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재민 Oct 05. 2024

2부. 인생 하프타임, 40을 쓰다

40, 출간을 기다리며

며칠 전, 동네 서점을 들렀다. 나는 매달 초 동네 서점에서 습관적으로 책을 한 두권 산다. 그 달에 달 읽든, 읽지 못하든 간에. 서점에 가면 꽤 오랜 시간 머무르는 편이다. 맨 처음에는 베스트셀러가 전시된 곳에서, 다음에는 에세이, 다음에는 인문 교양, 마지막으로는 소설 코너로 동선을 옮긴다. 최소 한 시간 이상을 이렇게 몇 바퀴 돈다. 길면 두 시간도 족히 걸린다. 그러고도 책 한 권 못 사서 나온 적도 왕왕 있다.

이번에는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양귀자 작가의 베스트셀러 <모순>과 이기주 작가의 신간 <그리다가, 뭉클>. 첵 두 권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점원이 익숙한 자세로 책 뒷면 바코드를 찍고 적립 번호를 물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 번호 끝자리 4개를 전달했다. 내 번호가 아니라 아내 번호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내 얼굴을 힐끔 본 마스크 쓴 점원이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왜 저러나 싶을 찰나, 나를 향해 묻는다.


“저...류재민 작가님 아니세요?”

“그렇습니다만.”

점원은 내가 류재민 작가라는 걸 맞혀서인지, 아니면 류재민 작가라는 사람을 실물로 봐서 영광이라는 건지 꽤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자주 오는 서점인데도 처음 본 얼굴이었다. 새로온 모양이었다.

“저를, 어떻게 아세요?”

내 질문에 점원은 잠시 망설이더니 손가락으로 내 책이 꽂혀 있는 매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내가 올해 초에 출간한 장편소설 <청자가 사라졌다>가 몇 권 꽂혀 있다. 천안 출신이라고 동네 서점에서 자그마한 전용 공간을 만들어준 터.


“그러셨구나. 저는 이 서점 단골입니다.”

멋적은 듯 말을 건네는데 점원은 또 다른 인연을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하는 찾가는 진로직업 특강에서 몇 번 뵀어요.”


그렇다면 점원도 나와 같은 강사로 몇 번 학교에 초대받았다는 건데, 얼굴의 반은 마스크를 써서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반의 반은 안경으로 가려져 더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긴, 마스크나 안경을 쓰지 않았어도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을 거다. 그런 낯선 장소에서, 다음에 또 언제 만날지 모를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는 이들은 별로 없는 까닭이다.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 정도 나누는 게 관례려니.

그래도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 점원이 고마웠다. 책을 받아들고 나가려는 참에, 광고 한 줄 던졌다.


“얼마 있으면 제 에세이 신간이 나올 예정입니다.”   

“아, 그래요?”

“제목은 40입니다. 부제는 마흔의 숨이고요.”

“기대되네요. 나오면 말씀해 주세요. 주문해서 매대에 올려놓겠습니다.”


그날따라 들른 서점을 나오면서 묘한 감정이 든 이유는 뭘까? 나를 양귀자나 이기주처럼 ‘작가’로서 알아봐준 점원의 고마움 때문에? 아니면, 신간이 나오면 매대에 올려준다는 말에 혹해서? 누가 나를 어디서 어떻게 바라볼 지 모르니 처신에 조심해야겠단 섬찟함에? 그것도 아니면 오늘은 다리가 저릴 정도로 서 있지 않았다는 만족감에?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즐겨 찾는 동네 서점은 친근하다. 책 냄새도 정답고, 일하는 점원들도 친절하다. 출판사로부터 다음 주 후반쯤 신간 인쇄를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신간이 나올 즈음이면 늘 설레고 떨린다. 그것이 작가 마음인가보다. 계약 출판 3번째 책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음 달 쯤 이 서점에 들렀을 때, 지역 작가 전용 매대에 <40>이 두 팔 벌려 나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비 오는 날 북카페에 앉아 있으면 출입문이 열릴 때 계단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다정하게 들린다. 저마다 사연이 있을 자그마한 빗방울들이 부르는 합창에 귀 기울이면, 어느새 낭만이란 이름들이 차곡차곡 마음에 쌓인다. 어릴 적 시골 대청마루에 배 깔고 누워 가만히 듣던 장 항아리, 절구통, 댓돌을 토닥이던 빗방울 소리가 고즈넉한 카페의 목가적 적막에 리듬감을 끌어온다.

책방 안에 배인 활자들의 향은 고향집 청국장 냄새보다 깊고 구수하다. 한 공간에 있는 이들의 발소리와 소곤거리는 말소리는 시골집 뒤란에 핀 화초들의 수런거림 같이 거슬리지 않는다. 아늑히 감기는 클래식 음악은 평온히 마음에 스며든다. 동네 책방 카페는 한 주의 피로를 잊고 휴식하기 좋은 장소다.

텅 빈 마음으로 책방에 앉아 있으면 시름도 잊고, 일도 잊고, 밥 때도 잊는다. 그렇게 잠시 나의 생이 평안히 숨 쉰다. 간식 같은 휴식이다.  <40> -휴식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