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죄송하지만 그만 두겠습니다.
두 곳을 늘봄 책놀이 강사로 나가는데 그중 금요일 수업은 학생수가 매우 적다. 학생수가 적어서 교사 입장에서는 편하지만 때로는 난감하다. 수익자 부담이 아니어서 내 입장에서는 학생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편하긴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1:1 과외도 아니고 이게 무슨 예산 낭비인가 싶다. 정규 교육과정 교사 시간 강사의 경우는 1시간당 22000원~ 26000원까지 경력에 따라 급여가 다르다. 평균 24000원이라고 했을 때 늘봄은 1시간에 60000원이다. 시간당 급여가 놀라울 정도로 차이가 나서 두 군데 다 일하고 있는 나는 종종 현타가 온다. 분명 이것은 정규 교육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에 대한 역차별이다.
게다가 아이들도 들쑥날쑥 오고 어제 같은 날은 단 한 명이었다. 편하면서도 이건 아니라는 양가적인 마음으로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활동적인 책놀이 수업에 친구가 없다는 것은 내가 짝꿍이 되어서 같이 활동도 하고 놀이 상대도 되어주고 같은 초1이 되어서 최대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야 함을 의미한다. 늙은 짝꿍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착한 일학년 아가들은 기쁘게 수업에 참여한다.
타임당 담당 선생님이 2명인데 그날 참여한 아이들 수가 3명이었다. 1명 2명으로 구성해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그중 1명은 태권도에 가야 한다면서 집에 가버린다. 그러면 교사 1명당 1명 학생으로 수업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과도한 예산 낭비가 아닌가 싶다. 각 학교급별로 교실을 꾸미고 몇 명 되지도 않는 애들을 교사 1:1 수준으로 맞춤형 교육을 시키는 게 안타까웠다. 더 자리 잡히면 지금 보다야 낫겠지만 현실은 돌봄 교실의 연장선상인데 예산만 들이붓는 느낌이다.
애들 입장에서 보면 소수의 아이들이 스페셜케어를 받으니 그 아이들은 행운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실 안에서 수업하며 느낄 수 있는 뿌듯함과 교육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건 아닌데...라는 마음으로 한 달 남짓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계약상 없었던 겨울방학 예산이 내려왔다고 겨울에 아침 9시에 수업을 해야 한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방학에는 하기 싫다. 방학 근무를 발단으로 결심이 섰다. 그만둬야지. 난 이미 퇴직한 전적도 있잖아. 두려울 것 없어. 내가 그만두면 실무사가 공고도 다시 내야 하고 강사 면접도 준비해야 해서 무지 싫어할게 뻔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말 꺼내기가 어려웠다. 용기 내서 솔직히 말을 전했다. 끝까지 해야 한다 이러면 안 된다 말이 많았지만 후임자 구할 때까지 계속 일하겠다 죄송하다 말씀드렸다. 공고를 내자마자 바로 구해지다 못해 아직 내 계약기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음 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계약직은 이런 거구나. 내가 먼저 그만둔다고 했지만 그만두는 시기는 그쪽 마음대로였다. 2주 정도 앞당겨서 미리 그만둬져 버려서 이제는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2주간 수요일에 대학병원 정기검진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강사를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왜 그만두냐고 늘봄 실무사에게 질책을 받으며 일찍 그만둬져 버린 나의 책놀이 수업은 당분간 휴업이다. 분명 아이들은 그림책을 사랑하고 활동을 좋아했다. 이 수업을 위해 도서관도 수없이 드나들며 자료조사도 많이 했고 나의 책놀이 연구회 인터넷 카페도 만들었다. 관심 없던 분야를 새롭게 열었으니 나도 얻은 게 많다. 게다가 후임자가 구해지지 않았다면 계속 신경 쓰였을 터인데 바로 구해져서 내 마음도 편해졌다. 일이 술술 잘 풀린다. 역시 퇴직자는 자유롭다!
이제 좀 쉬자 병원도 다니고 친구들도 좀 만나자.
친정부모님 생신이라 태안 펜션에서 캠프 파이어 하며 마시멜로우 굽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주말인데...
"선생님 안녕하세요? 00 교감 소개로 연락드립니다. 혹시 지금 근무 중이신가요?"
난 일을 그만둔 상태니까.
"안녕하세요? 아니요. 지금은 쉬고 있"
내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쉬고 있다는 단어를 듣자마자 속사포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 잘되었네요. 선생님 저희 학교 2주간 강사로 부탁드릴게요."
"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습니다. 제가 2주간 수요일마다 병원진료가 있어서 오전에는 수업이 어려워요."
"문제없어요. 수요일 빼고 다른 요일이라도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이코. 2학기 사람 구하기 힘들 때라 교감선생님 얼마나 급하셨으면 주말 저녁에 연락하실까 싶다.
"네, 알겠습니다."
2주간 놀려고 했는데 또 못 논다. 친구들이 우는 소리 하고 난리다. 너 왜 퇴직하고 일을 소처럼 하냐고.
아니 근데... 내가 난 가만히 있어도 계속 부탁하는데 어떡하냐고
그리고 오랜만에 일 나가니 기깔나게 재밌거든!
돈도 벌고 보람도 있고 사회생활하니 행복하거든!
기다려 언니가 맛난 거 사 줄 테니!라고 달래며 겨울방학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