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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04. 2020

06. 집이란 존재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풀 내음 가득한 산책로를 걷는 것도, 저녁을 먹고 정원에 앉아서 핑크빛 노을을 보는 것도 이제는 마지막이다. 


 긴 세월 동안 무던히도 겪어 왔지만, 항상 마지막이라는 건 너무나 낯설다. 누군가가 차려주는 저녁도 이제는 안녕이다. 작디작은 불편함 때문에, 도시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잘 한 선택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뭐 원래 인생이라는 게 선택의 연속 아니겠는가 후회는 나중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나의 한 달은 누구보다 여유로웠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에 감사했고, 매일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머물러준 하늘에게도 고마웠다. 그런 한 달을 보냈던 거 같다. 27킬로짜리 이삿짐을 들고 앞으로의 1년을 함께할 집에 도착했다. 화자에게 집이란 존재는 참으로 크게 다가온다. 모든 사람에게 집은 참으로 중요한 존재다.


 ‘내 집’이라는 것이 얼마나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그 안식이 얼마나 각자의 내면을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는지 여러분 모두 잘 아실 거라 믿는다. 그러니 온전히 ‘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만큼 중요하다. 가끔 친구들은 집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냐는 의문을 던지곤 했는데 사실 모든 집순이가 그렇듯 집에서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어느새 창밖은 순식간에 노을로 붉게 물든다. 일일이 일정을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어찌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생각도 많은지 하루하루가 부족할 지경이다.


 집에서 하루를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 본인과 같은 수많은 집순이를 응원한다. 사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존재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서로 간의 공통분모도 옅어지게 된다. 당연하지만 씁쓸한 이 사실을 이제는 달게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점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스스로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졌다. 화자에게 집 이란 존재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야 훨씬 좁지만, 한국에서 한 번도 자취 경험이 없던 내가 낯선 이국땅에서 내 힘으로 독립을 해본다는 것 자체만으로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집을 계약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 정도 꼽자면 위치, 가격, 창문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뜬금없이 무슨 창문이냐 하겠지만 집에 앉아서 하루일과를 끝내고 창밖을 멍하니 보는 것도 집순이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므로 빠질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시원하게 뚫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주황빛 노을과 스카이타워의 야경을 벗 삼아 깊고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당신을 상상해보라. 하루하루 바뀌어 가는 하늘의 색감이 궁금해 미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화자처럼 당장 계약을 서두르시길. 그렇게 뜬금없는 이유로 나의 첫 계약이 성사되었다.  

    

어쩌다 한국인과 계약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홈스테이가 끝나기 2주 전 그 날들의 기억을 꺼내야겠다. ‘응당 외국에 왔으면 당연히 외국인과 살아야지’를 외치던 본인이 ‘한국인이 최고지’를 외치게 된 데 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홈스테이 계약만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내면 깊은 곳에서 압박이 들어왔다. 한국과 다르게 뉴질랜드는 집을 볼 때, 한 사람씩 보는 게 아니라 그 집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시간 맞춰 다 같이 함께 보는 시스템이다. 그 말은 즉 집주인에게 선택을 받아야 집을 계약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구애 끝에 ‘백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도 있다’를 뼈저리게 깨닫고 결국 한국인과 계약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내 집이 생기는 날이다. 1년짜리 짐을 구석구석에 밀어 넣고 급하게 대청소를 끝냈다. 갑자기 넓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그렇다. 아쉽게도 기분 탓이다. 청소를 끝내고 나니 급하게 할 일이 생각났다. 한 손에 아메리카노를 가볍게 쥐고 살구빛 노을을 깊게 음미해줘야 한다. 하루의 일과는 이렇게 마무리해야 직성이 풀린다. 방금 막 딴 복숭아 같기도 하고, 달달한 살구 내음이 날 거 같기도 한 이 색감을 활자로 표현하려니 너무 어렵다. 오늘의 감상은 여기까지.      


‘내일은 어떤 색을 보여줄까.’ 내일의 스포일러는 절대 안 하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괜한 투정을 부리고 싶다. 타이밍 좋게 투정을 막을 배꼽시계가 울려댄다. 본디 한국의 이삿날에는 대대로 자장면을 먹는 풍습이 전해져 온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풍습을 지키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은 뉴질랜드니 대신 소고기를 먹도록 해야겠다. 정말 안타까운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누가 그랬다 ‘고기 굽다가 한눈팔면 안 된다’고. 그렇게 한눈을 팔아버린 결과는 참혹했다. 뉴질랜드산 소고기는 어느새 잿빛의 검은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검은색 소고기의 맛은 살짝 씁쓸했다. 내 기분도 괜히 씁쓸해진다. 흑화한 소고기의 희생에 눈물이 차오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모든 걸 용서해주기로 했다.   

  

내 집이 생긴다는 것,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 스스로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집이라는 존재는 여전하다. 

머나먼 땅 뉴질랜드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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