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제보자 의도와 제보의 가치를 뜨겁고 냉정하게 판단하라

by 류재민

기자들에게 있어 제보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대부분 제보자와 기자와 일대일로 접촉하다 보니, 특종이나 단독 보도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그런 기회가 자주 오는 건 아닙니다. 자주 오지도 않을뿐더러 걸러내야 할 제보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제보자나 제보를 아예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일단 확인 작업(팩트체크)은 거쳐야 하니까요.


제보자가 기자를 찾았을 땐, 그야말로 그 기자와 언론사를 향한 ‘믿음’ 때문입니다. 몸이 아픈 환자가 의사를 찾듯이 말입니다. 실제 대다수 제보자는 ‘의지할 건 언론밖에 없다’라는 심정으로 연락을 해 옵니다.


그들은 자기만이 알고 있는 고급 정보나 내부 비리, 억울한 사연을 기자 앞에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싶어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귀찮다고 피하거나, 골치 아픈 민원이라고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땅의 마지막 양심마저 무너지는 순간 아닐까요?


10여 년 전, 천안시청을 출입할 때 일화입니다. 당시 시청 내 기자실을 자주 찾아오던 어르신이 계셨는데요. 시골에 있는 자기 땅을 누군가 훔쳐 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확인 결과 사실 무근이었습니다.)

어르신은 허구한 날 기자실 문을 열고 들어와 기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못된 인간이 공무원들과 짜고 내 땅을 빼앗으려고 해.”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그 어르신에게 다가가는 기자는 없었습니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고개를 푹 숙이고 기사를 쓰는 척하는 기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기자실에서 연배가 가장 많은 선배 기자가 일어서 어르신에게 물 한 잔을 건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더운 날씨에 그 먼 데서 버스 타고 여기까지 오셨슈. 시원한 물 한 잔 드슈.”


한여름 날씨 탓인지, 분이 잔뜩 서려서인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어르신은 그제야 간이 소파에 앉아 숨을 고릅니다. 숨을 고른 다음에는 항상 들고 다니는 서류 뭉치주섬주섬 책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다음에는 넋두리 같은 제보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습니다. 노(老) 선배는 마주 앉아 10분이고, 20분이고 가만히 들어줍니다. 말을 마친 어르신은 그제야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갑니다. 어르신이 돌아간 뒤 후배 기자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선배는 만날 똑같은 얘기를 해도 질리지 않습니까? 이제 좀 그만 오라고 하세요.”

그러면 선배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힘없는 노인이 얼마나 의지할 데가 없으면 삼복더위에 여길 찾아왔겠나. 우리가 기사를 쓰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 마음이 풀리고 위안을 얻기 때문이지. 기자가 꼭 기사를 써야 기자가 아닐세. 맘 아픈 사연을 말없이 들어만 줘도 그 사람들한테는 고마울 걸세.”


동료 기자들과 함께 노트북에 고개를 처박은 채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였죠. 그 선배가 존경스러운 건 말 할 것도 없고요.


저는 그 일이 있은 뒤부터 기자실을 찾는 이가 제보자이든, 민원인이든 친절하게 대하려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때로는 “아니, 세상에 그런 나쁜 놈이 있어요?”라고 맞장구도 치면서. 지금 생각하면 저에게 그때 그 장면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진정한 사랑과 유대감이란, 고독하고 절망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싹튼다. 나를 찾아오는 여인들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픈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그들 모두가 정말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인지, 내 의학지식이 짧았던 탓인지, 난 모두에게 거의 같은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체 게바라 어록> 56쪽


불순한 의도를 갖고 언론을 이용하려는 제보자도 비일비재합니다. 괜히 잘못 엮였다간 오히려 기자가 해를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감정에 이끌려 제보자에게 휘둘렸다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 기자는 일부러 제보를 받지 않으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꽁무니를 뺍니다. 나름의 노하우라고 할 순 있겠죠.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기자의 처세술일 것입니다. “그런 건 기자를 찾을 게 아니라 경찰서에 가서 고발하세요”라고 묵살한다면 더한 봉변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일단 진지하게 제보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보자의 의도와 제보의 가치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속으론 “당신이 무슨 의도로 그런 제보를 하려는지 뻔히 알아”라고 생각할지언정 겉으로 표현하는 건 금물입니다. 그랬다간 “너 같은 놈이 기자야? 이러니 기레기 소리나 듣지”라며 시비가 붙고, 같이 경찰서 가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솔직하고, 냉정 해지는 겁니다.

“선생님 말씀은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저를 믿고 오셨으니 취재는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쓰겠다는 장담은 못 합니다. 어렵게 제보한 내용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최대한 선생님 편에서 도움을 드리려고 하겠지만, 제가 아직 실력이 부족합니다. 기사를 쓰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려도 실망하진 마세요.
저보다 더 유능한 기자는 주변에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제보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무능한 기자’라는 소리를 들어도 순간입니다.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 제보자에 휘둘려 잘못된 보도를 한다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기도문처럼 이런 주문을 외워보는 건 어떨까요.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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