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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타임조아나 Sep 09. 2020

잘 짜여진 실타래가 모여
'명작'을 만들지

뮤지컬 <레미제라블> 리뷰 


2014년 5월 20일 작성




“거기선 그런 미신 안통해” 
늦은 아침을 먹고 나면 항상 들리던 타임스퀘어의 티켓 전광판. 그날의 프로모션이나 할인표를 확인 할 수 있다. 




  일은 언제나 아차, 하는 순간 일어난다. 체리가 담긴 새하얀그릇은 팍, 하며 떨어졌고 그대로 깨져버렸다. 주인언니한테는 뭐라고 이야기 하지? 그릇 밑바닥에 적혀있는 ‘이케아’가 뉴욕 어디쯤 있는지 검색을 했는데, 브룩클린에 있단다. 지하철을 타면 30분, 배를 타고 가면 항구에서 15분이 걸린다. 일단 언니에게 말을 해야 한다. 부랴부랴 씻고 집을 나섰다. 가게에서 과일을 하나 사고 물을 사고 버거가 먹고 싶어서 shake shack 버거에 들렸는데 줄이 많아 그냥 레몬에이드만 시켰다. 물을 샀는데 왜 레몬에이드를 샀는지 이해할 수 없다. tkt 에 들려 전광판을 확인했다. 보고 싶은 뮤지컬이 아직 표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그중에 레미제라블이 눈에 띄었다. 50퍼센트나 할인을 한다!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줄을 섰다. 오후라 그런지 줄은 길지 않았다. 66.5 달러. 좌석이 좋았으면 좋겠다. 


  카페베네에 들려 아메리카노를 한잔 사서 과일로 저녁을 해결했다. 비타민이 부족한지 입안이 짓물렀다. 눈도 뻑뻑하고 자주 피로를 느낀다.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인터넷이 끊긴다.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아침에 그릇을 깨트렸어” 라고 보내니 엄마가 “거기선 그런 미신 안통해” 라고 보냈다.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고 괜찮아졌다. 그전까지 이것저것 걱정일 것이 많았는데 엄마의 한마디에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지난번에도 카드 문제로 시티 은행에 전화를 걸고 난리를 쳤는데 아빠와 통화를 하다가 아빠가 “이건 별거 아니야. 너무 조급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이건 다 해결될 일이야” 라고 하시니 마음이 단번에 편해졌다. 신기한 일이다. 



  


배우들이 자신들의 연기를 녹여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합을 맞추었을까.



  별 기대를 하지 않은 뮤지컬이다. 한국에서 초연을 할 때도 이걸 꼭 보고 싶지는 않았다. 원작을 따로 읽어보지 않았고, 시작부터 끝까지 노래와 안무로만 구성되어있는 ‘송스루’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다기 보다는 "장발장의 인생 + 프랑스 피의 역사 + 혁명을 주도하는 젊은 사람들의 대립" 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역사와 사회문제에 안쓰럽고 죄스럽게도 무지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뮤지컬이 끝나고 나는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어떠한 배경 음악도 없이 무대로 걸어나와 침묵으로 경례를 하는 배우들의 인사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눈물도 많고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것 아닌 것에 의미를 지나치게 부여하기 때문에 자칫 ‘뭐 저렇게 까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뮤지컬을 볼 때도 그렇다. 왠지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하면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였다. 무대의 막이 내린 후, 얼굴을 손에 파묻고 엉엉 울었다. 옆에 앉아 있던 금발의 아주머니가 휴지를 쥐어주셨다.


정면에서 바라 본 무대

 

  무대를 잘 사용했다. 어제 본 맘마미아도 훌륭했지만 레미제라블에 비교하면 빈약해보일정도로. 극장이 작고 아담해서 무대가 굉장히 알차게 구성되었다. 낡은 목재들이 주는 오래되고 퀘퀘한 감성여기저기 매달려있는 밧줄과 낡은 천들이 잘 어울렸다. 프랑스 빈민가. 게다가 박스 좌석이 있는 윗층의 벽면까지 모두 하나의 무대로 구성되어있었고 관객석과 무대 사이에 작은 길을 만들어 공연 도중 배우들이 왔다갔다하거나 등퇴장을 하는 등 관객석과 무대를 교묘히 연결시켰다. 


  빈민가와 사창가를 표현하는 나무 계단과 지그재그로 이어붙인 벽, 무대의 회전, 혁명의 그날에 등장하는 가구들로 만든 바리케이트,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에포닌의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있는 집 등 무대와 배경 전환도 굉장히 다양했다. 조명 또한 전체를 비추기보다는 작은 스포트라이트를 여러 개 비춰 이목을 집중시켰고 배우들의 뒤에서 조명을 비추어 웅장한 효과를 내기도 했다. 반투명 커튼으로 막을 나누기도 하고 뒤에는 3D 배경을 깔아 하수구나 강물, 크게 움직이는 붉은 깃발들을 표현했다. 배우들이 이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녹여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합을 맞추었을까.








  무대는 작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그리고 서로의 '합'은 어느 것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1. 혁명을 노래하는 아프리칸 아메리칸계 배우들

  에포닌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흑인이었다. 목소리 또한 오페라나 성악 보다는 팝과 재즈의 느낌이 물씬났다. 구불구불한 느낌, 팽팽한 고무줄이 감긴 듯이 쨍-한 목소리였다. 가끔 목소리가 엇나가는 것도 '에포닌'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마리우스와 함께 바리케이트의 앞장을 서는 역도 흑인이었는데 키가 굉장히 컸다. 마치 젓가락 두 개가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배우가 혁명의 중심인물을 맡았기 때문에 단체 신이 등장하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무대가 구성이 되어 모두가 든든하고 탄탄해보였다. 게다가 혁명을 노래한다는 것, 억압하던 차별에 맞서는 역할에 ‘흑인’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는 것 자체로 의미 있다고 본다. 


2. <레미제라블>이라는 판위의 꼭 맞는 퍼즐처럼

  에포닌과 마리우스 그리고 코제트의 삼각관계, 에포닌의 부모와 앙상블, 장발장과 판틴이 모두 퍼즐처럼 딱 들어맞았다. (그에 비해 자베르는 인상이 조금 약했던 듯) 단순히 한 명의 배우가 잘했다기 보다는 서로 짝이 잘 맞도록 ‘배치’되었다. 판틴과 장발장은 등장부터 강인했다. 그 강인함을 기반으로 장발장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코제트와 에포닌은 생김새, 목소리, 연기 모두 상반되면서 더욱 돋보였다. 앙상블의 넘치는 힘이 탄탄하게 바탕을 깔아주자 조연으로 나섰던 에포닌의 부모역이 더 톡톡 튈 수 있었다. 아, 정말 의문이다. 배우들의 이 넘치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무대 위에서 발산되는 소울 자체가 다르다. 혜화역은 약하고 브로드웨이는 강하다,는 막무가내의 찬양이나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그렇다니까!






  인상깊은 장면 1. 자베르의 자살

  다리 위에 선 자베르는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노래가 끝나자마자 그가 서있던 다리가 순식간에 해체되더니 자베르가 서있던 부분만 무대의 뒤로 서서히 멀어지면서 배경에 요동치는 물결이 나타났다. 그리고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자베르가 뒤로 사라지며 작아졌다. ……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관객이 어떻게 볼지 철저히 계산된 장면이었다. 내가 다리 위에서 그를 ‘내려다 보고 있다’고 믿게 만든 것이다! 


  배우와 연출은 관객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가를 매 장면마다 염두해야하는데 공연은 입체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대부분 정면에서 보이는 모습을 신경을 쓴다. 그래서 배우의 몸은 항상 앞을 향해있고 뒷모습이 보이는 것은 철저히 계산되거나 연출의 특별한 의도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위에서 설명한 자살 장면은 그 입체성을 한층 넘어, 떨어지는 자베르를 '내려다보는' 생생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인상깊은 장면2. 신문팔이 소년의 죽음

  두 번째 장면은 어린 신문팔이 소년이 바리케이트 위에 서서 혁명의 노래를 부르다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이었다. 큰 총소리와 함께 소년의 몸은 빳빳하게 굳는다. 조명이 갑자기 꺼지고 바리케이트 뒤의 조명이 팍! 하고 켜지며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하고 무대 위에는 오직 총에 맞은 아이에게 집중된다. 작은 삽화와 그림처럼 그대로 모든 것이 멈추었다. 



  인상적인 장면 3. 마리우스의 죄책감

세 번째 장면은 장발장의 도움으로 무사히 목숨을 건진 마리우스가 죽은 자신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괴로워하는 장면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아이들과 여자들이 촛불을 들고 나와 무대에 놓고 나가고 그 무대에 마리우스와 죽은 친구들이 등장해 다시 놓여진 촛불을 들고 노래하다가 마리우스가 들고 있는 촛불만 남기고 나머지 촛불은 죽은 혼령들에 의해 동시에 꺼진다. 혼자 남은 마리우스가 마지막 남은 촛불을 들고 노래하는 장면까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전개되었다. 





  집에 가야하는데 가기 싫다. 거리는 아직도 환하다. 노래가 부르고 싶다. 

스타벅스 알바가 이제 그만 집에 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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