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P를 향한 치밀하고 소심한 복수행각
사춘기가 온 아이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방청소를 하는데 책 사이에 꽂혀있던 쪽지를 발견했다. 나름 잘 숨겨둔 것 같은데 나의 레이더에 잡힌 것이다. 애미가 소심하게 남은 모르고 나만 아는 복수를 하며 혼자 즐기듯 아들도 비슷한 마음으로 키득 댔을 것이다. 공부 체크리스트 만들라고 할 때는 안 하더니 스스로 나쁜 아이 행동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숨겨놨다. 게다가 하나하나 체크하며 실행까지 하고 있는게 아닌가. 수학 심화를 하도 시켰더니 행동 리스트도 필수와 선택 편으로 난이도까지 구분해 놨다. 아마도 P=아빠 M=엄마를 지칭하는 것 같다.
<나쁜 아이 행동들 필수 편>
부제 : 삐뚤어질 거, 제대로 삐뚤어 지자!
1. 내 말이 틀려? 할 때 틀리다고 하기
2. 욕을 할 때, 욕 좀 그만하라고 하기
3. 당당히 서서 나는 잘못이 없다 말하기
4. 억울하냐고 할 때, 억울하다고 하기
5. 협박에 주춤하지 않고 난 그래도 상관없어라고 하기
6. 사과를 해도 받아주지 않기
7. 모든 퀘스트 통과 시 즉시 폐기하기
8. 끝까지 꼬투리 잡기
이렇게 주도면밀한 아이였었나? 이미 두 개는 완료했고 나머지는 다 하면 폐기한다니 웃음이 피식피식 나왔다. 아들아, 이미 저기 있는 거 다 하고 있거든? 협박에 주춤하지 않고 끝까지 꼬투리 잡기는 상상되서 귀엽기까지 하다. 필수 편 뒤에 선택편도 있다.
<나쁜 아이 행동들 선택 편>
1. 몰게임하기
2. M, P 말 못 들은 척 무시하기
3. 공부 중 대놓고 딴짓하기(위험)
4. M, P 가 만든 규칙들을 어기기
4개 중 2개는 해야 함
(제대로 해보는 거야!!!)
성공 시 그림 -> EZZZZZ
필수먼저 안 하고 선택 먼저하고 본인이 만든 규칙인데도 순서 없이 하는 것이 수학문제 풀 때랑 똑같다. 체크리스트 하나씩 지워가며 얼마나 재밌었을까? 집안 구석구석 저런 속마음 쪽지들을 발견할 때마다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삐뚤어질 것 제대로 삐뚤어지기 위해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어 실행하는 녀석의 마음이 느껴진다. 반항끼가 넘쳐흘러 분출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서 좀 받아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춘기 아드님이 제대로 삐뚤어지기 전에 마음을 좀 헤아려 줘야겠다. M, P를 향한 치밀하고 소심한 복수행각 이런것 말고M과 P에게 효도 하기 체크리스트 이런건 어디 없을까 싶어 방구석 뒤집어 가며 청소해도 그런건 없었다. 뭘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