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의 계절-4

명단

by 하늘

결혼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해야 할 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웨딩홀 예약, 드레스 픽업, 신혼집 계약, 청첩장 인쇄. 체크리스트는 빠르게 지워졌지만, 그만큼 작은 말과 표정 하나하나가 더 선명하게 걸렸다.


“우리 집에 인사 가는 건 언제로 할까?” 내가 물었다.


그녀는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한참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굳이 꼭 가야 해?”


나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결혼하는데 서로 부모님께 인사드려야지.”


그녀는 창밖을 향한 채 낮게 말했다.

“나한텐 인사드릴 부모님이 없어.”


순간 내 손이 굳었다.

“엄마도…?”


그녀는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물 잔을 몇 번이고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툭 던졌다.

“엄마 장례식에도 나 혼자 갔어.”


순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 손에서 청첩장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흰 종이가 구겨지며 사람들 발에 밟혔다.


나는 얼른 주워 들며 말했다.

“… 그랬구나.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녀는 술잔을 들듯 물을 들어 단숨에 삼켰다. 표정은 잠깐 생기를 잃었지만, 금세 억지웃음을 지어냈다.

“힘들 것도 없었어. 그냥 그랬지.”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믿어야만 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섬뜩하게 떨렸다.




그녀는 오래된 원목 식탁 앞에 서서 손바닥으로 나뭇결을 천천히 쓸었다. 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갑자기 속삭이듯 말했다.


“이런 거 있으면 좋아. 상처 난 나무도 쓰다 보면 더 단단해져. 사람도 그렇잖아.”


나는 애써 맞장구쳤다.

“그래… 그런 것도 있지.”


하지만 그녀는 내 대답을 듣지 못한 듯, 나뭇결을 다시 쓰다듬고 있었다. 그 손놀림은 마치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처럼 보였다.


청첩장을 맡기러 가는 길에도 불안은 이어졌다.

“혹시 네 친구들 중에 꼭 와야 하는 사람 있으면 알려줘.” 내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에이, 한 명쯤은 있겠지. 대학 동기라든가, 직장 동료라든가.”

“없다니까.”


목소리가 높아졌다. 좁은 지하철 칸 안에서 몇몇 사람들이 흘끗 쳐다봤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그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끝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불 꺼진 방 안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 뜬 메모장에는 ‘하객 명단’이라는 제목이 있었지만, 그 아래엔 빈칸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그녀는 황급히 휴대폰을 덮고,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자기 왔어? 오늘 피곤하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웃고 있는 그녀가, 낯선 그림자를 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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