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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Nov 09. 2024

밀리환초

갇힌 섬 2

바다에 들어갔던 인부 셋은 자리돔 몇 마리와 소라, 조개 따위를 가져왔을 뿐이었다. 갯벌 조 역시 작은 돌게와 이름 모를 해초 줄기만 건져 돌아왔다. 인부들이 가져온 망태 안에 담긴 수확물을 들여다본 이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듯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찢어진 눈이 길게 늘어졌다. 

“쓸모없는 죠센징들 같으니. 이걸 누구 입에 갖다 붙인단 말이냐. 책임감도 없는 녀석들. 네놈들 오늘 저녁은 없는 줄아라.”

이토는 인부들 손에 들린 망태기를 빼앗듯 낚아채더니 왔던 길로 혼자서 되돌아갔다. 인부들은 뒤도 안 보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이토의 뒷모습을 희멀거니 바라봤다. 

“이런 염병할. 언제까지 이렇게 살라는 겨. 차라리 물에 빠져 죽지.”

신세 한탄을 하던 절름발이 노인이 갑자기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재빨리 달려가 노인을 붙잡았다.

“이거 놔. 놓으라고. 나 하나라도 없어지믄 입 하나라도 줄어들 거 아니냐.”

“선재 아재. 목심을 그리 쉽게 끊으면 못 쓴당게요. 저그 있는 손자 생각도 해야 쓰지 않겠소.”

장순팔은 연신 발버둥 치는 김선재를 겨우 뜯어말리며 악다구니를 썼다. 그제야 선재는 몇 발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는 손자 동영의 눈과 마주쳤다. 동영의 까만 눈이 부신 태양에 부딪혀 반짝거렸다.

“할압씨, 그만 가쇼잉.”

동영은 선재를 천천히 일으켜 세워 부축했다. 올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인부들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힘 빠진 다리는 걸음을 더디게 했고, 쪼그라진 뱃고래에선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밀물이 들어오면서 파도는 세차졌다. 태양이 작열했던 하늘은 어느새 검은 구름 장막에 뒤덮였다. 한바탕 비가 쏟아질 듯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렸다. 느릿느릿 걷던 인부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분주해졌다. 동굴 쪽에서 장작불을 피우는지 허연 연기가 하늘로 오르다 바람에 밀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거처에선 구수한 밥 냄새 대신 소금물에 절여 짭조름한 생선과 조개 굽는 냄새가 풍겨왔다. 끌려온 조선인 여자들은 생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낸 뒤 꼬챙이에 끼워 장작불 옆에 세운 받침대에 걸쳤다. 조개는 통째로 불 위에 올렸고, 미역은 솥에 넣고 끓였다. 바닷물로 간수가 된 상태라 소금을 넣을 필요는 없었지만, 양념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 모든 음식 준비가 끝났을 때, 이토는 사카이 대좌와 동료 군속을 데리고 주섬주섬 먹을 채비를 갖췄다. 부녀자들은 슬금슬금 일본군들 눈치를 보며 자신들 몫을 따로 담았다. 백여 명이 먹기에는 턱없이 적은 양이지만, 그마저 많다 싶으면 일본군들은 덜어내 자기들 군영으로 가져가 간식으로 먹었다. 그러다 자신들의 말을 잘 듣거나 식량 생산에 기여한 조선인이 있으면 선심 쓰듯 던져주곤 했다. 조선인들은 그렇게라도 끼니를 해야 했기에 군말 없이 복종했다. 더구나 꼼짝할 수 없었던 건, 일본군들은 자신들에게는 없는 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드득, 빗방울이 쏟아졌다. 거처로 돌아오는 인부들의 머리며, 이마며, 얼굴로 떨어졌다. 거처에 있는 사람들도 비를 맞으며 식사를 준비했다. 일본 군속은 옷이 젖을까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밖에선 조선인들이 옷을 젖어가며 부산하게 몸을 놀렸다. 세찬 빗줄기와 검은 구름이 환초의 하늘을 뒤덮었다. 그 사이를 천둥과 번개가 오갔다. 하늘이 뚫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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