 생각한 서른이라면 꼭 가져야 할 삶의 축은 다음과 같다.


일을 통한 자아실현

- 중학교 때부터 꿈꿔온 나의 목표. 나는 평생 일이 나의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라고 믿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하고 있는 일로 정의되고, 요즘도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타이밍이 오면 항상 'n년차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말로 나를 설명한다. 퍼포먼스 마케터가 되기 전에는 '소셜커머스 MD'가 그 몫이었으며, 이런 이유로 한때 유행하던 클럽하우스의 자기소개란도,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의 작가 소개란도 내 직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안정된 연애

- 스물아홉의 나는 당시 남자 친구를 평생 내 곁에 있을 존재로 정의했다. 내 옆에 그가 있는 게 너무 당연해서 삶이 불안하지 않았다. 몇 년간 흔들림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내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나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며 살 수 있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긍정적 영향을 주는 인간관계

- 곧 셰어하우스 선녀방에서 산지 2년이 된다. 우리는 남이지만 이 안에서는 분명 가족이다.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속속들이 알고, 익숙하게 인간관계까지 침범한다. 내가 현영, 나연, 민경을 얘기할 땐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는 언제든 부끄러움 없이 눈물 흘릴 수 있고, 좋아 보이는 거라면 망설임 없이 따라 할 수도 있다. 그 속에서 나는 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낯선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


그러나 막상 서른이 되어보니, 나의 세 축은 전부 어딘가 틀어져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일을 통한 자아실현

- 중학교 때부터 꿈꿔온 나의 목표. 나는 평생 일이 나의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라고 믿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하고 있는 일로 정의되고, 요즘도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타이밍이 오면 항상 'n년차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말로 나를 설명한다. 퍼포먼스 마케터가 되기 전에는 '소셜커머스 MD'가 그 몫이었으며, 이런 이유로 한때 유행하던 클럽하우스의 자기소개란도,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의 작가 소개란도 내 직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내가 정말 일을 사랑하는 게 맞아?

내가 일을 사랑한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올까? 정말 결혼할 생각 있는 거 맞냐며 울먹이는 남자 친구를 두고 왜 내 일을 방해하는 거지? 란 생각을 할 때, 밤 12시부터 새벽 1시까지 트래픽이 몰리니까 그럼 매일 1시까지 보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당연할 때, 그러고도 오전 7시부터 성과가 좋으니까 그럼 매일 7시에 일어나서 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당연할 때, 낯선 사람들과 즐겁게 파티를 하는 와중에도 별생각 없이 노트북을 꺼내 들 때, 주말엔 한 시간마다 알람을 맞춰두고 쪽잠을 잘 때, 그런 일상이 개의치 않을 때...


난 기본적으로 내키는 일만 한다. 대학교 때 대중매체 언어론인가 하는 수업에서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교수님은 본인이 그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고, 왜 이 영화가 명작인지에 대해 설명했던 것 같다. 나중에 찾아보니 교수님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사람들은 이 영화가 포스터로 인해 망해버린 비운의 명작이라고 했다. 세간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 영화가 재밌지 않았다. 도통 어떤 점이 열광 포인트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교수님은 과제로 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써내라고 했다. 딱 한 줄이어도 된다고, 쓰기만 해도 점수를 준다고도 했다. 교수님이 좋아하는 영화니까 왠지 좋은 말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난 과제 제출 창을 켜고 한참 고뇌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C를 겨우 받았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과 동의어일 수는 없다. 얼마 전 회사 팀원들과 갔던 워크숍에서 개개인의 익명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 모두가 서로의 피드백을 남겼다. 팀장님은 나에 대한 우려를 적었다. 하와이에서 술집 차리겠다는 꿈 말고, 진짜 회사에서의 목표를 세웠으면 좋겠다고. 하와이 술집은 내가 술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진 꿈이었다.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장사를 하고 싶었다. 일에 대한 꿈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꿈은커녕 작은 목표도 없었다. 그저 내 일이고, 내 책임이니까 하루하루 지나치게 열심히 해낼 뿐이다.


안정된 연애

- 스물아홉의 나는 당시 남자 친구를 평생 내 곁에 있을 존재로 정의했다. 내 옆에 그가 있는 게 너무 당연해서 삶이 불안하지 않았다. 몇 년간 흔들림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내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나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며 살 수 있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내가 하고 싶은 게 연애가 맞아?

사실 난 연애가 하고 싶은 것도, 결혼이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잃어버릴 걱정도, 도망칠 걱정도 하지 않을, 평생 그곳에 있을 거란 확신이 있는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하루 종일 카톡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점심 메뉴를 파악하고, 시답잖은 주변인들 이야기에 키득대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무조건, 먹고 싶은 것이 생겨도 무조건 함께 향하는 그 편리함. 그 사람은 남자일 필요도 없고, 여자여도 좋다.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내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고백이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어이없게도 그럼 아무나 만나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옆에 있기만 해도 된다면 아무나 만나도 되는 거 아냐? 여기서 말하는 아무나란 정말 아무나라기보다도 내가 미치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여태까지의 연애는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하다 미치기 직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도 그 마음을 못 참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며 선언해버릴 때에나 시작됐다. 침대 위 둥근 텐트 아래 웅크려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누구든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가설이 완전히 틀렸다는 건 두 달만에 증명됐다.


뭐든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해야 직성이 풀리면서,  연애는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옛날부터 좋아했다는 말에 하루아침에 사귀게  남자 친구는 안타깝게도 반례가 되지 못했다. 인간적인 호감이 이성적인 호감으로 발전할  있다고 생각한  패착이었다. 사귀다 보면 좋아지더라는 경험담을 나에게 일반화하려던 것이 실수였고, 스킨십을   있으면 이성적 호감이 있는 거라는 말을 일반론으로 받아들인 것이 패인이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가설 검증은 나에게로 돌아올 업보로 끝났다. 결국, 내가 원하는  단순히 옆에 있을 사람도 거였다.


긍정적 영향을 주는 인간관계

- 곧 셰어하우스 선녀방에서 산지 2년이 된다. 우리는 남이지만 이 안에서는 분명 가족이다.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속속들이 알고, 익숙하게 인간관계까지 침범한다. 내가 현영, 나연, 민경을 얘기할 땐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는 언제든 부끄러움 없이 눈물 흘릴 수 있고, 좋아 보이는 거라면 망설임 없이 따라 할 수도 있다. 그 속에서 나는 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낯선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

- 계속 의존하는 관계가 긍정적인 거 맞아?

다음 달이면 선녀방을 떠난다. 우리가 출연했던 다큐 속 연출된 장면처럼 퇴근길에 데리러 오고 하는 오글거리는 관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1년이 넘는 시간 누구보다 선녀방에 의지해왔다. 차이고 돌아왔을 땐 물론이고, 알지도 못하는 회사 일에 대한 열받음까지도 한 마디씩 거들어줄 하메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들이 너무 가족 같아졌기 때문이다. 가족일수록 멀리 떨어져 살아야 사이가 좋다는 말에 공감하게 됐다. 난 이런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결국 우리가 남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모두와 한 시간쯤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방법을 택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젠 의지가 아니라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의 수많은 날 것 같은 아이디어들을 지지하고 부추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산다는 것. 그리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게 결국 나라는 걸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나를 방심하게 만든다. 무장해제된 나는 내 모든 걸 내어 맡기곤 그대로 잊어버린다. 그 사이에 있는 내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원래 내 모습인 것처럼 착각해버린다. 날 사랑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보호장치다. 이제 좀 잘하는 것 같은데? 이런 것쯤 없어도 될 것 같은데? 해놓곤 한 순간 넘어져 무르팍이 까진다. 오래돼 익숙해져 버린 연인쯤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은 것처럼, 타의로 선녀방을 떠나게 되면 결국 무너질 거란 확신이 있었다.


이사가 확정된 날부터 혼자 있는 게 무서워졌다. 분리불안이 있는 강아지처럼, 모두가 집을 나설 채비만 해도 엉엉 울고 싶어졌다. 나 혼자 살다가 우울증 오면 어떻게 해? 슬픈 일이 있었는데 말할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 엄청난 사업 아이템을 발견했는데 동조해줄 사람이 없으면? 모두가 반대만 하면? 주변에 나다움을 이상한 것으로 정의하는 사람들뿐이면 어떡하지? 안 그래도 일-회사-선녀방 뿐인데, 이제 일-회사밖에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해? 내가 이상한 남자 만나려고 하면 누가 말려줘? 나 나가도 되는 거 맞아?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하면 받아줄 거야? 소파에서 자면 안 돼? 거실 테이블 밑도 괜찮아...


혼자 살 수 있는 사람

- 결국 내가 되어야 하는 건 혼자서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위에 열거한 모든 것들이 없어도 그냥 나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3년 차 퍼포먼스 마케터입니다. 4년 사귄 남자 친구가 있고,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어요."라는 그럴듯해 보이는 말에는 내가 하나도 없었다는 걸 서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오랜 남자 친구도 없고, 셰어하우스에 살지도 않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회사를 관둘 수는 없으니 퍼포먼스 마케터 부분은 우선 유지하기로 했다.) 우선은 글 쓰는 사람일 거다. 어쩌면 드럼을 치고, 술을 빚고, 베란다에 바질이나 토마토 같은 걸 기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미리 맞춰두었던 서른의 축은 다 틀어졌지만, 그럼에도 지금이 서른이 되기 가장 적절한 때다. 완벽했던 울타리를 벗어나 나를 저 멀리 던질 수 있는 용기가 지금은 있으니까. 물론 매일 퇴근하고 돌아와 질질 짜고, 엄청나게 외로워하며 온갖 곳에 질척이겠지. 그래도 꾸역꾸역 참아낸 끝에,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나도 제법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내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