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요괴도 아니고 계속해서 직업 바꾸니 재밌네
퇴직을 했으니 나는 자유의 몸인 동시에 백수다. 그러므로 돈을 벌려면 스스로 구직활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정교사일 때는 휴직하며 아무 생각 없이 쉬었는데 막상 퇴직 후에는 마음 가짐이 다르다. 하루의 시작을 교육청 구인 구직란을 살펴보며 시작하고 일주일의 스케줄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한테 맞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몹시 자유로우나 가만히 있으면 딱 굶어 죽기 좋은 상태랄까? 그러므로 오늘도 열심히 구직란을 뒤적인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뭘 해보면 좋을까? 여러 차례 고민 끝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새로운 시도는 인간냄비의 최고봉인 나에게 활력을 불러일으켜주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좋은 자극이 된다. '책놀이 강사'를 해보자! 또 꽂혔다. 한번 꽂히면 답도 없는데. 책놀이에 꽂혀서 다른 게 아무것도 안 보인다. 하고 싶은 것은 하고 나서야 직성이 풀려서 나도 참 큰일이다. 일단 저질러놓고 뒷수습하는 편이라 같이 사는 남편이 내 뒷수습하느라 고생을 좀 했었다. 내가 밑도 끝도 없이 집을 계약하고 주식을 투자하고 상가를 보러 다니며 허튼짓을 해도 크게 모라고 안 하고 나의 의견을 잘 따라와 준 남편이 새삼 고맙다. 성공한 투자도 있지만 때로는 계약금을 날린 적도 있었고 이사 갈 집을 먼저 매수해 놔서 현재집이 매도가 안 돼 쩔쩔맨 적도 있었다. 내가 하자는 데로 대체적으로 크게 반대 안 하고 잘 따라와 준 남편 덕분에 하고 싶은 것 원 없이 하고 살아서 좋다. 정규직이 훨씬 돈을 잘 버는 데도 내가 퇴직한다니까 응원해 주고 퇴직 후에도 기간제 하면 훨씬 돈을 잘 버는데도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라고 해준다. 그의 최대 장점 날 그냥 내버려 두는 것! 땡큐 베리 감사.
교육청 구인란에 방과 후에 저학년 아이들을 위한 특기적성 강사를 뽑는 공고를 접했다. 공고를 보고 내 눈이 반짝였다. 새로운 일을 해보자! 시간강사보다 페이도 세고 왠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자신감도 들었다. 창의수학을 해볼까? 민속놀이강사? 여러 공고를 뒤적이다 책놀이가 가장 해보고 싶어서 방향을 책놀이로 잡았다. 친한 작가언니의 도움을 받아 연간 계획서의 틀을 세우고 그림책들을 리스트업 해서 세부활동들을 연구했다.
뭐지? 이 불타오름은? 계속해서 수업연구 안을 짜고 학습지를 만들다 보니 자정이 다되었다. 무엇보다 자료재작하는데 너무나 재미가 있었다. 불금인데 꼼짝 안 하고 집중해서 자료 재작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놀라며 멋지다고 손뼉 쳐줬다. 돈 벌어와서 좋니? 어쨌든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더더 잘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인정받으며 사는 삶을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일을 다시 시작하며 자신감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아주 깊숙이 내 안에 박혀있던 인정의 욕구가 고개를 들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 한 군데 말고 두 군데 다 지원해 보자. 일에 굶주린 듯 닥치는 대로 공고 나오는 데로 지원하고 면접을 봤다. 어쩌지... 운이 좋게도 면접 보는 곳 모두 다 합격했다. 광대가 승천하고 기분이 째진다. 이제 열심히 준비한 자료들로 즐겁게 수업만 하면 되는데...
그러면 될 줄 알았다. 정말. 이럴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