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 신신애라는 가수가 있었다. 몽환적인 눈동자를 가진 가수가 나와 얄딱구리한 춤을 신나게 춰댔다. ‘이판사판 춤’이라나. 버스를 타거나 거리를 다닐 때면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수도꼭지처럼 흘러나왔다. 희대의 히트곡 <세상은 요지경>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당시 고딩이던 나도 노랫말을 흥얼거린-춤은 따라 하지 않았다-기억이 있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 친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신신애도 울고 갈 만큼 세상이 참 요지경 속이지 싶다. 전직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와 파라다이스 그룹 혼외자라고 속여 사기를 친 전청조 커플. 하루가 멀다고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꼴이란.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그들의 행각을 보면서 세상에는 별의별 ‘똥 멍청이들’이 많다는 걸 느낀다. 드라마 작가들은 분발할지어다.
누가 보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어떻게 속아 넘어가지?’ 답답하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다 그만한 사연이 있는 법이려니. 누굴 탓하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사람 잘못 만난 둘 다 ‘똥 멍청이’다. 그 와중에 강화도 돈가스집과 함께 대박을 친 밈(meme·인터넷유행어)이 있으니, ‘I am 신뢰예요.’ 인터넷 커뮤니티와 온라인 기사에는 ‘I am~’으로 시작하는 글로 도배가 되고 있다.
JTBC 슈가맨 영상 갈무리.
그래서 그 옛날 신신애 아줌마는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라고 한 걸까. 어쨌든 뭐, 저 잘났다고 암만 호기를 부리고 위세를 떨어 봐야 한 방에 ‘훅’ 가는 게 요지경 세상인가 보다.
‘셰프’라는 단어를 널리 알린 ‘봉골레 파스타’ 아저씨의 몰락을 보라.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 멤버로, 한류를 이끌었던 스타의 비틀거리는 행색을 보라.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에 충무로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유명 배우의 처지와 형편을 보라. 이들 모두 ‘마약 스캔들’에 망조가 들었다.
‘출구 없는 미로, NO EXIT 마약, 절대 시작하지 마세요!’
그러고 보니, 1년 전에도 ‘마약’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적이 있었다. 159명의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 참사 당일 현장에는 마약사범을 잡겠다고 사복경찰 수십 명이 파견됐다. 하지만 그들은 ‘약쟁이’ 때려잡기에만 꽂혀 있던 나머지 안전사고 대비에는 '아몰랑'했다.
급기야 그들은 희생자가 안치된 병원에 와서 마약에 연루됐을 수 있다며 유가족에게 부검을 제안했다니.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책임자 처벌은커녕 진상조사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유가족들은 얼마나 애통하고, 분통하고, 분노할 일인가. 요지경이고 뭐고, 썩을 놈의 세상! 이렇게 욕을 해도 시원치 않다.
나는 글쓰기를 업(業)으로 삼고 사는 족속이다. 공인으로서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연차가 쌓일수록 실감한다. 내가 쓴 글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지, 그 글로 인해 세상은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I am 기자예요’.
출처: 대한의사협회
이건 또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소설도 쓴다. 팩트를 써야 할 기자가 소설을 쓰고 있다. 그 역시 요지경 세상 속 한 장면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난 전청조가 아니다. ‘가짜 뉴스’로 사기 치지 않는다. 마약은커녕 당뇨약도 안 먹는다. 누가 봐도 남자다. 뭐니 뭐니 해도 난 브런치가 공식 인증한 엄연한 ‘I am 작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