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댕~ 아기다리고기다리 점심시간~ 후다다닥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한 손에는 집에서 싸 온 현미밥이 든 밀폐용기를 들고. 단돈 3000원에 즐기는 구내식당 밥은 근무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밥 먹는 게 젤 쉬웠어요.)
자자, 오늘의 메뉴는 무엇이로고? 오호~ 요 녀석들, 내가 아주 맛나게 먹어 주갔어, 기래.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대관절 무슨 반찬이길래 호들갑이냐고? 설마 개구리 반찬이겠나. 새우볶음밥에 자장소스, 유부 된장국, 오븐에 구운 닭 다리, 계란프라이, 양상추 샐러드, 깍두기. 이만하면 ‘3000원의 행복’ 아닌가.
백미로 만든 새우볶음밥은 아쉽게도 패스. 국 대접에 현미밥을 넣는다. 그 위에 자장소스를 붓는다. 자장소스 위에는 단백질 덩어리 계란 프라이를 원플러스 원으로. 닭 다리는 오븐에 구워 기름을 뺐으니 맛있게 먹기로. 양상추 샐러드는 당뇨인에게 산삼 같은 반찬이로고. 유부 넣은 된장국을 두 국자 떠 담아 빈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그리고 드디어 맛있게도 냠냠~(기도 따윈 필요없어.)
TV에서 뉴스가 나온다. 구내식당 TV는 항시 24시간 뉴스(YTN)에 채널 고정. 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졌을라나. 읭? 이스라엘 전쟁? 그 전쟁 아직도 안 끝난겨? 기억을 더듬는 순간 잡힌 영상 한 장면, 그리고 자막. 그걸 본 내 눈과 속은 뜨악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벌이고 있는 전쟁 통에 비친 어린이들 모습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죽으면 찾지 못할까 봐 팔과 다리에 이름을 문신으로 새겼다. 현지 언론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확인하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후 하루 평균 109명의 어린이가 사망했으며, 아동 사망자 수는 가자지구 전체 사망자의 약 38%에 달하는 1750명이라고 집계했다. <"죽으면 못 찾을라"…몸에 이름 새긴 가자지구 아이들> 뉴시스 2023년 10월 24일
<아이 몸에 이름 적는 부모들...어린이 사망자 2천 명 [앵커리포트]> 화면 캡처 YTN, 10월 24일
전쟁이란 이렇게 무섭고 끔찍하다. 한데, 그 아이들은 대체 누구 때문에-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돼지도 아니고-몸에 생사를 구분하는 표시를 해야 하나.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왜 목숨을 잃어야만 하나. 순간 내 새끼들이 떠올라 구역질이 났다. 먹던 밥이 도로 나올 뻔했다.
겨우 참고 참았다. 하지만 더는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구내식당을 나와 바람을 쐤다. 어지러웠던 정신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그리고 내 발길은 김유신의 말처럼, 전쟁기념관 쪽을 향했다. 점심을 먹고 전쟁기념관 둘레길을 도는 건 나만의 루틴.
어느새 가을이다. 나무마다 매달린 잎들이 노랗고 빨갛게 익었다. 그러다 바람이 훅, 불면 아래로 떨어진다. 속절없이 떨어진다. 아무 저항도 못 하고 떨어진다. 떨어져 나뒹군다. 하마스의 어린아이들처럼. 낙엽이야 한때 푸르름과 단풍의 절정을 뽐내던 시절이라고 있었지. 꽃 한 번 피우지 못한 채 시체 더미에서 한 줌 낙엽처럼 뒹구는 어린아이들은 어쩌란 말이냐. 우에엑. 애써 진정시켰던 욕지기가 다시 올라왔다. 젠장.
그러고 보니 이-팔 전쟁 전에 시작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1년하고도 8개월 지났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약자가 다치고 숨졌을까. 나는 겪어보지 않았지만, 한국전쟁도 그렇게 참혹하고 비참했단다. 100살 넘게 살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는, 생전 “우리 새끼들사는 시상에 전쟁만은 안 일어나야 할 텐디”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했다. 전쟁은 그렇게 무서운 거다. 임재범 형이 절규하며 부른 “전쟁 같은 사랑”은 배부른 소리다. 3000원짜리 한 끼 식사를 맘 놓고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값지고 고마운가.
흔히 인생(삶)을 ‘전쟁’에 비유하곤 한다. 그래, 사는 것도 전쟁통이다. 요즘은 하루를 살아내는 것에 정말 대단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 전쟁’만 할까.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분단국이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거나 놀랍지 않을.
나무마다 매달린 잎들이 노랗고 빨갛게 익었다. 그러다 바람이 불면 아래로 떨어진다. 속절없이 떨어진다. 아무 저항 못 하고 떨어진다. 떨어져 나뒹군다. 하마스의 어린아이들처럼.
한때는 북한과 정상회담도 하면서 평화무드가 찐하게 흐르던 때가 있었다. 정권이 바뀌니 또다시 ‘너는 너, 나는 나’가 됐다. 북한보다 30년 넘게 우리를 식민 지배했던 섬나라와 더 사이가 좋아 보인다. 이북이든, 섬나라든 ‘평화롭게’ 지내면 좋겠다. 총알 빗발치고, 폭탄 터지는 전쟁통에 난 내 아이들 손과 발에 문신을 새길 자신이 1도 없으니까. 아, 갑자기 허기진..다. 다시 먹으러 가보까? (식당 문 아직 안 닫았을라나.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