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마
늦여름이었다. 한겨레는 구내 기자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식당 안에서 수런거리는 소리에 아랑곳없이 미역국에 밥을 말아 깍두기를 한 조각 얹었다. 오늘은 그의 서른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같이 사는 식구가 없다 보니 생일 아침 미역국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조차 직접 국을 끓여 먹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는 두 달 전부터 대통령실로 출입했다. 기자 생활 6년 만에 국가 최고 권력기관을 출입하게 된 것이다. 출입처를 옮기면서 일은 산더미처럼 쌓였다. 경비가 삼엄한 곳이어서 취재가 쉽지도 않았다. 취재원을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기껏해야 브리핑할 때 잠깐씩 내려오는 홍보수석과 대변인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대통령실을 오래 출입한 선배들을 졸졸 따라다니기로 했다. 밥을 같이 먹거나 술을 한잔하거나, 차를 마시며 나누는 수다에 정보라도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그동안 출입했던 시청과는 반대 방향이었고, 용산 근처로 이사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을 출입하자마자 할 일은 산더미여서 이사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털털하고 수더분한 성격에 적응은 걱정하지 않았지만, 취재가 제한된 환경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솔직히 겨레는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어느 안경원에서 온 생일 축하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야 ‘오늘이구나’ 했다. 몇 해 전 렌즈를 사러 찾은 안경원에서 적었던 개인정보가 본인도 모르는 생일을 알려준 것이다. 공교롭게도 구내식당 메뉴도 미역국이었으니, 겨레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떠먹을 따름이었다. 그는 조용히 혼잣말했다. ‘그래, 누구라도 챙겨주면 된 거지!’
조선일 부장이 식판을 들고 와 맞은 편에 앉았다. 조 부장은 겨레보다 나이가 다섯 살 많았다. 사십 대 중반에 접어든 그의 이마에는 잔주름이 자글자글했고, 흰머리가 듬성듬성 내려앉았다. 눈에 거슬릴 정도까진 아니지만, 배도 조금 나와 있었다.
“식사가 늦었네?”
“네, 어쩌다 보니…”
“일은 어때? 할 만해?”
“아직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렇겠지. 나도 자네처럼 여기 처음 출입했을 때 그랬었지. 대통령이 기자회견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나 난감했지.”
“아무리 대통령실이라고 그렇지, 이렇게까지 폐쇄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언론이랑 부딪치기 싫다는 거지. 괜히 삐딱한 기사 몇 줄 나가면 여론이 나빠지지, 지지율 떨어지지, 책임은 죄다 정부와 정권으로 돌리기 일쑤니까.”
“……그래도 그렇지.”
겨레는 한숨을 내쉬며 먹던 밥을 마저 먹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식당 맞은편 매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손에 들고 청사 밖으로 나왔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전쟁기념관 둘레길을 걷는 건 겨레만의 루틴이었다. 식사 도중에 겨레가 생일이란 걸 들은 조 부장이 “생일 기념으로 오늘은 나랑 같이 걷자”라며 따라나섰다.
전쟁기념관 앞, 호숫가를 지날 때였다. 한 무리 유치원생들이 비닐봉지에서 강냉이를 꺼내 물고기 밥을 주고 있었다. 물속 비단잉어들은 고사리손으로 던져주는 아이들 강냉이를 받아먹으려 기를 쓰고 대들었다. 그리곤 연신 입을 뻐금거렸다. 아이들은 그런 잉어 떼가 재밌고 신기하다는 듯 손에 쥔 강냉이를 이곳저곳에 던졌다.
잉어 밥을 주는 무리 맞은 편에는 소풍 나온 초등학생들로 복작거렸다. 그들은 나무 그늘 밑에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었다. 조 부장은 참새떼처럼 재잘거리는 아이들 수다가 마냥 즐거웠다. 겨레는 그런 조 부장을 힐끗 보며 한마디 했다. “조심하세요, 잘못하다 빨대가 코로 들어가겠어요. 하하하.”
조 부장은 ‘아빠 미소’를 한 채 대꾸했다. “아이고, 후배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 집 애들 보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아침에 보고 나왔는데, 쟤들 보니까 벌써 보고 싶어지네. 급식은 잘 챙겨 먹었나 모르겠고…….”
“어휴, 그게 총각 앞에서 할 소립니까. 자식 없는 놈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겨레 입이 삐죽 올라갔다. 그러더니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참수리호와 수송기, 미그기 전시장 쪽으로 씩씩거리며 나갔다. “이봐, 한 기자, 삐쳤어? 거참, 무슨 말을 못 하겠네.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네. 같이 가.”
조 부장은 들고 있던 커피를 조심스럽게 잡고 뛰듯이 걸었다. 겨레는 저만치 앞에 있는 무궁화 꽃길에서 얼굴을 찡그린 채 그를 기다렸다. 둘은 어린이박물관 뒤편에 있는 쉼터로 들어가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요즘, 자기네 회사 분위기 좀 어때? 우리는 아주 기자들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뭐, 거기나 우리나 별 차이 있겠어요. 저희 국장도 저 볼 때마다 만날 특종 타령입니다. 아니, 선배도 알다시피 대통령실에서 나올만한 특종이 어딨습니까. 보안이 어쩌고저쩌고하는 통에 어딜 맘대로 출입할 수가 있나. 그렇다고 수석이나 비서관들이 연락을 제대로 받나. 특종이란 녀석이 ‘나 여기 있소’하고 제 발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겨레 말을 듣고 있던 조 부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가 길게 따라 나오다 표표히 흩어졌다. “그러게. 젠장 더러워서 이 짓거리도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원.” 조 부장 하소연에 겨레가 대꾸했다. “때려치우면 갈 데는 있고요? 눈앞에 어른거리는 여우 같은 마나님이랑 토끼 같은 새끼들 어떻게 하라고요? 참으십시오.”
“아니, 한 기자. 이렇게 복수하기야?” 조 부장은 승리를 놀린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때였다. 겨레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 데스크?”
“아뇨, 발신자 제한 번호인데요?”
“그거 그냥 스팸이나 보이스피싱 아냐? 괜히 받았다가 낭패 보지 말고 받지 마.” 겨레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다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기자의 ‘촉’이라고 할까. 겨레는 통화 버튼을 지그시 눌렀다.
“한겨레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여보세요? 한겨렙니다. 누구시죠?” 조 부장은 겨레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귀를 쫑긋 세웠다. 몇 초가 흘렀을까. 수화기 너머 발신자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저, 지구일보 한 기자님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목소리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대신 다음 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익명을 전제로 제보를 드릴까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통화를 엿듣고 있던 조 부장이 겨레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제보?”라고 속삭였다. 겨레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좋습니다.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선생님이 누구신지는 여쭙지 않겠습니다. 자, 그럼 그 제보라는 게 뭔지 말씀해 주시죠.” 익명의 제보자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국가 기밀 사항이라 전화상으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조용히 뵐 수 있을까요?”
‘국가 기밀 사항’이라는 말에 겨레는 짐짓 놀랐다. 조 부장의 눈도 동그래졌다.
“편한 시간과 장소를 말씀해 주시죠.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겨레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통화는 끊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내일 오전 11시. 서울역 광장 건너편 서울스퀘어 커피숍.’
이번에도 발신자 번호는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피우던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 기자, 어떻게 할 거야? 갈 거야?”
“만날 장소와 시간까지 정해서 보냈는데 안 갈 수가 있나요. 게다가 국가 기밀 사항이라잖아요. 이거, 서프라이즈 생일선물 받은 기분인데요.”
겨레는 잔뜩 기분이 들떠 있었다. 반대로 조 부장은 섬뜩했다. 익명의 제보자에게서 불길한 기운 같은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일 저랑 같이 가실래요? 아무래도 같이 가서 선배님 조언도 듣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괜찮으시겠어요?”
조 부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럼 혼자서만 특종 하려고 했어?”
겨레는 조 부장 농담이 재미없다는 듯 인상을 썼다. “선배님, 저 장난 아니에요. 저만 특종 할 생각은 1도 없어요. 단지, 그 제보자라는 사람이 왠지 께름칙해서 그래요.”
“그래 맞아. 혹시 알아? 제보를 미끼로 접근해서 해코지하려는 수작인지?”
그 역시 겨레의 말을 가볍게 들을 수만은 없었다. 20년 기자 생활 이래 이런 제보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조 부장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한 기자, 약속 지켜. 혼자 특종 하기 없기다?” 겨레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삼각지파출소를 지나고 있었다. 출발 지점인 전쟁기념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종알거리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은 그새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잉어 떼는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통령실로 향하는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렸다. 길 위에는 마이크를 들고 목청껏 떠드는 1인 시위자와 앰프를 시끄럽게 켜고 집회를 벌이는 단체, 억울한 사연을 전하는 70대 노파의 확성기 소음이 한데 섞여 난장을 치고 있었다.
날은 잔뜩 찌푸렸다. 먹장구름이 북서풍을 타고 몰려오고 있었다. 용산역에서 삼각지역으로, 다시 전쟁기념관에서 국방부 건물을 지나 대통령실로, 물밀듯 밀려왔다. 하늘은 컴컴해져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태세였다. “한바탕 퍼부을 기세군요.” 하늘을 쳐다보던 겨레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조 부장은 전자담배를 입에 물고 새까맣게 몰려드는 구름을 걱정 어린 눈으로 올려봤다. 장마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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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장마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오랜 기간 이어졌다. 연일 역대 일일 강수량을 갈아치웠다.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에 전국 곳곳에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잇따랐다. 서울의 한 주택 반지하에서는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했다. 갑자기 불어난 빗물이 집안에 들이닥쳤는데, 장애가 있어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남해의 한 마을에서는 농경지가 유실되고, 비닐하우스 수십 동이 침수됐다. 충청도에서는 소와 닭, 돼지를 비롯해 가축 수만 마리가 폐사했다. 집중호우로 인한 정전에 전철이 멈췄고, 열차가 탈선했다. 대통령은 긴급 대책 회의를 소집하고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로 긴급상황 회의를 열어 관계 기관 대책과 피해 현황, 지원 필요사항 등을 논의했다. 수일째 비상 체제를 가동 중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2단계에서 3단계로 격상했고, 풍수해 위기 경보는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했다.
장마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처럼 비구름을 몰고 다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한반도 전역에 ‘물 폭탄’이 쏟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급 태풍이 북상했다. 천지간이 대낮에도 암흑천지였다. 뉴스에는 종일 피해 상황과 대피 요령을 알리는 재난 방송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산사태에 매몰돼 죽고, 지하차도 차 안에 고립돼 죽고,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댐이 넘치고 철도가 끊겼다. 실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따로 없었다.
이주일 뒤, 중대본은 장마 기간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인명 피해 결과를 발표했다. 무려 2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지독한 장마는 그렇게 끝났다.
긴 장마가 끝나자마자 살이 녹아내릴 듯한 폭염이 찾아왔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고,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나날이 계속됐다. 대구와 울산에서는 온열질환 사망자가 잇따랐다. 하이킹을 하던 50대 직장인이 의식을 잃었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60대가 쓰러졌으며, 밭일을 하던 80대 노파가 정신을 잃었다.
남쪽에서는 저수지 바닥이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졌고, 물을 대지 못한 논에는 벼의 길이가 한 뼘이 채 자라지 못했다. 이번에도 대통령은 긴급 비상 회의를 소집했고, 다시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장마와 무더위가 번갈아 가며 변덕스러운 날씨는 성별과 세대, 내륙과 해안을 가리지 않고 악귀처럼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습한 공기에 지쳐갔다. 불쾌 지수가 치솟았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과 짜증을 부리다 금세 시비가 붙었다. 드잡이에 주먹이 오갔다. 경찰서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폭행 사건이 접수됐다. ‘묻지 마’ 식 칼부림도 이어졌다. 무고한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흉기에 찔리고 목숨을 잃었다. 사람을 죽이겠다는 ‘살인 예고 글’이 이어지며 공포가 확산했다. 그렇게 그해 장마와 폭염이 물러갈 즈음, 대통령실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름하여 ‘고려청자 도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