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쾌감
주기적으로 감정이 메마르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박효신의 야생화를 듣는다. 더 정확히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7년 전에 촬영한 라이브 동영상을 돌려본다. 7분 11초 동안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백색의 박효신이 원형 무대에서 핀조명을 온몸으로 받으며 관객과 아주 가까이에서 노래한다. 노래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내가 직관 했었다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출처 :유희열의 스케치북>
노래하는 동안 온몸의 털끝하나 세포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모든 공간의 구석구석까지 울림을 전달하려 한 순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숨을 쉬는 동안 숨을 멈추는 동안 노래하는 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박자를 타는 동안 모든 순간이 야생화 노래로 가득 찬다. 그 순간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은 평생토록 저 순간을 잊을 수나 있을까?
대체 사람의 진심은 이토록 위대한 힘을 갖는데 왜 사람들은 입으로만 진심이라고 믿어달라 말할까? 말하지 않아도 진심이면 이토록 느껴지는데 말이다. 7분이 넘도록 눈을 감고 공연한 그가 마지막 소절을 끝내고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공연이 끝났는데도 숨죽여 기다린다. 생방송인데도 그 어떤 것도 송출되지 않고 소리도 동작도 멈춘다. 공연 끝의 모든 것을 토해낸 후 찾아온 정적은 그 어떤 감동보다 더 크게 와닿았다. 감히 박수도 나오지 않은 물밀듯 차오르는 감동에 취해 가수가 마지막을 알리는 허밍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린다.
예술이라는 것은 무엇이길래 이토록 아름다운 것일까? 무엇이길래 이토록 여운이 남는 것일까?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감정에 취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쳐 생각지도 못한 섬세함과 세련된 표현으로 매혹당하고 나면 여운이 꽤나 길게 간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으며 쓰레기 같은 생각들로 가득 찬 머릿속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풀리지 않았던 복잡한 것들을 느슨하게 풀어버릴 때의 쾌감. 나에게 예술은 쾌감이다.
어린 시절 장마철 장대비를 우산 없이 맞으며 느꼈던 해방감이 떠오른다. 묵직한 빗방울들이 머리를 툭툭 때릴 때 감각, 옷 입은 채로 옷을 적시며 느꼈던 금기를 깨는 쾌감과 작고 여린 몸으로 장대비를 버티며 넘어지지 않고 우뚝 서 낸 뿌듯함. 한참이나 빗속에서 버티며 비를 맞고 나면 스스로 더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어른 기분에 취해 감기에 걸려서 고생했던 것도 잊고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일부러 두고 학교에 갔었다. 그때의 기억이 좋아 지금도 갑자기 내리는 폭우를 보면 나도 모르게 밖에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미술 작품을 보며 나만의 장대비를 찾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야생화 음악은 장대비만큼 강력하게 내 머리를 툭툭치고 온 마음을 적신다. 그럴 때면 나는 기꺼이 우산을 던져버리고 온몸으로 야생화비를 맞으며 행복해하면 된다. 어른이 되어서 비를 맞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