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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구리 May 28. 2021

커피 없이 현대사회 살아남기


설렘보다 걱정이 컸던 스타트업 인턴 첫 출근 날 회식을 했다. 대표님은 8명의 직원을 딘타이펑으로 데려가셨다. 딘타이펑이 생소했던 나는 대충 중식당이라는 것만 감지했다. ‘인턴 첫날에 중국집이라니… 설마, <나는 짜장면> 레퍼토리[1]를 직접 겪을 기회인가? 나는 짜장면을 좋아해서 다행이네.’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직원들을 따라갔다. 다행히도 딘타이펑은 고급스러운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었고, 딤섬이 주요 메뉴인지라 모두가 짜장면을 시키는 불상사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딤섬을 맛있게 해치우고 넘어간 카페에서 일어났다.


“다들 드시고 싶은 거 고르세요. 저는 아메리카노 먹겠습니다.” 대표님이 말했다.


내 앞에 있던 6명의 직원이 차례대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그랬다. 눈치 없는 사회초년생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아메리카노를 시켜야 하나 고민되었다. 이성의 촉은 아메리카노를 말하라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망고 스무디가 입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머쓱하게 제가 커피를 싫어해서요.라고 말하며 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았다.


사실 호불호가 심하다고 정평 난 음식들일지라도 잘 먹는다. 민트 초콜릿, 하와이안 피자, 평양냉면, 닭발, 돼지껍데기… 다 좋다. 입맛이 예민하지 않은 탓에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커피를 싫어한다. 정확히는 커피를 못 마신다.


중학교 기말고사 시험 전날, 부랴부랴 벼락치기 공부한 적이 있다. 고종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의 한국 근현대사 연대기를 어떻게든 머릿속에 욱여넣어야 했다. 그때 마침 친구가 커피 우유를 줘서 집중도 안 되는데 잘됐다 싶어 고맙게 받아 마셨다. 그런데 카페인에 취약해서인지 그날따라 좋지 않은 컨디션 때문인지 커피 우유를 마시자마자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커피도 아니고 커피 우유인데… 어이가 없다) 글자가 그림으로 보일 정도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험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물을 많이 마셔서 커피를 배출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결과적으로 시험을 잘 봤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겪은 카페인 부작용은 꽤 당황스러웠고 괴로웠기 때문에 그 이후로 커피를 열심히 피했다. 과제나 시험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밤을 새워야 할 때도 커피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졸리면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걸 잘 알아서 애초에 밤샐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생기는 불편한 상황들이 종종 있었다. 대학교 팀 프로젝트 과제를 하다 보면 팀원이 약속 시각에 늦을 경우 사과의 의미로 커피를 사 오곤 했다. 애써 사 온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커피를 마시는 척했다. 직장동료가 커피를 사줄 때도,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커피를 사줄 때도 그랬다.


이런 비슷한 일들이 반복됨에 따라 커피를 사 온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내 건강도 챙길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만들기도 했다.


1. 테이크 아웃한 커피전문점의 아이스커피 →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연해진 커피를 마신다.

2. 캔커피 또는 팩커피 → 가방에 챙겨놨다가 다른 친구를 준다.

3. 커피 기프티콘 → 다른 음료로 바꿔 먹는다.

4. 테이크 아웃한 커피전문점의 뜨거운 커피 → 방법을 찾는 중.


그러나 항상 정해 놓은 방법대로 되지는 않는다. 언제  번은 팩커피를 가방에 넣었다가 잊어버리곤 터뜨려서 가방엉망 되었었다. 카페를 자주 이용하지 않아서 사용할 기회가 없는 커피 기프티콘의 사용기한을 놓친 적도 많다.  정도면 그냥 커피를 좋아해 보려고 노력해야 하나 싶다. 아침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친구처럼, 점심 먹고 졸린 눈을 뜨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직장동료처럼 나도 커피를 마시면 10시간만 살던 하루를 20시간   있지 않을까. 글을 쓰면 쓸수록 근육이 붙는 것처럼 커피를 마시면 마실수록 몸이 적응하지 않을까.


그래도 아직은 커피 없어도 견딜만하다. 커피는 마시지 않지만, 커피를 건네는 사람들의 따뜻한 응원을 받았으니. 만약 각박한 세상살이를 함께 견딜 사람이 없다면 커피를 피하는 방법이 아닌 커피를 마시는 방법을 연구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1] 나는 짜장면 레퍼토리: 상하 관계 분명한 회사의 직원들이 중식집에서 밥을 먹을 때, 최고 직위의 사람이‘나는 짜장면’이라고 하자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짜장면을 주문하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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