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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04. 2020

03. 어쩌다 뉴질랜드


| 평화로운 주말 아침


아무것도 안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주말 아침이다.

    

‘오늘은 주말이니까 좀 쉬어도 돼’     


라는 대사를 마음속으로 백 번 정도 뱉은 후에야 간신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음껏 쉴 수 있는 이 날을 위해 무던히 사회생활을 버텨왔다. 그러니 오늘은 핸드폰을 좀 꺼놔야겠다.     

나를 괴롭히는 잡음 속에서 아주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주말 동안 핸드폰과 잠시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사람들과 사교적 대화는 주 5일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남은 이틀 동안은 아주 여유로운 주말을 맞이할 생각이다. 이렇게 집을 좋아하면서 무슨 뉴질랜드행이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 같다. 그러게나 말이다. 치킨이나 먹으면서 나와 진지한 대화를 좀 나눠봐야겠다. 뉴질랜드행을 결정하고 나서부터 나에게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호주 말고 뉴질랜드?’, ‘왜 하필 뉴질랜드로 가?’     


나만의 도피처를 찾는데 저 머나먼 이국땅이 대수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왕 가는 거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뉴질랜드를 선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준비하던 중 알게 된 사실 하나, 친구 한 명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뉴질랜드를 가기로 했단다. 이런 우연이. 아니 이 정도면 운명인가. 그래서 우리는 운명론을 운운하며 함께 떠나기로 했다. 혼자보다 둘이 함께 간다고 하니,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노트북을 켜고 초록 창에 뉴질랜드를 검색해보는 일이었다.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한 달 차’

‘뉴질랜드 전문 유학원’

‘뉴질 워홀 50일차 후기’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유학원과 워킹홀리데이 선배들의 후기들이 빼곡하게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유학원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팔랑팔랑. 본인의 귀가 유학원에 흔들리는 소리다. 얇디얇은 종잇장 같은 팔랑귀를 가진 나는 결국 내 첫 퍼즐 조각을 유학원에게 맡기게 되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니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순조로울 수가 없는데 말이지. 녹록치 않은 인생을 살다 보니 의심병만 늘었다. 아차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내 몸뚱이 만한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막상 공항에 도착해서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니 이제 서야 실감이 났다.      



|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우리 딸 잘 다녀와”     


짧은 말 한마디에 엄마의 걱정이 뚝뚝 묻어 있다. 엄마 말대로 정말 잘 다녀와야겠다. 등 뒤로 느껴지는 걱정의 시선이 뜨겁다. 이제 어미품을 벗어난 아기새는 날갯짓을 하러 혼자 떠나가야 한다.

어미에게서 떨어진 아기새가 처음 발을 디딘 뉴질랜드행 비행기는 몽환적인 보랏빛으로 가득 차 있다. 오묘하면서 신비로운 느낌이 마음속 깊은 곳을 간지럽히기 시작한다.      

항상 주말 아침이면 나와 아빠의 리모컨 전쟁으로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승리한 아빠의 최애프로그램은 ‘걸어서 세계속으로’, 그곳에서 펼쳐진 뉴질랜드는 이랬다. 너무나 평화롭고, 사람들은 미소가 가득하며, 여유가 넘치는 곳.     


실제로 발을 디딘 이곳에서 처음 느낀 공기는 생각보다 텁텁했고 공항밖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의 잡음들로 가득했다. 퍼즐의 첫 조각으로 정했던 홈스테이 집으로 가기 위해 미리 마중 나와 있던 유학원 직원의 차를 탔다.     


“안녕하세요”     


직원은 예상과 달리 한국 분이셨고, 익숙한 모국어로 뉴질랜드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으셨다.

찰나의 고요를 막기 위해 감탄의 끄덕거림으로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역시 나는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이다.     

 

“뉴질랜드는 말이야.”

“뉴질랜드에서는 말이야.”     


너무나 열심히 호응을 해준 탓일까. 1시간가량 달리는 차 안에서 그분의 입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눈꺼풀마저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이름만 들어도 풀 내음이 날 것 같은 ‘포레스트 힐’, 나의 첫 뉴질랜드 정착지에 도착했다.

2019년 2월 18일, 뉴질랜드와 나만의 1일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뉴질랜드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그 선택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길 바라면서 첫인사를 나누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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