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필사하라
당신의 영혼을 바꾸는 시간
출근길에 지나는 교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이 건물에 ‘영바시(영혼을 바꾸는 시간)’ 캠페인 현수막이 걸렸는데요. 100일 동안 하루 1번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경을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눈길이 갔습니다. 기자로서 본받을 만한 캠페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 읽기는 ‘독서’로, 기도는 ‘성찰’로, 성경 쓰기는 ‘필사’로 바꾸면 기자의 3대 기본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필사의 중요성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필사(必死)적으로 필사(筆寫)하라’
갑자기 떠오른 말입니다. 필사는 말 그대로 ‘베껴 쓰기’입니다. 책이나 신문 기사를 직접 써보는 것만큼 좋은 공부는 없습니다. 백날 눈으로 보는 것보다 한번 써보는 게 백배, 천배 낫습니다.
신입 기자들은 수습기간 동안 ‘필사’가 필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신입 기자들에 필사를 시키는 언론사가 있습니다. 단기간에 기사 작성법을 체득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필사를 하면 기사의 틀(구조)을 익힐 수 있습니다. 문법과 어휘력 향상은 물론, 시사와 이슈에 해박해집니다. 쓰는 동시에 소리 내 읽는다면 집중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그런데 말입니다. 기자들 대부분 수습 딱지를 떼는 순간 필사를 그만둡니다. 그 좋은 공부를 중단합니다. 쓰는 것도 귀찮고, 팔도 아프니까요. 명색이 기자인데,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개구리 같은 태도입니다.
물론, 기사 실력이 출중하다면 굳이 필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사인지, 소설인지, 우리말인지 외계어인지, 중구난방에 뒤죽박죽 쓴 걸 ‘기사’라고 독자에게 내놓을 수 있을까요? 독자들의 뭇매에 앞서 데스크에서 깨지고 볼 일입니다.
몇 년 전 타 신문사에서 이직한 후배가 있는데요. 쓰는 기사가 영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필사를 시켜 봤습니다. 중앙지 1면을 필사한 다음, 사진을 찍어 제 카톡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썼는지, 진심으로 썼는지 모르지만 효과는 금방 나타났습니다. 기사의 질이 몰라보게 달라졌으니까요. 본인 스스로도 기사가 나아졌다는 걸 실감했으니 필사의 효과를 입증한 셈입니다.
출근길마다 지나는 교회 건물에 걸린 영바시 100일 프로젝트 현수막입니다. 연필 들기가 어렵지, 진득하게 앉아 쓰는 습관을 들이면 기사 쓰기에 분명 도움이 됩니다. 독학으로 기사를 깨우치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필사 훈련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훈련을 통해 내공이 쌓이면, 글을 이해하는 능력과 표현 능력을 동시에 기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자만의 문체가 만들어지는데요. 바로 그게 ‘필살기’입니다. 이는 비단 기자에게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일반인 역시 이 방법을 터득한다면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을 것이라고 감히 장담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고,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도 합니다. 글(기사) 쓰는데 자신이 없습니까? 문장력의 한계를 느끼나요? 100일까진 아니어도, 한 달 만 필사적으로 필사해보세요. 당신의 ‘영바시’가 될 테니까요.
오늘 들려드릴 노래는 독일 록그룹 셀릭(Selig)이 부르는 [노킹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입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