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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타임조아나 Sep 07. 2020

만들어진 특별함에 일상을 잊어보자

뮤지컬 <맘마미아> 리뷰

2014년 5월 19일 작성 




  배우들이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나온다. 

  스카이 역을 맡았던 남자 주인공이다. 사실 연기가 인상 깊진 않았다. 일단 배역 치고는 키가 너무 크고 조각 같아서 조그마한 그리스의 섬에서 여관 일을 도우는 남자보다는 조명과 무대에 익숙한 하이틴 스타 느낌이 물씬 났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말을 걸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버렸다! 당황하는 사이, 조각 같은 그 배우는 모자를 챙기고 배낭을 메고 떠났다. 나는 쫒아 가 말이라도 걸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막상 가서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뮤지컬을 잘 봤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렇게 인상 깊지도 않았는데. 결국 배우의 뒷모습을 보다가 발길을 돌려 집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선 배우를 따라간다. 말을 거는 것이다. 수줍은 팬 느낌이 나야 하지만 아주 숙맥 같거나 아주 소녀 같으면 안 된다. 털털함. 여행자의 느낌이 나지만 어딘가 묘한 매력이 있는 여자애 이어야 한다. 말을 건다. I watched your musical. You were great! 배우가 사인을 해주거나 사진을 찍겠냐고 물어보거나 고맙다고 하겠지. 아니면 때.. 땡큐? 하지만 이걸 어째, 나의 핸드폰은 이미 맛이 간지 오래인걸. 어색한 침묵. 소녀는 망설이다가 한마디 내뱉는다. Good night! bye! 그때 배우가 나를 불러 세운다. 자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자고 한다. 수줍지만 밝은 미소를 가득 담은 사진이 완성된다. 헤어지려는데 배우가 다시 불러 세운다. 무슨 일이지. 이 사진을 전해주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순간 망설이는 우리의 여주인공.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늘 그렇듯 번호는 주어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후에 연락이 닿아 공짜표를 얻어 맘마미아를 계속 보러 가고 꽃을 사서 찾아가고 연습이 없는 날에 따로 만나 커피도 마시면서 영어공부도 하고………. 하지만 늘 그렇듯 결론은 없다. 나는 결론 없는 상상의 귀재가 아닐까. 특히 로맨스 쪽으로 말이다.








  역시나 힘이 넘쳤다. 손을 뻗고 다리를 한번 오므리는데도 얼마나 집중하고 표현하는지 느껴졌다. 무대 위의 한 사람도 쉬지 않았다. 특히 앙상블은 2시간 내내 몸을 쓰고 춤을 추는데도 특유의 재기 발랄함을 놓치지 않도록 이끌어갔다. 앙상블들이 뮤지컬의 전체적인 ‘느낌’을 좌우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도나가 ‘money, money, money’라는 노래를 열창하는데 만약 앙상블이 없었다면 얼마나 허전했을까. 막이 내리고 불이 켜졌다. 무대에서 배우들이 뿜어낸 열기와 그 열기를 받아 한껏 달아오른 관객석의 분위기는 갑자기 밝아진 덕분에 어색한 기운도 감돌았다. 내 뒤에 앉아있던 아주머니 두 분은 서로 껴안으며 이 공연이 얼마나 좋았는지 확인했다. 바로 이게 문제다. 이 공연이 얼마나 좋은 공연인지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이 외로울 뿐이다. 


  공연은 사람들에게 여유와 일상으로부터 벗어남을 선사한다. 그 벗어남이 주는 잠깐의 자유와 여유. 일상은 잊고 특별한 한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다. 연극을 만든다는 것은, 공연을 기획한다는 것은 관객들에게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내야 하니' 더 고독하고 고통스럽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작업이다. 뮤지컬 맘마미아가 딱 그러한 공연이었다. 무대의 이야기가 끝나고도 배우들이 의상을 갈아입고 무대로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였다. 조명이 바뀌고 무대 구성이나 의상이 바뀌었다. 관객들은 이 순간이 다시 오지 못할 것처럼 한마음으로 환호했다. 정말 즐거웠다. 흥이 났다. 우연히 이층을 확인하니 몇몇 관객들이 일어나 손을 흔들고 환호를 했다.


  시카고는 한국 캐스트로 두 번을 보았으니 비교하기가 쉬웠지만 맘마미아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대신 영화 <맘마미아>를 본 적이 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메릴 스트립이 나왔다. 이번에는 영화와 비교하며 보게 되었다. 








도나의 친구 티나와 함께

 

  뮤지컬 맘마미아는 정말 ‘느낌’이 가득했다. 무대, 의상, 연기 어느 것 하나 콘셉트가 엇나간 것 없이 통일성을 이루고 있었다. 파랗고 하얀 기본 배경이 그라데이션으로 깔려있었고 그 가운데 돌아가는 하얀 벽들과 페인트가 벗겨진 파란 문들이 그리스의 해변을 떠올리게 했다.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의자와 탁자들도 모두 벽과 같이 빈티지 느낌이 났다. 배우들의 의상 역시 화려하고 발랄하고 톡톡 튀었다. 캐릭터의 성격에 맞게 의상이나 소품들이 준비되었다. 비행기를 오랫동안 타고 온 도나 친구들의 가방에 붙은 수하물 표를 보고 감탄했다. 



  영화는 화면 전환이 빠르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니 인물들의 대화나 이야기 진행들이 수월하지만, 뮤지컬은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되 지루하거나 복잡하면 안 된다. 관객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대화로 전개하기 지루한 부분들을 어떻게 연출했는가가 중요하다. 뮤지컬 맘마미아에서는 앙상블을 배경으로 깔고 주요 인물들이 나와 노래나 대사를 주고받는 것이 큰 틀이었다. 예를 들면 소피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탐색하는 과정에서 소피와 스카이의 결혼 전 축하파티라는 상황을 함께 연출함으로써 앙상블과 주 배우들이 함께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를 하다가 소피와 세 명의 아버지 후보 빌, 해리, 샘이 돌아가며 앞으로 나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때 앙상블들은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슬로 모션으로 동작들을 한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어떤 뮤지컬이 그러하겠냐마는 이 뮤지컬이 원대한 의미를 담은 것 같지는 않다. 친구들의 우정을 되새기거나 아바 Abba의 노래를 들으며 향수에 젖거나 말 그대로 흥에 취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잊었던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뮤지컬이 아닐까 싶었다. 문제는 뮤지컬을 보는데 자꾸 ‘그래서 뭐?’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게 소피의 자아 찾기야, 도나의 괴로움이야, 아님 모성애야? 소피가 결국 결혼을 하지 않고 더 큰 세상에 나아가는데 그럼 이건 소피의 성장 과정 기야? 하지만 도나의 결혼을 통해 그녀의 제2의 인생, 뭐 이렇게 그린 것도 같은데 그럼 이건 도나의 성장기 인가? 허 참,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거야? 제작 실습수업 때 끊임없이 생각하던 것을 다시 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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