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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Sep 21. 2024

2부. 인생 하프타임, 40을 쓰다

곰과 40의 이야기

곰이 재주를 부리던 시절 이야기다. 한 시골 마을에 서커스단이 들어왔다. 집채만 한 몸집의 코끼리부터 갈퀴가 선연한 사자, 침팬지인지 오랑우탄인지 구분할 수 없는 원숭이들과 등에 혹을 달고 다니는 낙타와 얼룩무늬 조랑말까지. 난쟁이 어릿광대와 코 빨간 피에로는 공연이 열리는 커다란 천막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줄타기도, 곡예도, 텀블링도 아닌, 재주 부리는 곰이었다. 곰은 덩치만큼 힘도 셌다. 코끼리 다리만 한 통나무를 발로 밟아 두 동강 냈고, 무거운 바윗돌도 역도 선수처럼 번쩍 들었다. 곰은 덩치와 다르게 날렵했다. 조련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잽싸게 받아먹고, 물구나무를 서고, 오토바이도 탔다. 곰은 서커스단 명물로 명성을 떨쳤다.


그 당시 곰의 평균 수명은 인간과 비슷했다. 40이 넘자 곰의 행동은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몸에 힘이 빠지고, 순발력이나 민첩성도 현저히 떨어졌다. 물구나무를 서다 넘어지기 일쑤였고, 오토바이는 아예 올라타지도 못했다.


곰은 서커스단 명물에서 퇴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둔한 곰의 공연을 보러 오지 않았다. 서커스단 단장 왕서방은 곰에게 욕을 하며 채찍을 가했다.


“도대체,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이 녀석아! 밥이나 축낼 줄 알지, 쓸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련 곰탱이 같으니라고.”


출처: 픽사베이

곰은 한탄했다. 재주는 누가 부리고, 돈은 누가 벌었는데, 이제 와 천덕꾸러기 신세라니. 어느 날 밤, 곰은 조용히 서커스단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누구도 사라진 곰에 관심을 두지도, 찾으러 나서지도 않았다. 어두컴컴한 밤에 서커스단 천막 위에 반짝이는 별들이 총총히 박혔다.


순전히 내가 꾸며낸 이야기지만, 이런 우화 같은 인생(人 生)이 40 아닐까.


작가 정여울은 40대 초반에 쓴 산문  프롤로그에 “마흔은 내가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시작한 나이”라고 썼다. 어쩌면 그렇다. 직장에서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과 경쟁하고, 위로는 모시고 챙길 선배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집에서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눈치보랴, 갱년기를 앞뒀거나 이미 접어든 배우자 비위 맞추랴 정신없는, 노쇠한 부모의 건강과 용돈도 챙겨야 하는, 일터와 가정에서 정체성과 존재감이 흐려질 수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자존감을 높여야 하는,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나이가 40 아닐까.


서커스단을 빠져나온 곰도 자신을 무시하고 홀대한 왕 서방이 무서워 도망친 게 아니었으리라.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 주는 조련사를 찾아,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을 지 모른다. 인생 역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때, 그때가 바로 40 아닐까.


[서평단 모집] 40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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