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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Aug 24. 2024

1부. 기자로 작가로 사는 인생

3화. 기자가 기사를 써야지, 소설을 쓴다고

나를 작가의 세계로 데려다 준 대표님은 차기작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줬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동생인 소설 <청자가 사라졌다>가 이듬해 세상에 나왔다. 요즘은 소설을 찾거나 읽는 독자들이 많지 않다. 주로 가벼운 에세이나 웹툰 따위라면 몰라도.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출판을 허락해 준 김 대표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감사 인사를 올린다. 이 책 역시 잘 팔리지 않았다. 김 대표께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이유기도 하다.


어쩌자고 소설을 썼는진 모르겠다. 작법을 따로 배운 적도 없다. 그냥 소설책을 읽다보니 소설이 좋아졌고, 읽는 것을 넘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슬기로운 기자생활>이 교정교열에 들어갔을 무렵부터 괴발발 끄적거렸다. 기사(팩트)를 쓰는 기자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주제도, 주인공도 정하지 않았다. 그냥 내키는대로 썼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무작정. 한 달하고 일주일 후 어떤 사달이 날진 상상도 못 한 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렸다. 어쩌자고 그랬는진 지금도 모르겠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후회다. 밑도 끝도 없이 쓰 글이 원고지 200 장을 넘기면서 힘에 부쳤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장편소설 한 권을 내려면 대략 원고지 1,000장에 12만 자 분량이 필요하다고 했다. 돌아가기도, 나아가기도 애매한 위치에서 혼란스러웠다.

패착은 ‘주제’를 정하지 않고 시작한 데 있었다. 주인공도 딱히 없이 주변 인물만 차고 넘 몰입도가 떨어다. 읽는 사람마다 재미없다는 말이 인사였다.


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던 생각은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나처럼 소설을 썼다면, 세상 사람 절반 소설가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주제도 모르고 시작한 처사에 반성이 솟구쳤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속 한 대목이 불현듯 떠올랐다.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기자를 해선 안 된다고 했던. 소설을 쓰겠다고 함부로 덤볐다 제대로 쓴맛을 봤다. 소설도 기사처럼 아무나 쓰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소린이’(소설가+어린이)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오금이 저렸다.


멈추자니 닥치고 써온 한 달 남짓이란 시간과 원고지 220장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꾸역꾸역 가자니 시간만 낭비하고 실속이 없을 것 같다. 진퇴양난, 사면초가가 따로없었다. 갑자기 소설가가 마냥 부럽고 존경스러워진다.


여유있게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자유자재로 차를 모는 운전자를 보는 초보처럼. 키판잡고 발차기하는 강습1일차가 숨도 안 쉬고 초스피드로 치고 나가는 수영선수보는 것처럼. ‘왕 부럽’을 너머 ‘개부럽’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지난한 시간이었다.


서점에 가면 숱하게 쌓여 있는 게 소설책인데, 나는 언제쯤 그런 책을 낼 수 있을까. 이건 ‘첫술에 배부르랴’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가 지닌 성질일 터. 그래, 실력 있는 기자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눈 뜨고 일어나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는 없는 것처럼, 나무가 아닌 멀리 있는 숲을 보며 가보자.


소설을 잘 쓰려면,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한다. 그래서 소설을 많이 읽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필력에 내 존재는 한없이 작아진다. 수백번 죽었다 깨도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전개와 묘사와 문체 앞에 나는 고꾸라졌다.


200장하고도 스무 장을 더 쓴 내 글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그치들은 분명 1타 강사에게 고액과외를 받았을 거야'라는 비겁한 자위도 해 보건만. 그건 열등감이 지닌 성질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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