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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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버스라는 게 두어 시간마다 한 대씩 있어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시골살이의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나마도 어떤 동네는 하루 한두 번 오기 때문에 그걸 놓치면 군 소재지나 면사무소가 있는 곳에 가서 볼일 보기 힘들어집니다.
나이가 든 분들이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얼마를 준다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시골 사정을 모르는, 그야말로 책상머리 정책에 불과합니다. 버스가 골목골목 가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짐까지 있으면 자가용 없이 움직이기 힘든 게 시골의 형편입니다. 장애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연로한 분들을 위해 장애인 도움 천사 택시, 희망 택시 같은 것도 있지만 그걸 이용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거기다가 친절과는 거리가 멀어서 가시방석이 따로 없습니다.
버스 기사가 가장 신경 쓰는 게 바로 안전입니다. 노인들은 동작이 굼뜬데다가 팔다리 힘이 약해서 아차, 하는 순간 넘어져서 부상을 입습니다. 그래서 노인이 타면 그분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버스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노인은 느립니다. 승차할 때 카드를 대는 분은 몇 안 됩니다. 대개가 현금인데 어떤 할머니는 느릿느릿, 끙끙 아픈 다리를 끌고 버스에 올라와서 그제야 속바지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낸 뒤 일일이 세어서 1천7백 원을 요금통에 넣습니다. 지폐로 2천 원을 내면 기사가 스위치를 눌러 3백 원을 거슬러 줍니다. 그런데 그걸 챙기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 슬로우 모션을 보고 있노라면 성질 급한 사람은 숨넘어갑니다.
어제는 할머니 한 분이 중간 정류장에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준비한 돈을 통에 넣으면 되는데 기사님에게 동전을 내밀며 엉뚱한 말을 합니다.
“아, 이거 얼른 받으슈!”
기사님이 뭔 소린가 잠시 눈을 꿈벅거리다가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로 턱 끝으로 요금통을 가리킵니다.
“거기다 넣으시면 돼요.”
“그게 아녀. 사람이 뭘 주면 두 손으로 받는 게 예의여.”
몇 안 되는 승객들의 시선이 할머니 손에 모아졌습니다.
“어여, 받아.”
“아, 참. 거기 넣으세요. 우린 돈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여기 CCTV에 다 찍혀요.”
기사는 다시 턱짓.
“아, 난 그런 거 모르겠고, 어여 받아. 사람이 주는 건 사람이 곱게 받는 거라니까.”
“아이참, 오늘따라 왜 그러셔.”
할 수 없이 기사가 돈을 받아 통에 넣습니다.
승객 한 분이 중얼거립니다.
“치맨가? 그런 거 같지도 않아 보이는데.”
이 평화롭고 느긋한 광경을 지켜보다가 뜬금없이 니체 씨를 떠올렸습니다. 나에게는 니체 씨는 늘 화가 나 있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일본 작가도 ‘니체’라는 이름을 들으면 풍성한 콧수염을 달고 까칠한 눈빛을 한, 신경이 날카로운 철학자를 연상한다고 하더군요. 그건 아마도 “신은 죽었다!”고 외치며 산에서 내려온 짜라투스트라의 이미지 때문일 겁니다. 늘 화난 사람, 신경질 부리는 사람, 초조한 사람.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니체 씨 이미지입니다(짜라투스트라라는 이름조차도 신경질적으로 들립니다만).
자리에 앉아 느긋한 시선으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넉넉한 들판을 보는 할머니의 왜소하고 굽은 등을 보는 내 마음이 오랜만에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니체 씨도 이곳 시골에 와서 살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하면서 안부를 물어봅니다.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나에게도 스스로 안부를 묻습니다. 오늘은 안녕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