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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 Pul Nov 15. 2023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하신가요?_#7

# 7

# 7


 하루 동안 문득 떠오른 생각을 짧게 짧게 정리해 봅니다(아직 설익은 대로).     


- “음악은 형식을 파괴하는 질문과 형식을 지키는 대답의 연속이다. 

 대답은 그리 절박한 것이 아니다.” - 러셀 셔먼     


 삶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삶에 대해 기존의 형식을 지키는 한편, 파괴하는 질문을 계속 해야 한다. 대답은 그리 급하지 않다. 그런데 자꾸 대답을 서둘러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 가지 더 참언한다면,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     


- 유통기한. 나이가 들면서 이 말이 귓가에 맴돈다.     


- “단순성이라고 불리는 단순한 진리” -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파악하려는 사람들을 비꼬았다. 맞다. 세상에 단순한 것은 없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삶은 ‘태어났다가 죽는 것’에 불과하다. 이 말이 틀리지 않았을지라도 삶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들은 삶을 단순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삶은 행복 이상의 것, 이하의 것이 얼마든지 많다. 산의 능선을 보라.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그 곡선. 때론 급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 중첩되기도 한다. 아득하게 시야를 벗어나는 능선의 구불거림. 그게 삶이다.     


- 연주가에게 악보는 행운 중의 행운이다. 그게 없었다면 연주가는 피아노 앞에서, 바이올린을 턱밑에 괴고, 첼로를 끌어안고, 호른을 가슴에 품은 채 얼마나 당황했을까. 갈 길을 잃은 사람의 모습!


 삶에는 ‘악보’가 없다. 대신 잔소리가 있다. 이래라저래라, 이건 해도 좋고 저건 안 된다. 악보로 치면 최악이다(악보에는 하지 말라는 소리는 없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자기 삶의 작곡가는 그 자신이라는 사실(남이 그려준 악보를 제 것인 양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 우리에게 크리스마스가 왜 있는지 아세요? 춥지 말라고.

 우리에게 크리스마스가 왜 있는지 아세요? 혼자 있는 사람, 더 쓸쓸하라고.     


- 나에게 좋은 책이란, 지식/정보를 더 많이 전달해 주는 책이 아니라 문자에 밑줄을 긋고 그 옆에 떠오른 생각이나 단어를 급히 적게 만드는 책. 

 나에게 좋은 사람이란, 아무 말 안 해도, 옆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게 만드는 사람.     


 - 33호 가수 김기태가 처음 등장해서 부른 노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열창하는 장면. 

 잊을 만하면 너튜브에서 찾아보는 이유는 김기태 노래의 절절함이 좋기도 하지만 김이나의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모습, 이선희가 뭐라 말은 못 하고 고개를 젖히는 모습, 거의 공포에 질린 듯한 이해리의 두 눈, 송민호가 한쪽 눈과 눈썹을 구기는 모습, 규현의 절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


 이 장면들을 볼 때마다 거듭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가 저런 표정이나 모습을 보인 게 그 언제였던가... 아마 그런 적 없을 듯한 내 인생. 그래서 슬프다. 아쉽다(남에게 그런 표정을 짓도록 만든 적은 더더구나 없다!) .      


- KTX 타고 갈 때의 옆자리. 정신 없이 곯아떨어지거나 때로는 멍때리는 사람을 본다. 그때마다 치한이 될 것임을 무릅쓰고 그의 팔뚝을 덥석 잡으며 “어디까지 가세요?” 묻고 싶어진다. 그의 목적지가 궁금한 건 아니다. 그냥 말 걸고 싶어서.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 손을 내밀 때 내 손등에 생긴 잔주름이 보일까 봐.

 나 몰래 혼자 늙은 손! 


 핸드폰 삼매경에 빠진 사람은 무시한다. 다만,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한순간에 구겨져서 핸드폰 안으로 휘리릭 빨려 들어갈까 봐 걱정스럽다.


- 내가 내일이다시피 니체 씨에게 오늘도 안녕하시냐고 왜 물어보는지 아세요?

 나에겐 묻는 사람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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