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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an 07. 2023

안녕, 도깨비(13화)

#13. 왕이 된 사나이

설핏 든 잠에서 깼다. 겨우 한 시간 남짓 잤을 뿐인데, 단꿈을 꾼 듯 일어났을 때 기분이 좋았다. 꿈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났다. 그중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건 요즘 쓰고 있는 소설의 한 장면이었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복잡했던 대목이 한꺼번에 풀어진 기분이다. 장과 선화의 만남과 이후의 이야기가 술술 써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입 주변에 미소가 흘렀다.    

  

연신 흥얼거리는 나를 보던 아내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왜 그래요?”라고 했을 때도, 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이방 저 방을 쿵쿵거리며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아빠, 어지러우니까 그만 좀 하세요”라고 했을 때, 비로소 작업실로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다시 집필이 시작됐다.      


선화는 장과 혼인했다. 그리고 남편이 된 장에게 글을 가르쳤다. 김유는 장에게 무술을 가르쳤다. 선화와 김유는 장을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만들 요량이었다. 선화는 늘 생각했다.      


‘언젠가, 서방님에게도 큰일을 도모할 기회가 올 것이다.’     


김유의 개인 지도를 받은 덕분인지, 장의 무예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눈을 감고 세워 놓은 볏단을 정확히 갈랐고, 새소리만 듣고도 화살로 쏘아 명중시켰다.      


그사이 백제에서는 왕이 계속 바뀌었다. 27대 왕인 위덕왕이 죽고 나자 그의 동생 혜왕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1년 만에 승하하고 말았다. 혜왕의 아들인 법왕이 제29대 왕으로 등극했지만, 그 역시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옥좌에 오른 왕들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궁 안팎에서는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도성 안에서도 “백제가 멸망할 징조”라는 말들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소문의 위력은 위세를 떨쳐 장과 선화가 살던 무왕산까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서방님, 지금 궐 안이 뒤숭숭한가 봅니다.”

“저도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두 분의 왕이 보위에 오르자마자 승하할 수 있는지..”

“서방님, 그래서 말인데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요? 무슨 준비를 한단 말이오?”

“곧, 궁에서 서방님을 모시러 올지 모릅니다.”

“궁에서? 나를요? 왜요?”     


선화는 장이 왕족이라는 사실을 김유를 통해 들었다. 김유는 이 소식을 백제 왕실 대좌평(大佐平) ‘장평’에게 들었다. 대좌평은 백제시대 최고 벼슬이었다. 김유는 백제로 들어온 뒤 궁에 심어놓은 첩자를 통해 장평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장평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와 서슴없이 이야기를 터놓는 관계까지 이르렀다.     

 

한 번은 장평이 김유에게 “사실, 자네가 가르치고 있는 장이라는 사람이 왕가의 일족이라네. 자네도 알다시피 왕들이 심신이 미약해 오래 살지 못하고 돌아가시니, 장을 보위에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네. 왕족이라는 명분도 있고 말이지.”     


장평은 그 말을 선화에게 전했고, 선화는 장이 차기 백제의 왕에 오를 것이라고 직감했다. 며칠 뒤 장의 집으로 장평이 찾아왔다. 


주변의 눈을 피해 가마 대신 말을 타고 왔다. 삿갓을 깊게 눌러쓰고 사립문을 들어오는 장평을 김유와 선화는 버선발로 맞았다. 장은 혼이 반쯤 나간 표정으로 방에서 장평을 맞았다. 방에 들어온 장평은 장에게 큰 절을 세 번했다.      


“마마, 대좌평 장평 문후 올립니다.”

“어서 오시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소.”

“고생은요. 보위에 오를 분을 만난다는 생각에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뭐? 보위?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게요?”

“마마께서는 저간의 궁의 상황을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궐 안은 이미 정리를 마쳤습니다. 마마께서는 어서 입궁 채비를 하십시오.”     


장은 꿈을 꾸는 듯했다. “내가 왕이 된다고? 백제의 왕이 된다고? 내가?” 입궁한 장은 곧바로 즉위식을 열고 보위에 올랐다. 그가 곧 백제의 30대 왕 ‘무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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