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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Aug 19. 2024

잠복수사

새벽 몰폰 수사사건

"빨리 일어나. 학교 가야지. 해가 중천이야. 빨리 일어나. 빨리!"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안 뜬다. 의식이 없나? 죽은 듯 자서 놀라서 더 세차게 흔들었다.

"아... 흠냐. 나 1분만 아니 30초만... 눈 조금만 더 감고 뜰께. 코...."

엉덩이를 두들겨 가며 창문을 열고 큰소리를 내도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린다. 이상하다. 어젯밤에 일찍 잤는데 아침시간에 이렇게까지 눈을 못 뜬다고? 아무래도 미심쩍다. 급성장기에는 애들이 자도 자도 졸려한다던데 이제는 키가 좀 크려나? 요즘 들어 부쩍 아침에 일어나는 걸 힘들어한다. 어릴 때도 야행성이라 밤에 눈이 반짝거리고 아침잠이 많긴 했어도 이 정도로 못 일어나지는 않았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눈을 반쯤 감고 영혼이 가출한 상태로 등교했다.


저녁을 먹은 후 아이가 샤워를 하러 들어갈 때 살짝 핸드폰 내역을 들여다봤다. 비번을 누르고 슬쩍 보고 내려놓으려고 재빨리 기록을 스캔했다. 이거 봐라. 배신감에 뒷목이 빳빳해졌다. 같은 반 준영이랑 밤새 문자해가며 신나게 게임을 즐기셨다. 욕을 써가며 누가 누가 더 세나 내기하듯이 새벽까지의 밀회를 즐기니 아침에 눈을 못 뜨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샤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화가 나면 아랫입술을 무는 버릇이 있는데 너무 세게 물어서 입술이 아파왔다. 취조의 시간.


"어제 몇 시에 잤어?"

"아... 왜? 바로 잤는데. 왜 엄마 왜?"

"아침에 못 일어나던데? 늦게까지 게임한 거 봤어. 너 인마."

"엄마 남에 핸드폰 몰래 보면 반칙이지? 와... 기분 나빠. 와... 엄마 진짜 나빠."

"나만 나쁘고 넌 안나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너 지금 방귀 뀌고 사람 패는 수준이야. 어제가 처음 아니지?"

"엄마, 그게 아니고 어제 너무 재밌어서 준영이랑 새벽까지 했어. 시간이 그렇게 되는지 모르고 그랬어."

"끝까지 잘못했다 소리 안 하네.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내가 이러라고 핸드폰 사준 거야?"

"잘못했어요. 아빠한테 말할 거지?"

"그냥 못 넘어가 너 한 번이 두 번 되고 그러다 세 번은 더 쉽고 나중에는 자동으로 이어져. 실망스럽다. 정말. 다음날 지장 있잖아. 핸드폰 사용 시간 안 지키면 핸드폰 사용 못하지."

"엄마 한 번만 봐주세요. 기회를 한 번만 줘 다신 안 그럴게."


알고 보니 그전에도 몇 차례 친구와 몰래 폰 하며 지들끼리 새벽타임을 즐겼었고 그동안 큰 의심 하지 않고 아이를 믿었는데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배신감이 컸다. 뭘 바라냐. 자유를 주고 자유를 못 누리게 하면 고통이지. 바로 스크린타임 설치. 모든 앱은 비활성화되고 전화와 문자 등 통신의 기능만 살려놨다. 아이는 이럴 거면 핸드폰을 왜 사줬냐고 반항했다. 이제는 새벽에 잠 좀 푹 잘 수 있겠다 싶었다. 이상하다. 분명 모든 앱에 스크린 타임을 설치했는데 아이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좋아한다. 뭐지?


"엄마, 나 이것 봐 핸드폰 뚫었다. 키키키 지도앱으로 들어가면 인터넷 된데 애들이."

막았다.

"엄마, 나 영어숙제 하게 사전앱 켜줘."

사전앱을 통해서도 인터넷이 연결된단다. 막았다.

모든 걸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영상을 보고 있다. 뭐지? 신인가?

세상해. 사진갤러리에 게임동영상을 녹화해서 넣어두고 아쉬운 데로 그걸 보고 있다. 너란 녀석 잔머리 대마왕인가?

바로 막았다.

문자로도 접속가능 한 방법이 있단다.

막았다.

난 뭐 기업 전산팀 해커 방어반처럼 다 막았다.

이제는 핸드폰 카메라 갤러리 문자 모두 막아놨다.

순수하게 전화만 된다. 순수폰! 이럴 거면 아이폰을 왜 사준게냐. 아비가 원망스럽다.

모든 걸 막았는데 숙제하다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대체 뭘 하는 건지 궁금해다. 인기척 나지 않게 조심하며 살금살금 불시검문하니 세상해나 타이머로 장난치고 있다.

이것까지는 모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참았다.

이쯤 되니 인간의 뇌구조가 궁금해진다. 스마트폰에 무한 중독에 빠져드는 이유가 뭘까?


몰래 새벽에 인터넷 할까 봐 며칠간 잠복수사 했더니 잠이 부족해서 낮에 정신이 멍해진다.

아기 때는 새벽수유하느라 잠 못 자고 애가 크니 전자기기 사용 못하게 하려고 잠 못 자고.

더 크면 무엇 때문에 잠 못 드는 나날이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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