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놓은 줄 알았잖아.
책수업 첫날부터 간식을 요구했던 터줏대감 느낌의 세은이가 두 번째 수업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맡겨놓은 물건 찾으러 온 것처럼 이야기했다.
"선생님 오늘 간식 가져오셨죠?"
모지? 넌 고작 여덟 살인데 왜 내가 쫄리는 느낌이지? 지면 안되지.
"세은아 선생님이 알아봤는데 간식은 돌봄 교실처럼 오랫동안 수업받는 아이들한테 제공된데. 선생님이 간식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학교 규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야."
"전에 선생님은 줬어요. 우리가 계속 배고프다고 하니까 줬단말이에요."
이때부터 입이 댓 발 나와서 이미 토라졌다.
"우리 반만 간식 주면 다른 반에서 요구하겠지? 그러면 공평하지 않겠지? 규칙 지키자."
알아보니 징징징 하도 징징징 대니까 직전 강사가 마이쮸나 초코파이를 줬던 모양이다. 이미 다른 반에 소문나서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었단다. 내가 새로 온 강사니까 얘들이 나를 떠본 것이다. 스팀 받네.
담당자 선생님께서 오셔서 늘봄수업에는 간식이 없다고 다시 타이르셨고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러 이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터줏대감 세은이가 여론몰이를 시작한다.
"얘들아, 난 옛날 선생님이 더 마음에 들어. 지금 규칙도 많아지고 재미없어. 안 그러니? 너희들 생각도 그러지?"
와... 드라마 대사인가? 사람 면전에 두고 할 말 안 할 말 다하네.. 간식은 초석일 뿐 중심 잡지 않으면 휘둘릴기세다.
"옛날 선생님이 너~~~~ 너무 좋았구나. 그렇지만 그 선생님 이사 가셔서 어쩔 수 없지요. (지금 선생님은 난데? 너 지난주에 제일 열심히 수업 참여 해놓고 이러기냐? 씩씩) 선생님도 너희들과 함께 재미난 수업 하려고 열심히 준비했어. 같이 파이팅 해보자.(웃으며 말했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느낌)
뾰로통한 여학생 고객님들 달래고 있으니 에너지가 활화산 수준인 남학생이 교실을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저 옆돌기 선수 다요." 이러며 드넓은 체조교실에서 옆돌기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등에 땀나더니 머릿속에서 땀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땀이 이마를 가로질러 눈꼬리까지 떨어졌다. 이 모습을 본 세은이가 물었다.
"선생님 울어요?"
그냥 울까? 울었다고 할까? 잠시 갈등했다. 얘들아 땀이다 땀. 내가 진땀이 난다. 엉엉
드넓은 교실에서 그것도 발랄 그 자체인 일학년 아이들과 의자도 없는 곳에서 집중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활동위주로 철저히 커리큘럼을 짰다. 수업준비하는데 정규교육과정 수업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숫자 고무방석을 일단 샀다. 고무에 숫자가 쓰여있어서 자기 자리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초기 문해력 신장을 위해 책 속 다양한 단어들을 재미나게 활동하려고 교구들을 몇몇 구입하였다.
이번주는 릴레이 낚시놀이로 단어를 낚아서 책의 내용의 흐름을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과거 대학원에서 접했던 시네틱스 아이디어 발상 기법을 수업에 적용해 보았다. 시네틱스 기법을 간략히 설명하면 서로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조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내는 아이디어 발상 기법이다. 구슬 같은 우리 일 학년 아이들의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즐겁게 글짓기할 수 있도록 생각해 낸 아이디어이다.
팀전으로 릴레이 낚시해서 획득한 단어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게 수업의 핵심 아이디어이다. 각자 자기 팀 응원하느라 이분들이 목청이 터져라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아이들과 놀아주며 학습적으로 도움을 주기가 쉽지 않지만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물론 낚시 놀이 할 때처럼 즐기진 않았지만 새로운 단어로 조합해 글짓기하는 것을 거부감 없이 따라와 줬다.
뾰로통 간식대장 세은이가 수업 끝나고 나가는 길에 선생님 다음 주에도 낚싯대 갖고 와요. 이런다. 세은아. 왠지 네 말을 들어야 할 것처럼 넌 참 카리스마 넘치는구나. 선생님 머리에서 땀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