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게 없는 나는 무한 매력 교사라고 스스로 생각함.
2주간 과학교사로 취업했다. 병원을 가야 하는 주간이기도 하고 좀 쉬면서 여유 부리려고 했는데 가만히 두질 않는다. 한 번 나갔던 학교에서 계속 연락을 주시고 또 다른 교감선생님께 소개에 소개에 소개에... 잘 알지도 못하는 분에게 전화 오고 용인에서도 연락 오고 안양에서도 연락 오고 연일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연락이 끊이질 않는다. 나의 인기가 이토록 하늘을 찌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예비선생님들이 2학기에는 공부하려고 대거 빠져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인기 상한가의 비결이다.
휴직 5년간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 매우 다양한 학년과 과목으로 계속 나를 단련시키고 있다.
이것도 해볼래?
이것도 해봐.
이건?
다양한 학년 다양한 교과목 전담교사등.
결론은 너무 재밌다.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인처럼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즐겁다. 아마도 쉬지 않고 일했다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쉴 만큼 쉬고 오랫동안 전업맘으로 가정에서 살림을 하고 결정적으로 사춘기 와서 반항해 대는 아들놈과 함께 있는 것보다 일하는 게 백배 천배 낫다.
너랑 붙어 앉아 싸우느니 차라리 돈을 벌자. 그리고 그 돈으로 외주를 주고 너와 나의 관계를 돈으로 사자.
그게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
나의 판단은 적중했다. 아침에도 스스로 등교하고 하교하고 와서도 혼자 간식 먹고 학원가는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미안했다. 퇴근 후 비로소 상봉하는 우리는 전보다 포근하게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혼자 모든 걸 해내는 아들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진 엄마는 한층 친절해졌다. 사실 친절 해졌다기보다 학교에서 일하느라 기운 다 빼고 들어와서 화낼 여력이 안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래 어차피 운명이야. 니 밥벌이는 하며 살겠지.' 이렇게 예전보다 아들에게 집착이 옅어지며 아이도 편안해졌다. 사실 애랑 집에서 싸우면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데 학교 가면 학생들이 날 좋아해 주고 말도 아들놈보다 훨씬 잘 들으니 학교 가는 게 힐링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사춘기 아드님 덕분에 엄마는 직업 만족도 10000%입니다. 이러니 내가 너한테 반할 수밖에.
물론 학교에서 항상 힐링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집에서 사춘기 아이랑 밑바닥 아니 땅굴 파대며 개싸움 하는 것보다는 훨씬 우아하지.
이번에는 만만치 않은 학군의 6학년 아이들 과학 수업을 맡았다. 실험도 해야 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과학실에서는 긴장하며 아이들 안전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첫 수업날.
"오! 새로운 샘이네. 안냐세요?"
"유후~ 오늘 불 시험해요?"
우당탕 퉁당 책 떨어뜨리고 삐딱하게 앉고 말이지. 졸업을 앞둔 6학년들의 겨울은 말년병장의 모습이다.
이것들이 나를 언제 봤다고 안냐세요? 인사하는 꼬락서니 보니 견적이 주욱 나온다. 안 되겠다. 오늘 불 이용한 연소실험 하는데 기강 잡지 않으면 아이들 사고 나서 다칠 수도 있다.
무표정
"회장, 인사."
짧고 단호하게.
그리고 응시.
이러면 된다. 기싸움에서 밀리면 끝이다. 첫 수업에서 너무 무섭게 했는지 한 여학생이 집에 가서 과학선생님 무섭다고 부모한테 이야기해서 민원도 들어왔었다. (네네 따님께는 조금 부드럽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이럴 때 참 힘 빠진다.)
간단한 소개와 수업에 임하는 나의 마음 가짐을 항상 이야기한다. 저학년 아이들은 사랑을 퍼주지만 고학년은 그랬다가는 망한다.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이 되어야 교육이 가능하다. 수업준비는 철저하게 해야 하며 배경지식을 틈틈이 이야기해 주면 효과가 올라간다. 똑똑한 척해야 한다.
과학수업은 영재교육강사를 하며 아이들과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던 것을 적용해서 뭔가 있어 보이게 학생들에게 무한한 책임감을 부여하며 별것 아닌걸 대단한 것처럼 포장해서 약을 쳤다. 물론 교과과정을 아주 엑설런트 하게 주입식으로 한 톨도 까먹지 않게 알려주고자 나름 연구한 것이다. 2주의 짧은 기간이지만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과학자처럼 아이들에게 생각하게 하고 직접 실험설계를 거쳐 검증하는 과정을 프로젝트로 진행했다.
있어 보이게! 어깨 으쓱해지게! 를 모터로 모든 수업은 진행된다. 자신감 팍팍 넣어주며 아이들이 마치 대학원에서 논문 발표하는 것처럼 가설 설계한 것을 마이크를 쥐고 앞에 나와 직접 소개하도록 시켰다. 얼토당토 안 한 가설들이 나왔는데 이런 것들도 전부 수용했다. 아이들을 부르는 호칭도 과학자님들이라고 불러주었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역할을 부여하면 그렇게 돼버린다. 그 모습을 보는 게 참으로 즐겁다.
우리 놀자판이었던 까불이 과학자님들은 진지하게 실험을 설계하고 검증하며 가설의 오류를 찾아내어 성공적으로 실험관찰 보고서까지 완성했다. 사실 교과서 내용 실험하고 결과 실험관찰에 쓴 것이다. 그걸 열나게 멋져 보이게 포장해서 아이들에게 마치 너네 대단한 것 해낸 것처럼 풍선을 많이 불어넣어 준 거다.
마지막에 연소와 소화단원에 실생활적용하기에서 소방관들의 방화복을 디자인하며 단원을 마무리한다. 또 또 약을 쳐서 이번에는 공모전을 열었다. 내가 생각해도 즉흥적이고 웃긴데 이런 것들이 초등학생들에게는 킥이다.
디자인을 직접 하고 소재도 생각해 보며 정성껏 공모전에 출품한 아이들 작품을 전시해서 댓글 달기도 할 수 있도록 피드백도 주었다. 연소와 소화단원을 너무 멋지게 끝내서 교사인 나도 학생들도 만족도가 높았다.
우리 과학자님들과 함께한 2주가 어느덧 지나고 마지막날이다. 아이들이 찾아와서 해준말들이 예쁘다.
"선생님 오래간만에 학교가 즐거웠어요. 과학이 참 재밌어졌어요."
이 말 듣는데 눈물 나는 걸 참았다. 까불이가 저런 말하면 찐이다.
"과학자 프로젝트 또 해보고 싶어요. 선생님 어디로 가세요? 안 가면 안돼요?"
응 안돼. 열심히 해줘서 내가 고맙지.
"선생님 과학시간이 기다려졌어요. 오랜만에 너무 재밌었어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르르 아이들이 와서 시키지도 않은 소감을 이야기해 주니 노력을 보상받은 느낌이다.
이 맛에 교사하지!
행복해 얘들아.
나도 행복할게.
과학실무사님께서 아침마다 저렇게 챙겨주셨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나를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들 덕분에 좋은 기억 안고 갑니다. 아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