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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Aug 26. 2024

책 먹는 여후손님 새끼  

사춘기 아이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바라보기 

  우리 집 단골손님의 이름은 '후'이다. 후 손님은 월요일 하교 후에 아무 스케줄이 없다. 덕분에 조금은 여유를 부릴 수 있다. 단골을 위해 월요일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흥미로운 책들을 미리 책장에 채워 놓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 손님은 어김없이 책을 집어 들었고 맛있게 음식을 먹듯이 책을 몇시간이곤 먹어치운다. 여기까지는 딱 좋다. 안타깝게도 책 대식가 손님은 절제력이 약하다.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 사이에서 항상 하고 싶은 일들을 먼저 택한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버티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어김없이 같은 멘트를 날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요. 제발 제발이에요. 아직 남았다고요.


'지옥의 문 앞에서 제발 한 번만 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조금만 더요.' 라고 외치는 죄수처럼 처절하게 자유를 갈구한다. 탐욕스럽게 자신의 욕망만 채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과 원망과 나의 원죄는 무엇일지 까지 떠올리게 된다. 왜? 대체 너는 이 모양 이 꼴이냐.

  끝없이 자유의지를 갈구하는 손님 후는 자유의지가 강한 것은 인간의 기본 본성이라며 강하게 주장하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건 인간다움을 잃는 것이라 맞선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을 하는 날에는 침을 튀기고 선을 넘으며 격렬한 언쟁이 오가고 나서야 끝이 난다.

해야 할 일에 대해 강력한 반감을 갖고 대체 왜 이런 일들을 해야 하냐고 적대감을 품은 공격을 받고 나면. 난 이 창조물을 같이 만든 조력자에게 묻는다. 대체 내가 뭘 잘 못했냐고? 결국 네가 제일 문제라고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동네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만약이라는 말처럼 힘이 약한 말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렇게 라도 안전장치를 해놓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서 혹여나 만날까 봐 안전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손님은 숫자와 전혀 친하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면 머리 쓰고 깊게 고민하는 것에 발작증세가 있는 것 같다. 숫자문제에 직면하기 싫어 끝없이 회피하며 피하고 피하다 겨우 문제에 맞닥뜨리면 순식간에 분노발작에 휩싸인다. 파르르 눈가를 떨며 강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다 이네 포기하고 억지로 받아들인다. 그 후에는 부작용으로 먹을 것을 찾는다. 먹을 것이 없을 경우 자신의 손톱을 잘근잘근 씹는다. 죄 없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화장실에 간다. 치질 걸린다고 빨리 나오라고 채근해서 겨우 나온 후에는 연신 을 마셔댄다. 손님의 취향은 매우 확고해서 한번 싫은 것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있다. 숫자들과의 만남이 좀처럼 싫은지 그들과 눈 맞춤을 자주 회피한다. 숫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고 기본예절 교육을 시작하면 굵은 눈물방울로 화답한다. 덕분에 숫자책은 우굴 쭈굴 울어서 꽤나 슬픈 소설책 같은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손님은 꽤나 스릴을 즐긴다. 연필을 열심히 굴려 숫자들에게 집중해야 하는데 손에 힘이 안 들어가는지 연필보다 머리로 눈으로 문제를 풀기 일쑤다. 가끔은 영감을 발휘해 떠오르는 숫자들을 마구잡이로 휘갈겨 써넣는다. 찍신으로 찍어서 써넣었는데 기적처럼 맞히기를 바라며 수많은 오답들을 만들어 낸다. 자신만의 스릴을 즐기느라 수많은 욕을 먹어도 안 들리는 듯 행동한다. 그동안은 듣는 척이라도 했다면 이제는 아얘 귀가 닫힌 것처럼 행동한다.


  손님 후는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즐긴다. 여행을 좋아하며 항상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며 살아간다.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떠나겠다고 떠나지 못해 남는 것처럼 행동한다. 해야 할 일들을 성실히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에 나도 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린다. 해야 할 것들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른이 갖고 있는 자유를 바란다. 어른은 자유도 있지만 할 일들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고 하면, 어른들이  하는 것들이 보잘것없고 매우 쉬우며 하찮다는 듯이 말한다. 어른의 삶의 자유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비난한다. 원하면 비난하지 말아야 하는데 무논리로 일관하며 자기 말이 맞다고 주장할 때는 아이팟의 노이즈캔슬링으로 잡소리를 막아버리고 싶다.


  손님이 휩쓸고 간 자리는 항상 티가 난다. 자신의 영역 표시를 온갖 곳에 펼쳐놓는다. 밀림에 살던 야수의 본능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교 후에 자신의 허물을 하나 둘 벗어던지며 걸음마다 영역표시를 해놓는다. 우연히 손님의 가방 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손님의 취미생활이 유물수집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것들을 잔뜩 모으고 버리지 않으며 소중히 다룬다.


  대식가의 면모를 두루 갖춘 손님 후는 책도 맛있게 먹어치울 만큼 미식대식가이다. 식탁에 원하는 음식이 없으면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내비친다. 자신은 육식동물인데 왜 풀밖에 없냐며 고기타령을 한다. 잠깐 심호흡하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출렁거리는 배를 좀 보라며 정신 차리기를 권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며 식탐을 부린다. 뚱뚱한데 주는데로 안먹고 먹을것 같고 타박하면 정말이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먹고 싶은 게 많아서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손님 후가 만족할 만한 세상이 있긴 한 걸까? 사춘기 아이는 귀한 손님처럼 대해야 가정의 평화가 온다는데, 세상에서 제일 많이 먹고 까다로운 손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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