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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04. 2020

05. 도시에 살아야겠다


이제는 우리가 도시에 살아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1.

악몽을 꿨다. 내 방문에 주먹만 한 대왕 바퀴벌레가 붙은 악몽을.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떴는데 꿈속 바퀴벌레가 살아있다. 애석하게도 이건 꿈이 아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다. 으악 

모두가 잠든 이 새벽에 왜 하필 나는 저 시커먼 놈과 대치해야 하는 걸까. 정신이 아득해졌다. 오늘 나는 무사히 잠들 수 있을까.

결국, 한 시간 동안의 긴 실랑이 끝에 Teddy가 신고 있던 슬리퍼로 시커먼 그놈을 때려잡았다. 우두둑 저 많은 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 방 흰색 방문에 시커먼 반점이 생겼다. 그놈의 흔적이 강하게 내 마음을 후벼 팠다.   

 

도시에 살아야겠다.    

 


2.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나는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드는 중이다. 맞은편 옷장을 보고 있는데 또 시커멓고 다리 달린 놈이 옷장 속으로 쏙 들어갔다. 응? 방금 뭐가 들어간 거지? 에이 너는 며칠 전 Teddy의 슬리퍼에 날아갔잖아. 다행히 그놈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발이 무수히 달린 시커먼 대왕 거미가 밤새 내 옷장을 들쑤시고 다녔다. 나의 수많은 옷더미들은 어느새 거미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나 혼자 있게 모두 나가줘 제발     


도시에 살아야겠다.   

  


3.

혹시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시는 분이라면 처음에는 꼭 도시에 살기를 추천한다. 처음 도착하면 생각보다 도시에서 할 일이 많다. 은행 계좌도 개설해야 하고, 돈벌이를 하려면 IRD라는 나만의 고유번호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포레스트 힐’에는 은행도 없고, IRD 발급센터도 없다. 더군다나 한 달 동안 다녀야 할 어학원도 도시에 있다. 그 말은 쉽게 말해 매일 같이 버스를 타고 도시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땐 왜 몰랐을까 버스비로 허리가 휠 줄은(뉴질랜드는 한국과 다르게 내가 가는 만큼 요금이 부과돼서 멀리 갈수록 요금이 비싸진다) 금방 온다던 버스는 20분째 소식이 없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 정도면 버스회사가 파업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던 찰나 때마침 내가 탈 버스가 도착했다. 나를 태운 버스는 어느새 이국적인 건물들로 가득 채워진 도시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계좌를 만들기 위해 ANZ(뉴질랜드 대표은행 중 하나)에 발걸음을 옮겼다.     

“헬로, 나 계좌 만들려고 하는데, 언제 가능해?”

“음 일정표를 보니까 한 2주 후쯤에 만들 수 있겠다. 그때 다시 와”     


기나긴 세월 동안 한국에서 길러온 내 안의 조급함이 요동쳤지만, 뉴질랜드에 왔으니 이곳의 법을 따르기로 했다. 무려 계좌를 개설하는데 2주가 넘게 소요된다니 성질 급한 사람은 미리 포기하시길 바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창밖에는 블로그 속 사진에서만 보던 이곳의 랜드마크 ‘스카이타워’가 저 멀리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여기가 뉴질랜드구나 멍하게 감상에 젖어 있던 그때 아련하게 스쳐 지나가는 내 환승역이여. 아아 오늘 집에 가긴 글렀다. (뉴질랜드는 한국처럼 내릴 역을 방송해주지 않아서 항상 버스 앱으로 위치를 확인해서 내려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온 환승역에는 깜깜한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야속하게도 버스가 두 시간 후 도착 예정이란다. 집에 가기 참 힘들다. 집순이 에너지는 이미 방전된지 오래다. 누가 건전지 좀 갈아줘요. 그렇게 한 달여 간의 버스 생활에 지친 나는 생각했다.     


도시에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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