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 내 인생의 타이틀
# 20 - 내 인생의 타이틀
어느 소설가가 쓴 에세이에서 “지식인인 나는...”이라는 구절을 보는 순간 움찔했습니다. (교수도 겸하고 있지만) 소설가가 지식인인가? 유명하고 좋은 작품을 썼다고 지식인인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나는?’ 이라는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식인. 지식과 함께 지성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박학다식, 이것저것 많이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격까지 훌륭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19세기 사회주의 혁명시대에는 인텔리켄차라고 해서 계급적 성격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과연 이 시대에도 지식인이라는 말이 합당한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정보가 워낙 많이 쏟아지는 요즘입니다. 그러니 어디까지 알아야 지식인인지? 거기다가 지성, 인격을 갖춰야 한다면 그 척도는 어찌 되는 것인지?
나도 한때는 스스로 지식인임을 자처했습니다. 아직 대학생의 신분으로 공부보다는 이것저것 호기심이 발동해서 마구잡이로 책을 읽던 시절이었는데 말입니다. 그게 무슨 진정한 지식이겠습니까마는 하여튼 그랬습니다. 졸업 후 직장 다니면서 밤에는 글을 쓰던 시절에도 지식인이라고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은연중 지식인임을 자인한 것이지요.
여러 해 됐지만, ‘예능인’이라는 새로운 명칭이 생겨났습니다. 텔레비전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나와서 농담도 아니고, 진담 같지도 않고, 웃기기도 하고, 웃기지도 않은 말. 신변잡기이면서 가끔 쓸모 있는 말도 양념처럼, 추임새로 넣는 출연진. 처음에는 자막 없이 이름만 소개하더니 어느 때부터는 ‘예능인’이라고 하더군요. 연예인에 가깝지만 연예인과는 구별되기에 새로운 타이틀을 만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지식인’ 타이틀을 누가 처음 지어낸 것인지는 몰라도 당시에도 남들보다 조금 더 배운 사람을 그처럼 일괄 처리하는 방식으로 부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인 중의 한 사람은 자신을 소개할 때 ‘지역 기록 보관자(local archivist)’라고 합니다. 특정 지역의 변화를 20~30년 이상 관찰하면서, 물건보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 보관한다는 의미에서 기록자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그는 기록 보관자를 새로운 직업이라며 사람이 창조하는 일 가운데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도 드물다며, 로컬 아키비스트임을 무척 자랑스러워합니다.
오늘날에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도 짐작하기 어려운 새로운 직업이(직업 타이틀이) 속속 등장합니다. 사회가 급속히 발전하고 다변화, 세분화되고 있으므로 당연한 일이겠지요.
요즘은 ‘작가’ 타이틀이 넘쳐납니다. 인터넷에 이런저런 글을 올리면서 자칭 타칭 작가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삿속으로 필자를 ‘작가님’으로 모시는 경우도 흔합니다. ‘작가님’의 글을 예쁘게 포장해서 책으로 발간하여 ‘진짜 작가님‘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지요,
1980~90년 즈음에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 에세이스트, 수필가입니다. 우리나라에 수필가라고 내세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 숫자를 짐작도 못 합니다.
'정식 등단'이라는 제도 아닌 제도가 없어진 지 오래. 굳이 작가의 자격을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모두 작가라는 말에 이의를 달고 싶지도 않습니다. 시 한 줄 안 써도 “나는 시인이다”하면 시인인 겁니다. 시를 사랑하고, 시인의 마음/정신만 가지고 있어도 시인 맞습니다. 그러나 이거 하나만은 부탁하고 싶습니다. 작가 타이틀을 내세우는 건 좋은데 책 발간만큼은 많이 생각하고 내라고요. 자칫 허접쓰레기를 배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니체 씨. 니체 씨의 직업 혹은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타이틀을 하나만 단다면 어떤 타이틀일까요? 모르긴 해도 철학자라는 타이틀은 거북해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예언자? 스피커? 소리 지르는 사람(샤우터)?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