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검진 결과가 좋아요.
암수술을 하게 되면 주기적으로 병원을 오가게 된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암 4기에 해당하는 중증의 경우에는 3개월마다 CT와 피검사 엑스레이 등을 찍고 6개월마다 위내시경을 병행했었다. 처음에는 3개월 텀으로 관찰을 지속하다가 그 주기가 4개월로 그다음은 5개월로 늘어났다. 의사 선생님께서 상태를 보고 진료일정을 잡으시는데 검사 주기가 길어질수록 일반인의 삶이 길어져 기분이 좋다.
오늘은 5개월 만에 진료를 보는 날이었다. 일주일 전에 이미 시티와 피검 엑스레이는 찍었고 오늘은 그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다. 괜찮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항상 병원 가는 전날에는 잠이 오질 않는다. 오래간만에 마신 커피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새벽녘까지 긴 시간 잠이 오질 않았다.
새벽녘까지 눈을 감고 뜨며 간간히 미국 주식창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병원 어플을 통해 일주일 전에 뽑아간 나의 피검사 수치를 미리 살펴본다. 트럼프 당선으로 테슬라의 주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가고 나의 피검사 수치도 정상에 가깝게 좋아졌다. 올해 시작한 운동덕인가? 다시 시작한 일을 해서 규칙적인 생활덕인가? 어찌 되었든 꺼져가던 불씨가 바람을 만나 마른 장작과 함께 활활 타오르는 형국이니 나의 사주팔자가 급 궁금해진다. 어디에선가 커다란 불이라 했는데 올해 건강과 일 모두 잘 풀리니 행복하구나.
별일 없냐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은 매번 똑같지만 긴장된다. 이상 없고 우리 이제 6개월 후에 보자고 하신다. 좋은 신호이다. 암환자인 나는 쌩쌩한데 담당 종양내과 노교수님께서 마스크 너머로 기침을 하신다. 걱정돼서 나올 때 교수님 감기 조심하세요. 라며 뭔가 바뀐 상황이지만 자연스러운 인사를 건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분명 같은 길을 오가고 같은 도로 위며 같은 빨간 버스인데 병원 갈 때의 마음과 집에 갈 때의 마음이 다르다. 좋은 결과를 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네 친구들에게 번개를 쳤다. 언니들 점심 같이 먹어요~
카톡으로 점심 번개를 치자마자 sms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띠링-
본교 기간제 서류전형에 합격하셨으니 면접 일정을 위해 교무실로 연락 바랍니다.
모지? 지난주 금요일이 합격자 발표날이었는데 왜? 오늘 연락이 오는 거지? 의아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뭐든 합격은 좋은 것이니까. 내부사정은 알 수 없지만 내가 최종면접까지 갔고 면접을 위해 내교하라는 하셨고 교감선생님께서 오후에는 조퇴하셔야 하니 일찍 오라고 오더가 떨어졌다. 이러면 마음 편히 점심을 먹겠나? 동네친구들에게 내가 친 번개를 내가 다시 거두고 집에 가서 기간제 면접 준비를 했다. 짧게 수업 시연도 준비하라고 수업지도안도 갖고 오라고 했다. 퇴직하고 모든 학교에서 제발 와달라고만 했지 면접을 이렇게까지 준비하라고 한 곳은 처음이라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수업이야 지금 하고 있는 6학년 과학수업으로 결정하고 해당 단원 지도안을 찾아 프린트해서 면접에서 어떻게 발문 할지 정리해 보았다. 1반부터 7반까지 과학전담을 해서 해당 단원은 지도안 보지 않아도 다 외우고 있을 만큼 익숙했기 때문에 수업 시연은 걱정되지 않았다. 번거롭고 싫은 상황인 동시에 새로운 도전이 설레고 기대되었다.
새로운 곳에서 근무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늦지 않게 교무실로 도착해서 대기하며 갖고 온 서류를 제출했다. 면접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고 계약서 쓰러 다음에 오라고 하셨다. 퇴직하고 나니 나를 찾는 곳이 많아지고 어딜 가든 붙고 환영해 주니 난 퇴직하고 건강도 잡고 일도 잡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퇴직과 동시에 모든 상황이 좋아지니 지금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새롭게 만날 5학년 아이들과 만남이 기대된다. 딱 기다려 얘들아~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