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먹장구름

2. 고려청자 도난 사건

by 류재민

김삼수 경호실장은 대통령 보고를 마치고 막 나오던 참이었다.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꺼둔 핸드폰 전원을 켰다.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수십 통이 한참 진동음을 냈다. 스팸 문자부터 국회 여당 원내대표 비서실장의 식사 약속, 대학 후배의 안부 메시지, 병원 진료 예약 공지, 수학여행 간 딸이 보낸 카톡 사진까지 다양했다.

그중 부재중 통화에 시선이 쏠렸다. 이상원 경호 차장이 두 번 전화했고, ‘긴급! 비상 상황’이라는 문자를 남겼다. 불길한 예감이 칼날처럼 머리를 스쳤다. 짧게 자른 머리가 곤두섰다. 김 실장은 서둘러 이상원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이었다. 서서히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느새 그는 뛰고 있었다. 심장도 덩달아 뛰었다. 입에선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3층에 불과한 거리를 30층은 내려온 듯했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김 실장이 자신의 사무실 앞에 다다랐을 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이 차장 모습이 보였다. 좌우로 경호 본부장과 경비본부장, 안전본부장, 경호지원단장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김 실장을 맞았다. 뭔가 일이 터진 걸 직감한 그는 참모들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문을 열자, 눅눅했던 실내 공기가 바깥으로 밀려 나왔다. 무거운 공기를 헤집고 들어간 일행은 간이 회의실로 들어갔다. 최지훈 기획관리실장이 재빨리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의자에 앉은 경호실 수뇌부 눈이 모두 스크린으로 향했다. 최지훈은 준비한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화면에는 푸른 빛이 감도는 청자 한 점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위용을 드러냈다.

“지금부터 긴급상황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최지훈의 동작은 다급했고,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듯 상황 보고를 시작했다. “지하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고려청자가 사라졌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씀드리면 도난당했습니다. 시각은 지난 6일 오전 11시 30분부터 1시간 전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김 실장은 더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묻기 시작했다. “수장고라면 경호원들이 항시 대기 중이고, 지문인식을 해야 들어갈 수 있어. 게다가 CCTV까지 작동 중인데 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지?”

최지훈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무슨 영문인지 경호원도 없었고, 그 시간에는 CCTV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상원 차장이 책상을 ‘쾅’하고 내리쳤다. “당신들 뭐 하는 사람들이야. 청자가 털리고 있는데, 대통령실 경호원들이란 놈들은 뭘 하고 있었냐는 말이야.” 경호실 이인자의 호통은 둔탁하면서 묵직했다. 잘 벼린 칼처럼 날이 잔뜩 서 있었다. 본부장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무거운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뿐.

김 실장이 침통한 분위기를 깨고 말했다. “청사 안에 유령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부 소행일 가능성이 커. CCTV를 피해 수장고 안에 들어갈 정도라면 필시 경호실 직원 중에 누군가 범행을 주도했거나, 조력했을 수도 있겠지.”

이상원이 김 실장의 말을 받았다. “그런데, 왜 하필 고려청자를 노릴 걸까요? 금방 걸릴 게 뻔하고, 가져다 팔지도 못할 텐데.” 최지훈이 대답했다. “두 달 뒤 일본 총리가 서울에 옵니다. 일본 총리에게 선물할 목록에 청자가 들어있었습니다.” 김 실장은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아뿔싸! 쉽게 해결할 문제가 아니구나’

최지훈이 보고를 이어갔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에게 청자를 선물할 거란 사실을 아는 곳은 대통령 비서실과 국정원, 그리고 경호실만 알고 있는 일급비밀입니다. 따라서 세 곳 중 한 곳에 용의자가 있을 걸로 짐작됩니다.”

김 실장은 낮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청자를 찾아내야 했다. 청자의 도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도 유지해야 했다. 김 실장은 참모진에게 두 가지 사항을 지시한 뒤 내부적으로 용의자 파악을 지시했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은밀하게.



겨레와 조 부장이 서울스퀘어 커피숍에 도착한 건 다음 날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전 도착한 건, 주변 분위기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커피숍은 오전 10시부터 영업을 시작했는데, 내부는 이미 북적거렸다. 조 부장이 창가 쪽에 자리를 맡는 사이, 겨레는 커피를 주문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전날 연락한 제보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시간은 얼추 11시가 다 돼 갔다. 커피숍 안에는 잔나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디든 달려가야 해~ 헤드라이트 도시를 넘어 뒷자리엔 부푼 꿈을 숨겨주던 그녀의 젊은 자동차’

겨레와 조 부장은 긴장한 내색을 감추려고 애쓰는 듯했다. 경직된 자세로 의자에 바로 앉아 멀뚱멀뚱 창밖에 지나가는 자동차를 응시하고 있었다. ‘드르르륵’. 둘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진동벨 소리에 소스라치듯 놀랐다. 겨레가 일어나 주문대에서 아이스라테 두 잔을 양손에 들고 왔다.

“시간 다 됐는데, 왜 안 오는 거야.” 조 부장은 겨레가 가져온 커피를 받아 들며 초조하게 말했다. 겨레는 차가 막힐 수도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보자며 그를 달랬다. 하지만 겨레의 표정에도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약속 시간보다 10분이 지났지만, 제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 뭐야.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을 주던가. 원 참.” 겨레는 시간이 갈수록 다급해졌다. “그나저나 오기는 올까요? 괜히 허탕만 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겨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내다봤다. 그렇게 오 분쯤 더 흘렀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 정보 제한 표시였다. 두 사람은 제보자임을 직감했다.

겨레는 통화 버튼을 눌렀고, 그들이 예상은 맞았다. 전화를 건 이는 제보자였다. 그는 “한 기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오늘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보자의 말을 들은 겨레는 화가 치밀었다. “아니, 지금 저랑 장난하는 겁니까. 국가 기밀이니 뭐니 하면서 만나자고 할 땐 언제고, 지금 와서 못 나온다니. 이게 말이요, 막걸리요?”

제보자는 잠시 뜸을 들인 뒤 겨레에게 말했다.

“만나진 못해도, 제보는 하겠습니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무슨 제보를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겨레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는 뚝 끊어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조 부장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곧바로 겨레에게 제보자가 보낸 문자메시지 한 통이 왔다.


‘서울역 물품 보관소 542번 보관함. 비번 0022’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두 사람은 귀신에 홀린 듯 멍하니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버스환승센터를 지나 맞은 편에 있는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서울역 광장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맞이방에 들어선 겨레는 두리번거리며 물품 보관소를 찾았다. 그리곤 ‘542’라는 숫자가 적힌 보관함 앞에서 제보자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눌렀다. 불이 깜박이더니 문이 열렸다. 안에는 서류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겨레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꺼냈다. 조 부장은 맞이방 주변을 살폈다. 감시나 미행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선배님, 혹시 모르니까 자연스럽게 행동해요. 일단 서류는 가방에 넣고 움직입시다.”

“오케이. 천천히 나가자고.”

겨레는 가방을 열어 서류 봉투를 집어넣었다. 맞이방에는 열차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기차에서 내렸거나 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겨레와 조 부장은 인파에 섞여 맞이방을 빠져나갔다. 역 광장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비둘기 떼가 푸드덕거리며 날았다. 그중 한 마리가 겨레에게 달려들었다. 겨레는 황급히 고개를 홱 돌렸다. 비둘기는 그의 눈앞에서 방향을 바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겨레는 놀란 나머지 자리에 주저앉았고, 조 부장이 괜찮냐며 다가와 몸을 일으켰다.

“이제, 어떻게 하지? 조용한 데 가서 열어봐야 할 텐데, 어디가 좋을까?”

겨레는 손가락으로 전철역을 가리켰다. “제 숙소로 가요. 당장 떠오르는 곳이 거기밖에 없네요.”

시청역에서 내린 두 사람은 광화문이 멀리 보이는 중국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겨레는 짬뽕, 조 부장은 짜장을 시켰고, 고량주도 한 병 주문했다. 독주(毒酒)라도 한잔 들어가야 놀란 가슴이 진정될 것 같았다. 겨레는 먼저 나온 고량주 뚜껑을 따서 조 부장의 잔에 따랐다. 조 부장은 목이 탔는지, 속이 탔는지, 잔에 담긴 맑은 술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독주에 속이 찌르르했다. 그래도 술이 들어가니 벌렁거리던 심장이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겨레도 한 잔을 따라 마시고 조 부장 눈치를 살폈다. 식당 주인과 종업원은 화교인지, 중국어로 주문을 전달하고 받았는데, 그들의 말과 행동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겨레는 숙소에 도착한 뒤 부랴부랴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봉투 안에는 달랑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고려청자였다.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청자는 투명 유리 상자 안에 들어 있었고, 건물 벽에는 ‘대통령실 수장고’라고 적힌 글씨가 보였다. 사진 뒷장에는 ‘고려청자 상감 연화 매병’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통령실에서 도난당한 바로 그 청자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직 그것이 대통령실에서 사라진 청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배, 이걸 왜 우리한테 보냈을까요? 이 청자가 뭐라고?”

“글쎄, 이 청자와 관련한 뭔가 있다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그 뭔가가 뭐냐는 말이죠.” 겨레와 조 부장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진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제보자에게 다시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이번에는 일반 전화로 걸려 왔고, 음성은 낯설었다.

“한 기자님, 저는 대통령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차 행정관이라고 합니다.” 그는 차 씨라는 말 외에 이름이나 소속 부서는 밝히지 않았다.

“물건은 찾으셨나요?”

“네? 네. 그런데 이게 뭐죠? 대통령실에서 저한테 이런 사진을 보내고 알 수 없는 연락을 계속하는 이유가?”

“죄송합니다. 국가 기밀이라 구체적인 말씀은 드리기가 좀…….”

“야, 이 양반아! 국가 기밀이라면 다야. 그놈의 국가 기밀이 뭐 그리 대단한데? 그렇게 대단하고 중요한 거면 당신들이 조용히 처리할 일이지, 왜 우리를 끌어들여 놓고 이러는 거냐고!” 겨레의 전화기를 가로챈 조 부장이 소리쳤다. 겨레가 조 부장 어깨에 손을 올리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저, 그게……실은, 며칠 전 대통령실 수장고에서 사진 속 청자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내부적으로 쉬쉬하는 중이고, 그 청자가 곧 있을 일본 총리 국빈 방문에서 선물해야 하는 거라서…….”

일본 총리 국빈 방문? 선물?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상황이 좀 그렇게 됐습니다. 두 분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차 행정관은 이내 “이 사실을 보도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겨레는 그의 부탁이 무슨 의도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내부적으로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할 판에 되레 보도라니!

“저는 지금 행정관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이건 국격과 직결한 매우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그러니까요. 그렇게 중차대한 사안을 왜 언론에 공개해서 일을 키우려는 거냐고요.”

“……청자를 보관하고 있는 게 바로 저희입니다.”

“뭐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에요? 대통령실 물건을 대통령실 사람들이 훔치다뇨?”

“자세한 경위는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두 분 데스크에 보고부터 드리고 기사도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그리고 이 번호는 제 번호이긴 한데, 자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걸어도 받지 못할 때가 더 많을 겁니다. 문자로 남겨주시면 연락이나 답장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차 행정관이 전화를 끊은 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겨레가 조 부장을 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해볼까요?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조 부장은 씩 웃으면 말했다. “난 죽어도 해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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