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다가오면 정치부 기자들은 누가 출마할지 전망 기사를 씁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끌어다 붙입니다. 출마 의사가 있는 사람이야 언론에서 거론해주니 기분 좋겠지요.
반대로 출마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은 입장이 난처해집니다. 기사를 보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올 테니까요. 하지만 언론은 그들의 의사나 입장은 아랑곳없습니다. ‘아니면 말고’식이니까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4선 국회의원 출신입니다. 정치 입문 전 MBC 기자였습니다. 누구보다 언론을 잘 아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박 장관은 어제(1일) 한 라디오 추석 특집 방송에 출연해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설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언론이 문젭니다.” 박 장관은 “내 할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박 장관이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지 말지는 그때 가보면 알 겁니다. 문제는 박 장관 말마따나 ‘언론’입니다.
보궐선거는 6개월 넘게 남았는데 언론은 벌써부터 후보군 줄 세우기 바쁩니다. 경제 부처 장관이 코로나19로 어려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얼마나 챙기는지 취재할 게 많을 텐데, 서울시장 출마나 거론하고 있습니다. 출마 생각이 없는 사람을 맘대로 올려 놓고 ‘찧고 까부는’ 게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입니다.
추석 전야, 가수 나훈아 씨가 KBS 방송 무대에 노 개런티로 출연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트로트의 황제는 명절을 맞아 국민들에게 ‘고향·사랑·인생’을 주제로 진한 감동을 선물했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에 지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어게인’을 외치며 흥을 주고,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 영상. KBS 화면 갈무리.“우리는 많이 힘듭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옛날 역사책을 보든,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IMF 때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입니다.”
방송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언론과 일부 정치인은 아전인수식 해석을 쏟아냈습니다. 그가 한 말이 정부를 비판했다는 둥, 작심 발언이었다는 둥. 그냥 한 예술인이 펼친 멋진 공연의 일부로 보면 안 될까요? 왜 자꾸 확대해석을 해 국민가수가 국민들에 선사한 벅찬 감동을 반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알려졌다’ 또는 ‘~라고 전해졌다’ 기자들이 기사문에 흔히 쓰는 표현입니다.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거나, 확인이 어려운 상황일 때 습관적으로 쓰는데요. 이런 식의 '면피용' 보도행태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책임하게 보이니까요. 기자는 자기 기사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이 기자 본연의 역할이니까요. 책임지지 않는 언론이 문제입니다.
뒷이야기: 2021년 4월 7일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박영선 후보를 공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언론이 '찍은' 인물이 출마한 셈인데요. 하지만 맞히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특히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 기사는 더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