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작가의 세계로 데려다 준 대표님은 차기작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줬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동생인 소설 <청자가 사라졌다>가 이듬해 세상에 나왔다. 요즘은 소설을 찾거나 읽는 독자들이 많지 않다. 주로 가벼운 에세이나 웹툰 따위라면 몰라도.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출판을 허락해 준 김 대표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감사 인사를 올린다. 이 책 역시 잘 팔리지 않았다. 김 대표께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이유기도 하다.
어쩌자고 소설을 썼는진 모르겠다. 작법을 따로 배운 적도 없다. 그냥 소설책을 읽다보니 소설이 좋아졌고, 읽는 것을 넘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슬기로운 기자생활>이 교정교열에 들어갔을 무렵부터 괴발개발 끄적거렸다. 기사(팩트)를 쓰는 기자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주제도, 주인공도 정하지 않았다. 그냥 내키는대로 썼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무작정. 한 달하고 일주일 후 어떤 사달이 날진 상상도 못 한 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렸다. 어쩌자고 그랬는진 지금도 모르겠다.
덕분에나는 한동안 후회했다. 밑도 끝도 없이 쓰던글이 원고지 200 장을 넘기면서 힘에 부쳤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장편소설 한 권을 내려면 대략 원고지 1,000장에 12만 자 분량이 필요하다고 했다. 돌아가기도, 나아가기도 애매한 위치에서 혼란스러웠다.
패착은 ‘주제’를 정하지 않고 시작한 데 있었다. 주인공도 딱히 없이 주변 인물만 차고 넘쳐 몰입도가 떨어졌다. 읽는 사람마다 재미없다는 말이 인사였다.
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던 생각은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나처럼 소설을 썼다면, 세상 사람 절반은 소설가가 되고도 남았으리라.주제도 모르고 시작한 처사에 반성이 솟구쳤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속 한 대목이 불현듯 떠올랐다.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기자를 해선 안 된다고 했던. 소설을 쓰겠다고함부로 덤볐다 제대로 쓴맛을 봤다. 소설도 기사처럼 아무나 쓰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소린이’(소설가+어린이)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오금이 저렸다.
멈추자니 닥치고 써온 한 달 남짓이란 시간과 원고지 220장이 아까웠다. 그렇다고꾸역꾸역 가보자니 시간만 낭비하고 실속이 없을 것 같았다. 진퇴양난, 사면초가가 따로없었다. 갑자기 소설가가 마냥 부럽고 존경스러워진다.
여유있게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자유자재로 차를 모는 운전자를 보는 초보처럼.키판잡고 발차기하는강습1일차가 숨도 안 쉬고 초스피드로 치고 나가는 수영선수를 보는 것처럼. ‘왕 부럽’을 너머 ‘개부럽’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지난한 시간이었다.
서점에 가면 숱하게 쌓여 있는 게 소설책인데, 나는 언제쯤 그런 책을 낼 수 있을까. 이건 ‘첫술에 배부르랴’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가 지닌 성질일 터. 그래, 실력 있는 기자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눈 뜨고 일어나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는 없는 것처럼, 나무가 아닌 멀리 있는 숲을 보며 가보자.
소설을 잘 쓰려면,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한다. 그래서 소설책을 많이 읽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필력에 내 존재는 한없이 작아진다. 수백번 죽었다 깨도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전개와 묘사와 문체 앞에 나는 고꾸라졌다.
200장하고도 스무 장을 더 쓴 내 글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그치들은 분명1타 강사에게 고액과외를 받았을 거야'라는 비겁한 자위도 해 보건만. 그건 열등감이 지닌 성질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