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보다 뛰어난 기자가 되거라
기자가 꿈이라는 딸에게 기자 아빠가
여러분의 어릴 적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나요? 저희 때만 해도 1번이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요즘에는 유튜버, 프로게이머, 뷰티 디자이너에서 건물주까지 다양해졌습니다.
장래 희망이야 성장하면서 열두 번도 더 바뀝니다. 어린 시절에는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이 참 많았는데요. 커가면서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할까’라는 고민을 열두 번도 더 합니다. 막상 직업을 갖고 나서도 ‘정말 내 적성에 맞는 직장인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립니다.
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습니다. 태어나서 결혼 전까지 30년 넘게 한집에 살면서 공무원의 일상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주로 만나는 분도 공무원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나도 공무원이나 할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죠.
하지만 아버지의 공무원 생활은 단조롭게 보였습니다. 하루하루가 같은 일상의 반복이고, 특별한 일이라는 인상은 받지 못했으니까요. 어떨 땐 지루하고, 권태롭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저는 결국 아버지께서 근무했던 시청을 출입하는 ‘기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동료들은 제가 취재를 하러 갈 때마다 “아버지보다 낫네”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는데요. 저는 그 말이 듣기 거북했습니다. 제 아버지가 훌륭하지 못하다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분들은 격려 차원에 한 덕담이었을 겁니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미천했던 저는 그 말을 곡해했던 거죠.
딸아, 넌 나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기자가 되거라왜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자식이 어디 가서 칭찬을 들으면, 그것만큼 듣기 좋고 기분 좋은 게 없는 게 부모 마음입니다. 아버지께서도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보다 낫다는 건 그만큼 내가 널 훌륭하게 잘 키웠다는 소리여.”
덕분에 저도 아버지 경력과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보니 그 말씀은 더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요즘 논술 공부에 푹 빠졌습니다. 글쓰기가 좋다고 합니다. 논술 학원을 몇 달 보냈는데요. 글쎄 ‘인문 영재반’이라는 프로그램을 듣고 싶다지 뭡니까. 지역에서 글깨나 쓴다는 소수만 모아놓고 하는 ‘특별 논술반’이라고 합니다.
인문 영재반 지원자를 대상으로 자기소개서 과제물을 내줬다고 하는데요. 딸이 쓴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인문 영재반을 들어가고 싶은 이유가 ‘아버지 같은 기자가 되고 싶어서’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랐습니다.
딸이 쓴 글입니다. 딸이 제 일에 그토록 관심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장래 희망이 기자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기자 아빠로 살면서 못 살진 않았구나’라고 안도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딸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경거망동하지 말고 겸손해야겠구나’하는 다짐을 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운다고 하잖아요. 대견함과 더불어 책임감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옛날 제 아버지도 저를 보면서 같은 마음이었겠다는 생각에 숙연해졌습니다. 비위 공직자라는 손가락질을 당하면 아들까지 피해가 갈 수 있으니 얼마나 행동에 조심하셨을까, 하니 마음 한쪽이 아리고 저밉니다.
딸이 저의 모습에 실망해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기자를 꿈꾸는 딸에게 기자 아빠가 덕담 한마디 남깁니다.
딸아, 넌 나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기자가 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