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특종
겨레와 조 부장은 제보 자료를 토대로 보도 시점을 논의했다. 각자 기사를 쓴 뒤 서로의 글을 검토하기로 했다. 두 기자가 쓴 기사는 엇비슷했다. 이후 자사 편집국장에게 정보 보고를 올렸고, 작성한 기사를 송고했다. 두 언론사 편집국장은 한날한시에 보도하기로 협의를 마쳤다. 기사는 이틀 뒤 ‘단독’과 ‘특종’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공개됐다.
두 기자가 각각 보도한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日 총리에 선물할 고려청자 도난..대통령실 ‘함구령’” <지구일보, 한겨레 기자>
“대통령실 수장고 안 고려청자 ‘유령’처럼 사라지다” <시사주간 창, 조선일 기자>
대통령실은 발칵 뒤집혔다. 대변인실은 언론 보도에 해명 자료를 만드느라 진땀을 흘렸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해당 언론 보도는 오보”라고 했다가, 지하 수장고 사진이 추가로 공개되자 “조작 가능성”을 갖다 댔다.
그러나 조작이나 편집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사진과 영상 전문가들 분석이 후속 보도로 이어졌고, 도난을 인정하는 익명의 대통령실 관계자 발언이 기사에 들어가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대통령실은 허둥댔고, 참모들은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했다.
고려청자 도난 사건의 불똥은 정치권으로 옮겨붙었다. 야당 대변인은 대통령실에 도난당한 고려청자 입수 경위와 일본 총리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의도를 밝히라고 논평했다. 야당 지도부는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라고 촉구했고, 국정조사와 특검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여당은 여론의 반응을 살피며 대통령실 엄호에 급급했다.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은 긴밀하게 관련 자료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썼다. 집권 여당과 대통령실은 이번 사안이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대통령은 즉각 관계 장관 회의와 참모진 회의를 열었다. 그리곤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을 탁,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당신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요? 일 처리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무슨 장관이고, 수석이냔 말이오? 긴말 필요 없고, 정상회담 전까지 정리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다들 그 자리에 앉아있을 생각하지 마시고!” 격노한 대통령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후 회의는 비서실장이 주재했다.
회의에선 경호실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사건 당시 CCTV 녹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관리 경호원이 자리를 비우는 등 지하 수장고 관리에 허술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경호실 내에 사건 조력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호실 안에 쥐새끼가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어!”
정용호 비서실장은 김삼수 경호실장을 의혹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다그쳤다.
김 실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호실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지금 즉시 경호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상조사를 실시하겠습니다. 사건 당일, 해당 시간대 관리자 동선도 철저히 확인해 조속히 청자를 회수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책임자 문책과 처벌은 그 이후에 해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국가 최고 권력기관이 어이없게 뚫렸단 말이오. 그걸 빌미로 지금 야당은 얼씨구나 신이 나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데, 뭐가 어떻고 어째? 당장 범인을 잡아내 야당 공세를 방어하고, 민심 이반을 막아야 한단 겁니다.”
김 실장이 말을 마치기 전에 비서실장이 말을 끊으며 윽박질렀다. 상관이 수세에 몰리자 최지훈 실장이 나섰다.
“수석님 말씀이 옳습니다. 어쨌든 저희로서는 전 직원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범인 색출에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아울러 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진 청자를 찾는 일에 주력하겠습니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호실 내부에 첩자가 있을지 모르는데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길 수 있겠어? 이후 수사와 청자 회수 작업은 국정원에 맡기겠소. 경호실은 최대한 수사에 협조하시오.”
비서실장은 이번 사건을 국정원에 전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정리한 뒤 회의를 마쳤다. 비서실장 지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절차였고, 수순이었다. 경호실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검경 같은 수사기관이 아닌, 국정원이 경호실 수사를 맡는 것에는 내심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국정원의 수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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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철훈 국정원장은 이번 사건의 중대성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오민석 제1차장을 단장으로 10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단을 꾸렸다. 오민석 차장은 기획조정 실장 출신으로, 국내 정보 수집과 분석, 대공 수사에 능통했다. 특수단은 출범 당일부터 경호실 직원을 소환해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대통령실 지하 수장고 담당자 3명과 최지훈 기획관리실장이 첫 소환 대상이었다. 그들은 남산 인근 취조실에서 차례로 조사받았다. 수사관들은 사건 당일 동선과 행적을 캐물었다. 미심쩍은 발언에는 집요하게 파고들어 추궁했다.
“사건 당일 수장고 근무자가 자리를 이탈한 이유가 뭐요?”
조사관의 질문에 당시 근무자였던 차유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묵비권을 행사했다. 나머지 직원 두 명은 “비번이었기 때문에 알 수 없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마지막으로 조사받은 최지훈 실장은 당일 동선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수장고 근무자가 왜 근무지를 이탈했는지 이유에는 보고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첫날 조사는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오 단장으로부터 첫날 조사 결과를 보고 받은 마 원장은 속이 부글거렸다.
“이놈들, 뭔가 속이고 있어. 그렇지 않고야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할 순 없어.”
“그러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두드려 패거나 고문할 수도 없고…….” 오 단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수장고 앞 CCTV는 확인해 봤어?”
“네. 그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촬영분이 없습니다.”
“안 찍혔다는 거야, 삭제됐다는 거야?”
“CCTV는 돌아가고 있었는데, 수장고 출입자는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무슨 유령이라도 나타나서 청자를 가져갔다는 거야, 뭐야!”
“저도 그것이 좀 애매합니다.”
마 원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차유민은 좀 더 데리고 있으면서 추가 조사해 봐. 현장 근무자였던 녀석이 왜 근무지를 이탈했는지를 알아내면 실마리가 풀릴 것 같으니까. 그놈 배후에 누군가 있어. 쥐새끼든, 유령이든 반드시 잡아야 해.”
“김삼수 실장도 소환할까요?”
“그 양반은 아직 부를 타임이 아냐. 괜히 잘 못 건드렸다가 경호실과 국정원 사이도 안 좋아지고, 공연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신중히 접근하자고.”
“알겠습니다.”
“아 참, 이번 건 보도한 기자들 있지?”
“네. 지구일보 한겨레 기자와 시사주간 창 조선일 기자입니다.”
“거기도 조사해 봐. 분명 누군가로부터 제보를 받았을 테니. 제보자를 알아내면 몸통을 밝혀낼 수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오 단장은 수사단으로 돌아와 단원들에게 두 기자를 조용히 조사실로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단원 세 명이 승합차를 몰고 가 대통령실 기자실에 있던 겨레와 조 부장을 연행했다. 기자들은 그들이 국정원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기자실 안에 있던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두 기자는 연행 과정에서 핸드폰을 압수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