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에세이 ‘슬기로운 기자생활’을 출간했다. 청와대와 국회, 대통령실을 출입하면서 느낀 6년의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현직 기자들에게는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일깨우고, 기자 지망생들에게는 지침서 역할을 하겠노라, 하는 거창한마음으로.
브런치에 쓴 글을 그러모아 2권의 전자책을 POD(PublishOnDemand, 주문형 소량 출판)로 출간한 적은 있지만, 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책을 낸 건 처음이다.
출판사는 ‘푸른영토’였고, 김왕기 대표님은 나의 ‘키다리 아저씨’였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은 글을 책으로 내보자고 한 건, 나로서는 그야말로 꿈인지 생신지 모를 정도로 가슴 벅찬 제안이었다. 인쇄는 파주 출판단지에서 했는데, 회사에 하루 연차를 내고 갔다. 역사적 순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슬기로운기자생활 인쇄하던 날 인쇄소에서.
서울역에 도착한 뒤 공항철도를 타고 홍대 입구역에서 내렸다. 광역 버스를 타고 파주 출판단지 앞에서 내린 다음 걸어서 ‘활자마을’로 갔다. 처음 가본 출판단지는 상당히드넓었다. 거리마다 출판사들이 즐비했다.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인쇄소 앞에서 김 대표님과 만났다. 전화 통화만 하다 실물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출판인으로서 풍채가 흘렀다. 인쇄소에 들어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작업장으로 내려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들어간 토끼굴마냥 들뜨고 설렜다.
작업자들은 한결같이 친절했다. 철커덩, 철커덩 인쇄기가 시끄럽게 돌아가는 중에도 그들은 내 인사를 반갑게 받았다. 수북이 쌓인 흰 종이가 인쇄를 준비하고 있었다. 순백의 종이들에 곧 잉크가 칠해질 참이었다. 맨 먼저 표지가 나왔고, 곧이어 띠지가 나왔다.
인쇄기에서 나온 책 띠지판을 들고서 기념샷.
대표께서 인쇄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난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내 사진이 새겨진 띠지와 표지를 보니 낯설고 어색했다. 동시에 가슴 뭉클하고, 울컥했다.딸아이 탯줄을 직접 끊어주던 순간의기분을세상에 막 나온 내‘글 아이들’에게서 느꼈다.
인쇄소에서 어련히 알아서 찍고, 서점에 보내고, 팔아줄 걸, 수고롭게 그 먼 데까지 가느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천만의 말씀. 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데 아내만 산부인과에 보내 ‘알아서 낳고 와’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내 아이가 아내의 자궁을 빠져나오면서 냈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찡했다.
내 책은 이렇게 만 3년 집필 끝에 세상에 나왔다. 인쇄소 반장과 대표께서 책 표지와 띠지를 돌돌 말아 노란 고무줄에 묶어 선물이라며 건넸다. 막내 아이를받아 든 것처럼경건하고숙연하게 받아들었다.
책을 낸다는 건 ‘무형의 내 영혼을 유형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내 영혼의 이야기가 활자로 태어나던 그 날, 나는 또 하나의 결심을 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리라. 무엇이든 계속 쓰겠다고. ‘슬기로운 기자생활’ 동생을 만들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