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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04. 2020

02. 그저 그런 일상


누구나 온종일 침대에 붙어 있고 싶은 날이 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아니 사실 매일 그렇다. 

하지만 두 발 딛고 이 땅을 살아가려면 사회생활은 선택 아닌 필수. 생존을 위해 결정한 밥벌이 수단은 바로 디자인이다. 어느덧 디자이너로 일 한지 햇수로 3년 차. 하지만 아직도 나는 떠돌이 생활 중이다. 


이 보헤미안 같은 인간은 언제쯤 정착하게 될까.     

바야흐로 대학교 2학년 때쯤, 친구 한 놈이 내게 물었다.   

   

“너 졸업하면 뭐 먹고 살 거냐”

“그러게 뭐 먹고 사냐”     


아무 생각 없이 살던 나에게 크나큰 고민거리를 홀연히 던지고 간 친구 놈 덕분에,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에게 뱉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이러다 백수로 존재만 하다가 세상과 작별인사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상상에 급 우울해졌다. 학점도 거하게 물 말아 드시고, 이렇다 할 스펙도 딱히 없던 내가 머리를 쥐어짜서 생각한 어릴 적 적성은 그나마 예술적 재능이다.      


‘맞아! 나 사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디자인도 하고 싶었어’  

   

라는 말도 안 되는 루머가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실 왜곡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역시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가 보다. 그게 물론 나라고 예외는 없었다. 아직 스스로의 정체성도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많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그랬다. 하지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왠지 잘 할 거 같은 어린놈의 패기에 모른 체 져줬던 거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도전했던 어린 날의 나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몇 년 후 너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간단다. 

     

동화 속 해피엔딩은 없다. 현실적인 단막극의 결말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디자인의 ‘디’도 모르던 내가 무슨 수로 디자이너로 취업을 했을까 ‘타고 난 거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만큼, 강심장도 아니고 애석하게도 진실도 아니다. 디자인 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한 줄 알았다. 우물 안 개구리는 너무 현실을 몰랐던 거다. 무리 속에서 우쭐대며 나갈 준비를 했다. 우물 속 개구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마침내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처음으로 발을 디딘 우물 밖 세상은 나 같은 개구리가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혹독했다. 회사에 막상 들어가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도 몰랐고, 내가 하는 게 맞는 건지 알려줄 사람조차 없었다. 원래 좋아하는 분야는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이라도 그 충고 들을 걸 그랬다. 누군가의 평가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왔고, 그대로 마음의 과녁에 꽂혔다. 아아 명중이다. 상처도 잘 받고, 실망도 잘하는 내가 가진 방어력은 0. 

     

1초의 침묵도, 한 번의 한숨도, 나는 그것을 막을 방어막이 존재하지 않았다. 뭐 어찌 됐든 우여곡절 끝에 밥벌이는 성공했다. 나를 받아준 회사가 너무 고마워서, 아니면 마냥 디자인으로 밥 먹고 산다는 게 신나서일까. 새로 입양된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주인님을 따르듯 회사에 충성했다.    

  

‘이거 기획서대로 일주일 내에 작업 끝내줘’

‘네 주인님’

‘디자인 시안은 내일까지 부탁해’

‘네 주인님’     


살랑살랑. 나같이 개처럼 일하지 마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즐겁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기억이었던 거 같다. 아직도 생생하다. 무차별한 공격에 성벽이 무너지듯 나의 마음도 무너져갔다.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그저 못난 놈이 되기보단 스스로의 방어막을 쌓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남들에게 말할 그럴싸한 합리적인 핑곗거리를 만들며 두 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난 충견이 되기는 틀렸나 봐요, 주인님 절 놔주세요. 견디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본인의 인내심은 그 정도까지였나 보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고치지 못한 아주 고약한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화살 쏘기. 아휴, 또 그만두냐, 앞으로 뭐 먹고 살려고 그러냐, 너만 힘드냐 남들 다 그렇게 버티더라. 


아이고 아프다. 화살이 정확히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이제는 상처에 면역이 생길 법도 한데, 아직 덜 아물었나 보다. 항상 안 아플 만큼 살짝 빗나갔는데 요놈이 오늘은 명중률이 장난 아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남들 다 하는 이직이라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 버티지 못한 것에 대한 묘한 패배감이 자리 잡은 듯했다.     


 때는 바야흐로 1년 전, 회사에서 낮잠은 선택 아닌 필수라는 원칙을 열심히 따르고 있던 날이었다. 녹아내리고 있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아무것도 없는 백지장 같은 화면만 멍하게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동료는 그런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자기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1분이 흐르고, 또 1분이 흘렀다.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기분 탓이었나 보다. 그렇게 무의식의 상태로 바라본 컴퓨터 화면 속 포토샵의 빈 레이어는 마치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층층이 쌓여는 가는데, 정작 색은 채워지지 않은.


텅 빈 마음을 미래에 대한 불안, 불확실,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에 대한 고민들로 채워갔다. 나만 오롯이 특별한 비극을 겪는 듯한 이 무력감을 털어버리기에는 나의 방어막이 온전치 않다.     

누군가가 그랬다.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고.

이제는 후배에게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으레 충고 아닌 충고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큰 공허함이 마음속에서 파도처럼 요동쳤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길다면 긴 3년 동안 케케묵었던 사회생활의 묵은 때를 벗기고 싶었나 보다. 짧디짧은 여행으로는 풀지 못할 체증을 풀기 위해 나는 급작스럽게 긴 여행,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 1년을 살아갈 곳은 머나먼 이국땅 뉴질랜드였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했던 나에게 휴식기를 주기로 했다.     


 하늘길로 14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이곳과 정반대의 계절을 가지고 있는 그곳에서 색다른 여유를 즐겨보기로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기나긴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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