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물보다 깊으니라
나는 어렸을 때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물론 스스로 하고 싶어서 그리하였던 일들도 많았지만, 칭찬받고 싶어서 혹은 이미 칭찬을 받아버려서 행했던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네 살 터울의 내 남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과 누나에게 순종적이고 마음이 여린 착하고 순한 아이였지만 본인이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확고한 아이였다.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기대보단 스스로의 마음이 중요했던 아이. 심지어 본인에게 쏠리는 관심이나 칭찬을 부담스러워할 정도였다.
그래서 덩치도 키도 또래보다 훨씬 큰 데다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싶은 마음이 앞섰던 누나에 비해, 튀고 싶어 하지 않아 했던 '둘째'는 꽤 오랜 유년의 시간 동안 '~의 동생'으로 불리었다. 둘째의 숙명이라고 하기엔 억울할 법한데도 동생은 항상 나를 누나라는 이유로 존중해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1등을 하는 동생보다 3등을 하는 나를 더 칭찬했다. 하지만 동생은 그런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학창 시절 내내 묵묵히 스스로를 발전하는데 애썼다. 사춘기 시절엔 그런 동생이 얄미울 때도 있었다. 나보다 노력하지 않는데 더 잘하는 것 같고, 나보다 애쓰지 않는데 태연하고 겸손하기까지 한 동생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항상 그런 '어린(어리석은) 마음'을 가진 나를 더 많이 돌보셨다.
내가 부모가 되어 돌아보니 부모님께서 동생에게 대견함을 느끼시는 동시에 매번 미안한 마음이 드셨던 것은 모두 내 탓이었던 것 같다.
그랬던 동생이 변화했다.
소개를 하고,
자랑을 했다.
당당했고, 보여주고 싶어 했다.
잘 보이려고 애썼고, 자꾸 티를 냈다.
감정을 숨기지 못했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 칭찬받고 싶어 했다.
봄날의 노오란 꽃처럼 사랑스러운 그녀를 만난 뒤로 내 동생은 참 많이 바뀌었다.
자기 자신에겐 한없이 겸손했던 그가
누군가를 끊임없이 자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자꾸 누군가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2018년 어느 가을.
솔방울이 굴러다니고 비눗방울이 퐁퐁 나오는 동화 같던 어느 레스토랑에서 동생이 여자 친구를 내게 처음 소개한 날, 나는 직감했다.
이 둘은 영원하겠구나!
그녀는 옆에 있는 동생을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칭찬받는 것을 어색해하는 동생을 끊임없이 치켜세워주고 칭찬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녀도 누구보다 똑똑하고 뛰어났음에도 내 동생처럼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며 들꽃처럼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어쩜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는지, 어쩜 그렇게 누가 더 잘났는지 재는 것 하나 없이 사랑할 수 있는지 나를 부끄럽게 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착하디 착한 내 동생이 누나를 더 돋보이게 해 주려고 뒤로 물러서 있던 건 아녔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는 3등짜리 누나를 1등처럼 보이게 해 주려고 더 겸손한 사람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동생이 고등학생 때, 엄마에게 말했다. 누나에게 과외받고 싶다고. 전교에서 최상위권이었던 동생은 사실 그다지 과외가 필요 없었을뿐더러 굳이 더 공부 못하는 내게 과외를 받을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사실 제가 누구를 가르칠 자격이 없었지요.) 그때 나는 인생에서 가장 자존감이 낮던 시기를 걷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우스운 일명 '상한 연어 오지랖 사건'으로 일생일대의 수능을 망치고, 대학 입학 후 들어간 학회에서 '찐빵으로 지적당한 사건'을 거쳐 초등학생 때부터 갖고 있던 꿈을 단숨에 접을 정도로 연약해있던 시기였다. 동생이 어떤 마음으로 엄마에게 그런 제안을 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날부터 주 4회, 30만 원짜리 고급(?) 알바 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대학생으로서는 꽤 많은 돈을 벌만큼 알바복이 터졌고, 무엇보다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던 나의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었다.
그렇게 속 깊었던 내 동생이 그 깊은 속을 알아봐 주는 현명하고 예쁜 친구를 만나 참 행복해 보였다.
(*1등, 3등이라는 등수에 정확한 사실적인 의미가 담겨있진 않습니다. 다만 동생이 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고 자랑하고 싶은 누나의 마음이 담겨있어요.)
지난 1월 16일,
아름다운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착한 결혼식이었다.
사랑하는 내 동생.
누나가 하나뿐이 없는데 너는 나를 꼭 '다희 누나'라고 불렀지. 살다 보니 나도 내 존재가 참 보잘것없이 느껴졌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 어떤 순간에 네가 '다희 누나, 이거 어떻게 할까?' '다희 누나, 이것 좀 도와줘.' '다희 누나!' '다희 누나!'라고 불러주는데 이름 모를 책임감이 다시 꿈틀거리더라. 그래, 네가 태어났던 그 순간부터 항상 나는 네게 빚을 졌던 것 같아. 사랑이 참 많은 내 동생. 앞으로도 항상 네 옆에 서있는 그 사람을 빛나게 해주는 남편이길 바란다. 네가 항상 그리했던 것처럼...
축사는 사랑의 시로 대신할게.
사랑
봄물보다 깊으니라
갈(秋)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한용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