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어이 10km를 달리고 말았다

2년 연속 대청호 마라톤 대회 완주기

by 류재민

2023년 10월 15일. 내 마라톤 인생에 또 하나의 기록을 새겼다. ‘제22회 대청호 마라톤 대회’ 10km를 완주했다. 지난 대회에 이어 2년 연속 참가했고,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결승선을 들어왔다. 경이적인 건, 작년보다 무려 11분이나 기록을 단축했다는 거다. 짝짝짝!


이번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 대회였다. 2주일 전 다녀온 여행 중 산행이 변수였다. 무릎이 아픈 것도 아니고 안 아픈 것도 아니고, 아플락 말락 하면서, 뻑뻑하면서, 뛰면 크게 다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솔직히 대회 당일 아침까진 포기하고 싶었다.


괜히 달렸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내 신세만 볶는 일이기에. 그래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걸어서든, 네발로 기어서든, 내가 세운 목표는 달성하고 싶었다. 그 목표란, 기록 경신이 아니다. 끝까지 달리는 것, 그래서 어떻게든 내 의지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무릎 테이핑을 했다. 충분히 몸을 풀고 출발선에 섰다. 불안은 내려놓고, 골인 순간의 희열만 생각했다. 총성이 울렸고, 다리가 움직였다. 몸도 뛰고, 심장도 뛰었다. ‘부디 무릎이 잘 버티게 해 주소서!’ 내내 기도하며 달렸다. 다행히 출발 이후 3~4km까지 가뿐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자 불안했던 마음도 진정됐다.


문제는 반환점을 도는 5km 지점이었다. 발바닥이 저려 왔다. 왼 발바닥에 박힌 티눈이 신경을 자극했다. 양말을 두 겹이나 겹쳐 신었는데, 속에 신은 양발이 뛰는 힘에 밀렸는지 달리는 내내 거슬렸다. 그러다 두어 번 오르막을 겪으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 c, 내가 지금 또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겨!’ 입에선 연신 '십팔색깔 크레용'과 '십센치'가 번갈아가며 튀어나왔다. 지난 대회 때도 이랬었다.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일백 번 다짐해 놓고, 나는 또 대청호반길을 달리고 있었다.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안 부러운 포즈.
지난 대회보다 장장 11분을 단축했다는 거 아닙니까.
나는 나를 증명했노라.
이 맛에 달리는 거 아니겠슴둥?

6km, 7km, 8km... 1km 달리기가 100km를 달리는 것만 같았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다리에는 감각이 없었고, 양 무릎은 “야, 이러다 연골 다 나가겄어” 아우성을 쳤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난 이미 불가항력적 거리를 달려왔기 때문이다. 차라리 남은 2km를 견디라고 자기 최면 같은 주문을 거는 게 훨씬 편했다.


결승선이 1km 남았을 때, 젖먹던 힘까지-남은 힘도 없었지만-쏟아 부었다. 결승선 앞은 심한 내리막이었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래도 결승선이 눈앞에 보이자 가슴이 마구 설렜다. 해 냈구나, 이겨냈구나, 벅찬 감정에 울컥했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두 팔을 쳐들고 환호했다. 누군가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주겠지 하는 마음에. 하지만 그 고귀한 장면을 찍어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까짓것, 그게 대수랴. 난 나와의 승부에서 승리했는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 승리를 맛봤는데.


내가 무사히 완주한 배경에는 베란다 바닥에 대접도 아니고, 접시물에 기도한 아들의 기도 빨이 한 몫했다능. 아들, 스릉흔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마신 물 한 모금은 원효대사가 마신 해골 물보다 오천오백삼십육만사천이백삼만배 다디달았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묵밥을 먹으며, 수제 막걸리 한 잔 들이켰을 땐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황선우나 신유빈이 1도 안 부러웠다. 이 맛에 달리는 거지, 이러니 마라톤을 끊지 못하는 거지, 싱글벙글했다.


집에 오는 길, 긴장 풀린 몸은 자꾸만 까라지고, 무릎은 후들후들, 정신은 메롱메롱했지만, 그 모오든 것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각, 집에서는 하나뿐인 초딩 아들이 베란다 앞에 접시물을 떠 놓고 아빠의 완주를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단다. 오, 마이 베이베~@!


그래서 드는 불안한 느낌은.... 내년에는 하프 코스에 도전할 것만 같다는. 아픈 무릎이 부르르 떨며 진저리쳤다. “웜마, 이 아저씨 보게. 누구 맘대로! 나 작살나는 꼴 보려고 그려? 아서라, 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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