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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타임조아나 Sep 14. 2020

결핍이 선사하는 완전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리뷰




  천재는 항상 모자라다.




  결핍이 내재한다. 모차르트도, 고흐도, 그리고 팬텀도 그렇다. 삶의 균형이 모두 한 곳으로 몰렸기 때문일까. 삶의 모든 에너지가 그들이 가진 재능에 몰린 덕분에 그 재능을 펼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The phantom of the opera

  한쿡말로는 더 팬틈옵디오펗라




  치즈케이크를 야금야금 베어 먹으며 영화 오페라의 유령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치즈케이크와 <오페라의 유령>이 주는 '우아함'을 즐겼다고 해야 하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질로 잡힌 크리스틴이 질투와 외로움에 가득 찬 팬텀을 이해하고 키스한다. 이에 걷잡을 수 없이 감동한 팬텀은 크리스틴을 라울과 함께 놓아준다. 그리고 자신이 아끼던 원숭이 오르골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매번 치즈케이크를 입에 넣고 오열하게 만든다. 팬텀을 두고 같이 배를 타고 떠나는 크리스틴과 라울이 미워졌다. 팬텀은 크리스틴을 정말 사랑했을까? 그 사랑과 천재성이 만나 엄청난 곡과 극을 만들어냈을까?


  <오페라의 유령>은 오페라와 영화로 먼저 만들어졌다. 뮤지컬 버전의 초대 크리스틴을 맡으면서 단숨에 프리마돈나가 된 사라 브라이트만이 무명 코러스 걸이었다는 것, 그리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프로듀서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사라 브라이트만을 사랑한 것 그리고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서 만든 것이 바로 이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것.


  

  이 뮤지컬은 어떤 각도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장르달라진다. 라울과 크리스틴의 사랑이야기이며 동시에 팬텀의 결핍이 불러낸 크리스틴을 향한 집착의 사랑이야기가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극을 만들고 그녀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앤드류와 사라 브라이트만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천재성과 사랑의 결합이 이토록 강한 것일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상징적인 크리스털 조명















1막 시작 전 무대

  뮤지컬은 우아했다. 무대, 노래, 의상, 노래 스타일 심지어 배우들의 생김새까지도 ‘우아함'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무대의 전환은 매우 다이내믹했다. 특히 팬텀의 동선이 매우 다양했는데, 무대 위와 아래를 왔다 갔다 하며 바빴고 1막 후반에서는 조형물 위에 직접 올라가 놀이기구를 타 듯 허공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레미제라블에서처럼 오페라의 유령도 간간히 프로젝터로 배경을 쏘기도 했다.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여기저기에 천들이 걸쳐져 있고 샹젤리제는 오래된 천으로 덮여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오래된 오페라 하우스의 물건들을 경매하는 경매장이었던 것이다. 첫 장면이 끝나고 overture가 시작되자 갑자기 불이 번쩍하며 켜지고 무대 곳곳에 씌워져 있던 천들을 일하는 사람들이 직접 수동으로 벗겨내었다. 샹젤리제는 높게 올라가 천장에 걸렸다. 그리고 리허설을 하는 장면이 시작되었다. 나는 바로 이  첫 장면부터 중반까지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공연 전의 리허설과 그 어수선함을 잘 살렸기 때문이다. 앙상블 배우들의 수군거림과 몸을 푸는 모습부터 곡을 쓴 작곡가가 어쩔 줄 모르며 돌아다니는 것, 그리고 프리마돈나의 옷을 수선하는 수선사까지 공연장의 뒷모습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이런 디테일이 늘 심쿵하게 만든다.




  라울은 커버 (주연을 대신해 무대에 올라가는 대역)였고, 동화 속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왕자님의 모습이었다. 크리스틴은 소프라노의 옥구슬이 흘러가는 또랑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맨 처음 프리마돈나가 의문스러운 극장 건물 사고에 화를 내며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뛰쳐나가고 그 대역으로 크리스틴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마담 쥐리의 추천을 받고 무대 한가운데에 선 크리스틴이 노래를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무서워하다가 점점 자신감을 가지고 노래를 부른다.


  영어를 100%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공연을 볼 때 배우가 감정을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하는가를 눈여겨본다. 그날의 크리스틴은 그 부분에서 조금 아쉬웠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긴 달리기라면,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긴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배역의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가도 중요하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감정의 고조나 어떠한 스토리 없이 넘버 순간의 감정에만 충실했다. 오페라의 유령이 자신에게 준 재능에 고마워하면서도 그의 광기와 천재성이 두려운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힘에 이끌려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 그 후 가면 뒤에 숨겨진 어린 시절의 안쓰러움과 연민으로 범벅된 감정의 '변화'를 잘 잡아내지 못해 아쉬울 뿐이었다.


   팬텀은 흑인이었다. 내 기억 속의 팬텀보다 훨씬 더 어린아이 같았다.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자아의 혼돈이 더 자주 찾아오는 팬텀이었다. 노래도 좋았고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작곡가로서의 천재성과 무자비함, 하지만 크리스틴 앞에서 드러나는 서투름, 그리고 갈등이 극적으로 치닫는 마지막 장면에서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상처와 안타까움의 경계를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해줬더라면 더욱 완벽한 팬텀이 나오지 않았을까.




여태까지 그대가 마주했던 세상은 어떤 곳 이길래
이렇게도 증오와 분노만 넘치는가.
이제 내가 그 사랑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리라!



 

  마지막 장면은 뭉클했다. 팬텀은 크리스틴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들의 마지막 키스는 오랜 베일에 싸인 팬텀의 불운한 어린 시절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흉측한 그의 반쪽 얼굴을 쓰다듬으며 키스를 하는 그녀의 손길이 그 증오와 상처까지 모두 씻어낸 것이다. ‘여태까지 그대가 마주했던 세상은 어떤 곳 이길래 이렇게도 증오와 분노만 넘치는가! 이제 내가 그 사랑과 아름다움을 보여 주겠다’는 가사처럼 크리스틴의 키스는 증오와 분노만 넘치던 그의 세계에 난생처음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이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

2014년 6월 13일 작성

2020년 9월 14일 편집 및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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