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물건 이제 좀 그만 만질래?
오늘 만나는 반의 수업은 다행히도 책상도 있고 의자도 있다. 미래교실이라고 앞에 커다란 전자칠판이 있고 뒤편에는 일곱 개의 작은 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의욕이 넘치는 최샘은 교실 뒤편 일곱 개의 방중에 가장 큰 방에 아이들을 앉히고 오늘 준비한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이상과 현실은 정말 다른데 말이다. 뭘 바란 거냐? 난.
책표지부터 호기심 불러일으킬 수 있게 포스트잍으로 제목을 가려서 왔고 실감 나게 읽어주면 아이들이 쏙 빨려 들어서 나만 바라볼 줄 알았다. 왜냐하면 정규 수업 때는 이렇게 하니까. 실물화상기로 확대해서 반전체 아이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책을 보여주며 육성으로 읽어주면 반 아이들이 숨죽여가며 몰입하니까. 방과 후에 자유분방한 마음으로 모인 아이들에게는 교실과 다른 특별교실의 넓은 공간은 키즈카페처럼 느껴졌으리라.
책 읽기를 시작하려고 포스트잍이 붙어있는 책을 들어 제목 맞히기를 하자고 소개하려는 찰나에 앞에 있던 윤지가 포스트잍을 낙야채며 때었다. 와... 스팀 받네.
"낄낄낄 책제목 이거네 이거"
재밌나? 이게? 무시당한 느낌까지 들었다.
"에이 선생님이 퀴즈로 낼 건데 먼저 공개해 버리면 안 되지. 윤지야 다음엔 그런 행동하면 안 돼"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을 거치지 않고 손이 먼저 나가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다음장으로 넘기려는데 '다음장 내가 넘길래요.' 이러며 묻지도 않고 손을 불쑥 뻗어 책장을 넘겨버린다. 얘가 이러니 다른 여자애들이 나도 넘겨보고 싶다고 난리다. 1학년 수업 수년간 해왔는데 방과 후에 만나는 느낌은 더더 어린 느낌으로 와닿았다. 게다가 오늘 만나는 아이들은 여자애들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과거에 앙금이 있었는지 매활동마다 서로 경쟁 구도였다. 앞에서는 서로 책장 넘기겠다고 아웅다웅거리고 뒤에서 남학생 두 명은 앉지도 않고 일어서서 춤을 췄다. 또 눈물인지 땀인지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는 길인가? 통제가 잘 안 되니 스스로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나 적성에 너무 안 맞네. 엉엉엉
규칙 다시 설명하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는 것을 알려줬다. 책장은 당연히 선생님이 넘기는 것으로 다시 알려줬다. 뒷 내용을 추측할 수 있도록 발문 하며 최대한 생각거리를 준 후 뒷장을 넘기려고 했다. 그 순간 또다시 윤지의 손이 다가와서 뒷장을 넘겨버리며 뒷장 내용을 말해버렸다. 충동 조절이 전혀 안 되는 느낌이다.
앞으로의 수업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책 내용을 살펴본 후 책상과 의자를 지정해 앉혔다. 독후활동지를 하려고 각자 필통 준비하라고 말하자마자 윤지가 교실 앞에 서랍장 쪽으로 뛰어나간다. 경계도 없고 그냥 내 갈길을 가고자 하면 가는 느낌으로 마음껏 행동하는데 너무 황당했다. 교실의 비품들을 모두 마음대로 뒤지고 만지고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모습에 기가 찼다. 그냥 학교 물건은 모두 자기 거 인양 갖다 써댔다.
"선생님이 필요한 물건은 서랍장에서 꺼내서 줄 거예요. 앞으로는 선생님 물건 만지기 전에 물어봐야 돼. 선생님이 윤지 물건 말도 없이 만지면 기분 좋지 않지? 기다리면 선생님이 직접 갖다 줄게."
"선생님 얘 우리 반에서도 저래요. 다른 사람 물건 말도 없이 만져서 매일 혼나요."
"내가 언제? 네가 뭘 알아. 거짓말하지 마."
"너 오늘도 혼났잖아. 우리 반이니까 알지."
이번엔 둘이 다투려고 하길래 뜯어말렸다. 난 책과 함께 즐겁게 독후활동도 하고 글짓기도 해보고 놀이활동도 해보고 싶어서 왔는데 아이들은 그게 아닌가 보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니까 우린 힘들겠지. 뭔가를 내가 정해놓은 교육 목표까지 달성되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아이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상심하면 일을 못할 것 같았다. 잘 달래고 어르며 교육과 보육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집에 가서 누워있어야지. 아 당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